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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ㅣ 사회적 기업 ‘참신나는옷’ 전순옥 대표



전태일의 동생. 그녀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이 수식어 한 마디면 그녀에 대한 모든 설명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집안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청계피복공장의 노동자들과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말 한 마디가 너무나 절실한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전태일의 동생’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오빠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끝내 같은 방향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갈 뿐이다. ‘사회적 기업 (주)참신나는옷’의 전순옥 대표를 만났다.
글 김주원 | 사진 노영신


여성이자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
앰버서더 호텔이 높다란 언덕에 앉아 있는 중구 장충동. ‘수다팩토리’는 그 바깥쪽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과 좁다란 골목길이 여느 주택가와 다를 바 없다. 수다팩토리 1층 매장에는 ‘(주)참신나는옷’에서 만든 옷들이 걸려있었다. 천연염료로 채색된 옷이 부드럽게 하늘거린다. 말 그대로 ‘공방’(工房)인 이곳 수다팩토리는 모두 24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장이다. 서늘한 가을공기가 매장 안에 스며들었다. 제품은 인사동의 ‘수다공방’ 매장 1호점에 우선적으로 보내고, 이곳에는 의류 일부만 진열해 놓았다고 한다.
전순옥 대표의 체구는 조그마했지만 그 속은 에너지로 꽉 차 있었다. 그녀에게 ‘참신나는옷’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물었다. “우리 기업은 일하는 사람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이 회사를 성장시켜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게 지금의 목표고요.”  전대표는 여성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고민하며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온 뒤, 노동운동은 경직된 한편 여성노동자의 권익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참여성노동복지터’(약칭‘참터’)는 그 고민의 산물인 셈이다. ‘참터’는 노동자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이 여전히 강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여성노동자의 자존감을 세우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청계천에서 일하는 봉제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즐거움과 지식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방과 후 지역아동센터인 ‘참신나는학교’를 만들었고, 이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학업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는 ‘참신나는장학회’를 세웠다. 그러나 전순옥 대표는 장학회 활동에서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예쁜 손(手)들이 많이(多) 모인 곳, 수다공방

무엇보다 봉제노동자가 자신의 기술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패션봉제아카데미 ‘수다공방’이 만들어진 이유다. “전체적인 노동자들의 문제는 예전과 달라졌지만 노동환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봐요. 어느 사회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있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그렇거든요. 제조업 노동자들이 인정을 못 받아요. 상품이 비싸게 팔려도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들이고 공장에서 일하니까 임금을 적게 줘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냐면 약 만 시간이 요구돼요. 하루에 세 시간씩 10년 동안 투자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분들은 2,30년 동안 하루 18시간씩 투자해요.” ‘수다공방’은 20년 이상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기술고급화 훈련을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 대표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숙련노동자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낮은 우리 사회에서 봉제노동자들의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를 느꼈다. ‘수다공방’ 사람들이 직접 패션쇼를 여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필연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못 하겠다고 했어요. 우리 노동자들이 옷도 만들고 모델도 해야 했거든. 패션쇼 이름이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였는데 아줌마들이 안 하려고 하죠. 결혼한 사람이던 안 한 사람이던 사돈까지 생각하더라니까. 자기 사돈이 미싱사라면 누가 내 자식들과 결혼하려고 할 거냐 하더라고. 이런 사람들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죠. 찜질방까지 같이 가서 설득하고.(웃음) 패션쇼 끝나고 다들 울었어요. 남편한테 처음으로 꽃다발 받은 사람도 있었죠. 그러고 나니까 다들 자신감이 붙은 거지. 패션쇼의 목적이 200% 달성되었어요. 그 뒤부터는 패션쇼가 하고 싶어서 ‘수다공방’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니까요.”

공정한 이익이 분배되는 참신나는기업

‘수다공방’은 그렇게 ‘참신나는옷’으로 이어졌다. ‘참신나는옷’은 2008년에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고, 이제 곧 창사 1주년을 맞이한단다. ‘ 참신나는옷’은 ‘수다공방’에서 교육받은 노동자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발휘해 이들의 안정된 고용과 양질의 상품 생산, 그리고 소비자의 현명한 소비라는 선순환을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린 자체적으로 페어트레이드(공정무역)를 한다고 생각해요. 공정한 임금, 공정한 가격, 공정한 이윤. 이 세 가지를 고민하죠. 우리 회사의 철학에는 모델이 있어요. 무엇이냐면 영국의 ‘존 루이스 파트너십’(John Lewis Partnership)과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9세기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에서 노동자들의 공동체를 실험한 개혁가), 그리고 <전태일 평전>에도 나오듯이 ‘모범업체’가 그래요. 그걸 지금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노사관계 석사논문을 쓸 때 ‘존 루이스 파트너십’을 참고했는데, 거기 일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어떨까 가봤어요. 무척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존 루이스 파트너십’은 6만 9천명에 달하는 노동자 모두가 주주이고, 이들 모두에게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유명 기업이다. ‘존 루이스 파트너십’을 참고하고 있지만 ‘참신나는옷’을 둘러싼 경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전 대표는 이 사실을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조금도 힘을 잃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모든 흉년이 끝날 때까지 엘리야에게 밀가루와 기름이 주어진 것 같아요. 영국에 머물던 12년 동안 꼭 그렇게 살았죠. 99년에 마지막 논문을 집중적으로 쓸 때 하나님에게 ‘하나님 뭐 해 주세요’, ‘장학금 타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어요(웃음).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기도내용이 ‘하나님 왜 나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시나요’로 바뀌었죠. 2001년도까지 매일 그런 기도를 드렸어요. 원래는 거기서 박사를 딴다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일을 정말 가능케 해주셨어요. 워릭대학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죠(그녀의 논문 <They are not machine>은 미국, 영국, 호주에서 책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내용이 일부 수정되어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로 출간되었다). 그 날 교수들에게서 꽃다발도 받았고요. 논문을 한 자도 안 고치고 바로 제출했는데 무사히 통과해서 꽃다발까지 받은 사람이 앞으로 또 나올지 모르겠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거 같아요.”

가난한 사람의 목소리가 되라

인터뷰 도중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늘 따라다니는 이름’을 물었다. 전 대표는 역시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이미 온 가족에게 신앙이 있었고, 오빠(전태일)는 교회에 간증도 많이 다녔어요. 오빠 일기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주인으로 만드셨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일요일에 교회도 못 가고 다른 사람의 밑에서 고통 받아야 됩니까’라고 적혀 있어요. 오빠는 고통 받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죠. 하나님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아파하셨을까를 생각했던 사람이에요. 지금도 오빠의 영향은 강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라는 뜻으로 절 쓰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정말 이치에 맞고, 상식적이고, 바른 얘길 한다고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전문가나 교수가 이야기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그래서 하나님이 저더러 그런 목소리가 되라고 이렇게 기회를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 극동방송을 많이 듣는다는 전 대표는 한국 교회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요즘 우리 교회의 긍정적인 면도 보고 부정적인 면도 보게 되요. 어쨌든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싶지만, 교회를 꼭 크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어요. 영국에서 중세 때 얼마나 큰 교회를 많이 지었는데요. 지금은 옛날 교회들이 라이브하우스나 펍(Pub) 또는 바(Bar)가 되었어요. 교회를 잘 지으려고 몇 세기의 시간을 투자했지만 지금에 와서 막상 예배를 드리면 열 몇 명도 안 오고 그러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돼요.”

전순옥 대표는 교육과 복지, 노동이 서로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이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기적이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단체복도 만들고 있으니 필요하면 주문하시라며 활짝 웃는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고, 부정에서 긍정을 구하는 전 대표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해가 저물어 갔지만 수다팩토리 안이 여전히 밝아 보이는 건, 오늘도 공방에서 수고하는 노동자와 재봉틀이 함께 굴리는 긍정의 힘 때문일 것이다.

참신나는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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