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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11-12 우리, 지금까지 뭐했지?

우리, 지금까지 뭐했지? 5│그 꼭지, 그 이야기


그 사람 만나고 싶다                          

최장수 외부 필자 강제욱 작가, 그를 만나다

<오늘>의 표지를 한두 장 넘기면, 사진 하나에 시선이 멈춘다. 물이 보인다. 강이 있고, 숲이 있고, 그와 더불
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필리핀 올랑고 맹그로브 숲,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티베트 고원, 내몽골의 쿠부치 사막, 아이티의 폐허, 쓰촨 성 지진의 현장 등. 그가 전해준 단 한 장의 사진은 때론 안타깝게도 하고, 때론 마음을 환하게 하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렇게 낯선 곳으로 우리의 마음을 데리고 가는 ‘동선예감’의 강제욱 작가를 만났다. 잡지의 지면을 나눠 쓰다 보니, 한 식구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가 작업하고 있는 수원 화성 앞에서 나눈 인터뷰는 여느 때보다 편안하고 느슨했다. 글ㆍ사진 박윤지



세계 곳곳의 ‘오늘’을 보여주다
2008년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 <오늘>의 11년 세월 중 절반을 함께 해 온 강제욱 작가는, 사실 인터뷰를 하러 간 기자보다도 <오늘>과 더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최장수 필자다. 처음엔 여행 에세이를 의뢰받았으나 그는 곧 작업 주제인 환경 다큐멘터리 사진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환경’이란 단지 자연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저는 주로 사막, 숲, 강 등의 환경을 주제로 다루지만, 여건이 되면 전쟁 관련 현장도 찾아가요. 환경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요. 저는 전쟁이 환경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인간의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심각한 행위 중 하나잖아요. 아프가니스탄이나 연평도를 가서 찍었어요. 건물들이 파괴되어 있었죠. 총알과 대포에 의해 무너진 삶의 터전들을 보면 가슴 아프죠.”
그는 200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봉사 단원으로 2년간 파라과이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시계를 보지 않고 지내던 행복했던 날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지었다. 한편 목공 교사로 지내면서 좋은 나무가 사라져 가는 현실을 보았고, 모든 것을 다 찍을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달으며 작업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좁혀 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내 환경 단체가 발표한 환경 문제 100개 리스트를 보고,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의 방향을 결정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16년간 50개국 이상을 누비며 세계 곳곳의 환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티 지진의 사진인데요, 굿네이버스 팀으로 현장에 취재 가 있을 때, <오늘>에 바로 보낸 거예요. 거기는 인터넷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요. 숙소에는 인터넷이 안 되서 옆방 기자의 무선 공유기 비밀번호를 풀어내서 보냈죠.” 


생명을 응시하는 사진,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
강제욱 작가가 <오늘>의 지난 호에 보여준 ‘녹색의 이면’ 사진에서 중국 디안치 호수의 수면은 반들반들한 초록비단 같고, ‘내몽골의 향사만’ 사진에서 광활한 사막 위 굽이치는 모래 무늬는 바람의 지문 같다. 그러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녹색은 중국의 공업화와 수질오염의 상징이고 사막의 모래 무늬는 뒤편 공장 굴뚝에서 솟구치는 흰 연기가 단 하나의 생명도 허용치 않을 잔인함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중국 쓰촨 성 지진이 일어난 지 1년 후 어느덧 관광 상품이 되어 버린 현장에서, 동아시아의 6개국을 흐르는 메콩 강의 상류에 있는 중국의 댐 건설로 무자비하게 훼손된 강줄기에서, 그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보았다. 인간의 지나친 욕망이나 무분별한 개발로 이미 파괴하는, 우리가 더 지켜야 할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의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느낀다. 
환경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 그는 꾸준히 NGO 단체와 협력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국제협력단과 함께 기후변화를 기록하는 작가로 참여했어요. 동아시아 지역에 기후변화 대응을 하는 원조 활동을 하는 건데요, 주로 물, 물의 필요성, 정화, 질병에 대한 대책 등 사업 현장을 기록하는 일을 했어요.” 세상이 험난할 때,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다는 그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최근에는 순천만과 수원 화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5월부터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하며 순천만을 찍고 있어요.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인데,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필리핀 올랑고 섬에 있을 때, 제 스스로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 생명이 충만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순천만도 작업하러 갈 때마다 그래요. 밤이면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하고 아침이면 새소리에 기분 좋게 잠을 깨요.” 그리고 수원에서 문화유산으로서 화성과 이 성의 안팎에 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이긴 하지만, 지배 계층이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한 대규모 토목공사의 결과라는 생각 또한 마음에 품고, 평범한 사람들이 꾸려 나가는 사소한 이야기들에 시선을 주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강제욱 작가는 국내외 환경을 기록하는 사진, 곧 생명을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따뜻하면서 날카로운 그의 사진과 함께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꿈꾼다. 그리고 그가 이어갈 다음 동선을 기대해 본다.


사라진 꼭지. 어디로 간 걸까?                                                                      


짚고 넘어가야겠다. 사라진 건가, 얼마간의 보류인 건가. 지금 보이지 않는 꼭지들이 영영 증발해 버린 
건지 뭔지 나야 알 수가 없다. 짚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사라진 꼭지의 담당자는 이렇게 말할 뿐이고. “하면, 다시 할 수도 있겠지요…” 어디로 간 건 아니다. 오히려 갈 데가 없어 멈추었나 보다. 안미리 



1. 김준영의 페북 친구(2012.3-4 ~ 2012.11-12)
첫 번째로 짚어볼 꼭지는 친애해 마지않는 우리의 도시남, <오늘> 편집장의 이름을 건 꼭지다. 김준영의 페.북.친.구. 그래서 편집장은 본인의‘페이스북 친구’를 만나고 왔더랬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문화 향유자, 쉐프, 사진전시 독립큐레이터였고 김준영과 나누는 문답식 대화가 그 내용이었다. 대화 속에는 연륜과 농담이 스며있었다.
그런데. 좀 애매하다. 이들이 ‘김준영의 페북 친구’라고 하니 김준영의 페북 친구로서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없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는 인물이야 다른 꼭지에도 소개되고 있고, 여타 인물 취재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 페북’과‘ 친구’라는 콘셉트가 잘 드러나지 않은 거다. 
이를테면, ‘좋아요’ 횟수가 폭발적이어서 갑자기 알려지게 된 사람이라든지, 기발한 콘텐츠를 널리 공유하는 정보 확산자라든지, 페북 친구를 대상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잘한 사람이라든지, 그도 아니면 김준영 개인적으로 온라인 교류를 활발히 한 사람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김준영이 그동안 지켜봐 온 숨은 인물을 소개할 수도 있었을 것 같고. 생각난 대로 말해본 것이지만 여하튼, 이 꼭지에는 그런 ‘페북’과 ‘친구’ 이야기가 부족하다.‘ 페북 친구’는 오히려 취재할 사람을 찾는데 제약만 주었을 것이다. 제일 우선인 전제가 김준영과 페북 친구여야 하는데, 흥미로운 사람을 발견한다 한들 친구사이가 아니면 취재를 할 수도 없다.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김준영의 페북 친구, 그래서 흐지부지 사라진 건가?


2. 두 손을 모으다(2010.7-8 ~ 2012.1-2)
‘두 손을 모으다’ 역시 기본적으로 취재 대상을 발굴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대외 활동이 많은 유명인사를 다루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성가를 만나는 시간이라지만, 영성가라고 해서 기도만 하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었다. 삶에 영성을 어떻게 녹여내는지, 음악으로는 어떻게 승화하고 구현해 내는지가 중요했다. 실천하는 영성가를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대놓고 그 삶을 드러낼 리가 없다. 튀지도 않고, 띄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너무 튀는 사람은 오히려 의심스러울 테고… 중심을 지키는 삶을 굉장히 응원하고 존경하는데, 그래서 소개하고 싶은데, 어디 훤히, 쉽게, 보여야 말이다. 그래서 꼭지가 그렇게 흘러가 버렸나 보다. 
편집장은 이 꼭지를 참 아쉬워했다. 영성가를 만나는 일은 깊은 공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사에 그대로 옮겨 적을 요량으로 사라진 꼭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게 왜 없어졌을까…다시 하면…하면 되죠. 내가 게을러서 그렇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의 친애해 마지않는 도시남 편집장은 게으른 탓이었다. 꼭지가 사라진 이유는 이로써 명확해졌다.


3. 리뷰는 힘이 세다(2012.3-4 ~ 2012.11-12)
‘리뷰는 힘이 세다’는 독자의 문화 체험 후기를 싣는 코너였다. 리뷰는 힘이 센데, 반응은 어째 힘이 달렸나 보다. 이전 호에서 소개한 좋은 볼거리들을 몸소 체험해보시라 권고하는 취지의 코너였을 것이다. <오늘>의 귀한 독자들에게 본인의 글을 기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숨은 글쟁이를 기대한 것일 수도 있다.
후기를 써 보낸다는 전제로 얼마의 사람을 모집해서 티켓을 쥐여 주고, 게 중에 영감을 주는 글을 뽑았으면 더 쉬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느 잡지가 그러하듯 예산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면 권고만 하지 왜 꼭지를 진행하겠다고까지 했을까. 독자의 글을 싣는 좋은 기회가 될 줄 알았다. 그러면 매뉴얼을 좀 줄 걸 그랬나. 그래,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말랑말랑한 기독교 문화잡지라지만 성경 한 구절이라도, 어떤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멋지게 녹여 써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수 있다. 그렇게 써주신다면야 물론 좋지. 그러면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는 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일 수 있다. 짧은 호흡으로 마치는 글도 아니고 에세이 공모 수준의 분량이라 작정하고 공을 들여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도 참여해준다면 고맙긴 하겠지만, 각자의 생활이 있는데 그렇게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참여율이 저조했다. 저조하니까 진행이 힘들었다. 그래서 빠잉.


뭔가가 있다 사라졌다고 해서, 굳이, 매번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정말 좋고 좋다가 시나브로 숨이 죽을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흐지부지 되는 일이 있다. <오늘>의 사라진 꼭지도 그렇다. 분석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시도해 볼 만한 참신한 코너로 대체했거나 아니면 조금 게으르지만 세련된 도시남이 지쳤다던가, 하는 다양하고도 가벼운 요인들이 있었겠지. <오늘>에서 사라진 꼭지들은 그렇게, 어쩌다 보니,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만날 친구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