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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8 11-12 세상을 바꾸는 착한 소비

세상을 바꾸는 착한 소비 1 | 아이야, 값싼 초콜릿 속에는…



초등학교 교사는 양면의 칼날을 쥐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들은 나의 어떤 것을 참 쉽게 배우고, 나로 인해 많이 변한다. 그것은 내 어깨를 무겁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아이들과의 만남을 설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사가 된 후 학교를 벗어나 어디를 가든, 새롭게 보고 들은 것과 공부한 것들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할 좋은 소재거리를 열심히 주머니에 모으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공정무역’은 아이들과 이야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깃거리이다.
 

공정무역 이야기를 수업으로 진행하며

‘공정무역’을 따라가면 어느새 ‘착한 소비’에 다다르고, 조금 더 나아가면 ‘공정한 노동의 대가’, ‘아동 노동착취’, ‘아동 인신매매’, ‘가난하고 빈곤한 나라’,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까지 이야기를 넓혀갈 수 있다. 초등학교 도덕책에 나오는 공익 추구의 삶과 타인을 존중하는 삶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다른 이의 부당함을 알고 그들을 위해 생각하고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것.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정당한 노동 임금을 지급한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것을 가슴에 담고 자라나 분명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과의 수업에서는 흔히 우리가 먹는 값싼 초콜릿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속에 담긴 아이들의 땀과 희생을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글귀를 읽어 주면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작게 울기 시작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제 3세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보거나 ‘착한 소비’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는 등 여러 활동을 끝내고 나면 아이들은 그동안 알아주지 못했음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고 더 어려운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직접 가 본 필리핀 공정무역 현장

지난 5월, 이런 학생들과의 수업 이야기를 생협 공정무역 초콜릿 판매 이벤트에 응모해 1등에 당선된 나는 필리핀 공정무역 공장 시찰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방문하게 된 곳은 필리핀 파나이 페어트레이드 센터(PFTC)로 인근 카마다 지역에서 생산한 사탕수수와 바나나로 공정무역 제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카마다에선 사탕수수를 유기농으로 재배하여 즙을 짜내고 그것을 여러 번 끓여 마지막으로 설탕의 결정 상태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나면 설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런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최첨단 기계나 공장이 아닌 현재와 같은 규모와 방식의 공장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할 일자리인 것이다.

카마다 지역의 사람들은 PFTC에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일하게 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조금씩 돈을 모아갈 수 있다고 한다. 정해진 일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도 한 가족 당 1명, 그 사람들이 매일 일을 할 수도 없고 돌아가며 며칠씩 일을 한다. 우리가 대형 마트에서 사는 값싼 초콜릿, 커피, 과일, 옷 이런 것들이 모두 어느 누군가의 옳지 못한 값싼 임금을 통한 제품이라는 것이다.

필리핀을 다녀온 후 나, 내 가족, 우리 반 아이들은 우리나라를 넘어 보다 넓은 그곳의 모두를 생각하고 더 큰 굴레를 가슴에 담게 되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런 바람을 가져본다.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프고 달리기를 잘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조금 더 앞에서 출발할 수 있는 배려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혼자서 결승선에 들어가는 것보다 함께 친구와 들어가고 싶은 아이들로 자라나기를….
 


나소은 광주 무등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의 만남이 언제나 두근거리고 즐겁기만 한, 어디서든 생각거리를 주워 담기에 바쁜 3년차 교사. 필리핀 공정무역 공장 방문을 우연히 동행한 기회로 공정무역과 착한 소비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