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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믿음의 방화벽





믿음의 방화벽
파이어프루프|에릭 윌슨

조현기

예전에, 그녀와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한 시간 반이나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난 그날따라 일찍 도착해서 거기 있는 책을 꺼내 대충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20분이 지나 반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절실했다. 출입문 쪽 소리가 들릴 때마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녀였고, 그녀여야만 했고, 그녀였으면 싶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나 숨을 헐떡이며 그녀가 나타났을 때 너무 반가운 나머지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릴 뻔했다. 처음엔 괘씸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걱정이 돼 별생각이 다 났었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단다. “핸드폰은 뒀다 알람으로 쓰냐?” 짜증을 냈지만 그녀가 무사히 내 앞에 있다는 것이 그 순간에는 너무나 큰 행복이고 축복이었다. 기다리면서 그녀를 향하는 창으로 갈아두었던 무기들은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다. 요즘도 가끔 그녀가 이해가 안 되거나 나를 외롭게 할 때 그날의 출입문을 지켜보던 기억을 꺼내보곤 한다.

이 책은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에게 나타나는 ‘소통의 부재’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캘럽’은 존경받고 잘나가는 소방대 대장이지만, 그의 아내 ‘캐서린’과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하다. 그들의 7년에 걸친 결혼생활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 관심과 배려가 배제되어 셀 수 없는 말다툼과 맹렬한 분노로 뼛속까지 다 타들어 이내 지붕이 내려앉을 일만 남은 관계가 되어버렸다. 서로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던 ‘캘럽’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의 도전>이라는 노트를 받으며 ‘아버지’와의 약속으로부터 자신과의 약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40일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40일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거기까지만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소통이란 놈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을 많이 알수록 다스리기가 힘든 놈이다. 들으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에서 비롯된 소통의 부재는 숨겨 놓은 여러 문제들을 토해내듯 화염을 뱉어낸다. ‘믿음의 방화벽’ 은 화재(불행)를 예방한다기보다는 그것을 믿음으로 오롯이 견뎌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랑은 언제나 보호하고, 언제나 신뢰하고, 언제나 소망하며, 언제나 견뎌낸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tip. 이 소설의 원작은 영화 <Fireproof>다. 이 영화의 각본/감독/제작자인 켄드릭 형제는 미국의 셔우드 침례교회에서 사역하는 목사로서 이 교회에서 설립한 영화사 <셔우드 픽쳐스>를 통해서 기독교적 가치를 표현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 영화는 오는 9월, 제7회 서울기독
교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