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마티스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마티스>|타리에이 베소스
‘알 만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늘 치명적이다. 더 이상의 대화가 이어
지지 않는다. 모두는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구도 남의 말 듣는 것을 그 이상으로 좋아하기는 어렵다. 늘 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편리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곤 한다. 그 무렵에는 그 무렵에 걸맞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사람들은 대화의 규칙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 규칙에 맞춰가면서 대화를 하고 판단을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게 그 규칙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두가 그 대화의 규칙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무렵의 ‘나이’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처럼 말해야 하고, 어른은 어른처럼 말해야 한다. 여자는 여자처럼 말해야 하고 남자는 남자답게 말해야 한다. 그래서 ‘알 만하다’라고 말하면 대충 그 사람의 현재에 대한 규정이 끝났다는 말이다. 거기에는 묘한 부정의 뉘앙스도 섞여있다. 이미 깔보는 시선이 전제된 거다. 덕택에 대화가 더 전개되지 않게 된다.
여기 37살의 마티스가 있다. 매일 매일 모든 게 의문투성이고 궁금한 건 꼭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소년’이다. 그와 함께 사는 마흔 살의 헤게. 마티스는 뭐든 누나에게 물어본다. 어제 본 멧도요새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멧도요새가 꿈에 나타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왜 그런지에 대해 공감 받고 싶어 한다. 멧도요새가 죽었을 때 뜨고 있던 눈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공감을 누나에게 바란다. 부모 없이 결혼도 못하고 동생 뒤치다꺼리에 지친 누나는 그 말들을 다 들어줄 여력이 없다. 그리고 그런 예민한 감성과 호기심이 가득한 마티스를 동네사람들은 ‘팔푼이’라고 부르거나 ‘바보 사이먼’이라 부른다. 누구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할 뿐이고, 그가 지나간 뒤에서는 뒷담화가 무성하다. 힐난하는 사람들만 산다.
그러던 마티스도 어느 날 구멍 난 배 때문에 표류해 도착한 호수의 돌섬에서 만난 안나와 잉게를 통해 자신이 뭔가 할 수 있음도 배우고 책임감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배움에 대해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질 않는다. 그냥 귀찮을 따름이고 객쩍은 소리일 따름이다. 그나마 그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해 주었던 헤게도 어느 날 마티스의 배를 타고 집에 살게 된 예르겐과사랑에 빠지면서 마티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 마티스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보’나 ‘ 팔푼이’였을까. 그에게 세상은 아직 낯설고 천천히 눈에 들어오고 들리는 것이었다.
하나하나를 익히기엔 너무 세상은 빨리 지나가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소리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으며 그를 바보로 만들고 있진 않나. 하찮은 소리들이 하찮지 않게 들려오는 순간들에서야 정신을 차리곤 한다. “아차!”하면서.  글 양승훈

독자엽서나〈오늘〉블로그(www.cultureonul.com)의 방명록을 통해 위의 책을 신청하시면 추첨하여 선물로 보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