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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글이란 영성을 구하는 보물찾기 l 동화작가 이철환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엔 아이들이 많았다. 그가 사는 아파트 맞은편에 초등학교
가 있었다. 아이들은 드문드문 모여 웃고 떠들었다. 아파트 5층에 자리 잡은 가정집에 들어섰을 때, 부부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서재에 음료와 먹을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가져다 놓는 어린 딸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예민함과 넉넉함이 맞물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 더 나아가 세상의 아픔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소중한 무언가를 꼭꼭 숨겨놓은 것 같았다. 그가 인용한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카피”라는 말 그대로, 그에게 있어 글이란 보물찾기와 같이 자기 안의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 씨를 만났다.


치열한 자기반성에서 피어나는 글
그의 서재는 작지만 편안했다.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보다 칸막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한 메모가 더 눈에 들어온다. 그가 손수 그린 이소룡 그림에도 눈길이 갔다. “이소룡이네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잘 그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네요.” 칭찬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이내 겸손을 보인다. 서재 바깥에 무성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연탄길>은 2000년 발간된 이래 3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이철환 작가는 남을 돌아볼 줄 모르고 나 밖에 모르는 세태 속에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글을 써왔다. 곧 새 소설도 나올 예정이다.
그의 글에는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용기와 치열한 자기반성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치열함의 근원에 대해 물었다. “다들 사는 게 힘들잖아요. 글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이 가장 바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내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그들을 위로할 것인가.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잘못해서 공감할 수 없는 남 얘기만 하면 교양서가 되니까 그걸 제일 경계해야 한다고 봤고요.” 그의 글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이러한 그의 ‘진정성’ 때문인가 보다. 그러나 그 진정성이 외려 그의 광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전 기본적으로 글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광기 같은 게 있거든요. 글을 끝낼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5분도 몸을 누이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일한 적이 참 많아요. 그럴 때 생명의 위협을 느꼈어요. 원고 보따리를 아내에게 맡기면서 절대 내게 주지 말라고 하죠. 제가 원고를 쓰다가 몸이 어떻게 돼 버리면 집안에 불행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미련해요. 그게 두려워요. 치열하게 글 쓴다는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제발 이걸 통제하게 해주십시오 기도하면서도 잘 안 돼요.”
<연탄길>의 성공은 그에게 반드시 빛인 것만은 아니었다. “<연탄길> 마치고 3년 동안 우울증에 빠지면서 해가 뜨면 두려움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어요. 과로 때문에 힘들었어요. 인터뷰다, 강연이다 너무 많았는데 그걸 다 거절 못했어요. 얼마나 몸이 힘들었는지, 나중엔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연탄길>을 보고 ‘석세스풀 디프레션’(Successful Depression) 이라 하던데 다음 책에 대한 불안 때문이나 그런 거 전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냥 너 망해라 하셔도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고, 내 기도를 이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죠.” 그 우울증의 끝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견한 그는 결국 하나님께서 내주신 빛이 어둠이 되었다가 다시 빛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 인간의 논리로
상대적으로 풍요로워졌음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화두인 지금, 이 세태 속에서 예술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인간의 절망을 쓰고 싶었어요. 류보미르 씨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이라는 희곡을 보면 ‘왜 너희들은 밥도 안 되는 걸 하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왜 밥을 먹는지 그걸 설명하기 위해 연극을 한다’ 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부터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다들 세상이나 인간을 바라보는 가치를 자본의 논리로 보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인간의 논리로 봐야 해요. 조만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어인간혁명이 있을 거 같아요.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거대한 변혁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잖아요. 누군가는 깨우치고 있다는 거죠. 글 속에서도 이번에 제일 쓰고 싶었던 게 그거였어요.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논리로 바라보면 조금 더 많은 게 보이지 않겠나 싶어요. 우리가 막연하게 보는 집단의식 같은 것들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그의 예민한 감성은 예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종교가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그는 못내 안타깝다. “전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미비하지 않았나 싶어요. 과학은 자본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하여도 사람들을 꽁꽁 묶어버렸어요. 종교가 과학보다 더 멋진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던 거 같아요. 아무리 제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썼다지만 저 개인의 한계와 사유방식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어요. 영성을 가진 분들이 조금 더 겸손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쓸 때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걸 의식하면서 쓴다는 이철환 작가. 그는 소설을 쓸 때도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함을 느낀다고 했다. “소설의 상당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채워졌어요.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씀으로도, 고통으로도, 침묵으로도 만나신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쓸 때도 하나님은 여러 방 식으로 절 만지시는 거 같아요.”

아름다움, 그 뿌리를 만지게 하고파

기독교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단순히 교회가 나오고 예수님 이야기로만 채우는 게 기독교 문화일 수 있을까. <연탄길> 역시 기독교 문학일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예술을 통해 보이는 방법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하나는 그냥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아름다움을 완전히 감추고 그 뿌리를 만지게 하는 것. 하나님은 내가 인정하던 하지 않던 아름다운 분이니까, 대신 아름다움을 감추고 독자로 하여금 그 뿌리를 만지게 하고 싶었어요. <연탄길>을 쓰면서 내내 제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거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독교 문화에서 또 하나 곤란한 지점은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영성을 받은 순간, 오로지 신앙에만 매진해 자신의 예술성 일체를 버리는 경우다. 이 둘을 조화롭게 엮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율법주의에 갇혀 조화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서재 한 쪽에 붙여놓은 성경말씀을 가리켰다. “ 저는 좀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게 굉장히 절 옭아맬 때도 있어요. 여기 이 성경말씀들도 다른 사람이 좋다는 거보다 제가 좋아하는 걸 뽑아놓았어요. 저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하나님보다는 작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주문하자 그는 예술의 소통과 다양성 추구를 권했다. 가능한 영상언어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는것이 좋다고. 그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물었다. “저는 이외수 선생님의 소설 <들개>가 참 좋았어요. 한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이 나온다고 해야 하나. 그 다음에는 이성복 선생님의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이에요. 사람들은 이성복 시에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꼽지만 전 이걸 우선으로 꼽고 싶어요.”
<오늘>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는 말에 그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내면에 꼭꼭 숨겨둔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이 “제가 참 좋아하는 말 중에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카피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게 <오늘> 독자 분들에게 화두가 될 거 같아요. 이 말 자체는 제게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이런 글을 써야한다 싶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는 말도 좋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이철환 작가 가족과 함께 그의 집을 나섰다. 친구와 놀지 못해 뾰로통 한 딸을 가볍게 어르는 아빠의 모습이, 가족의 단란함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길 바랐다.  글 김주원 | 사진 노영신

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해냄

이철환 작가의 첫 장편소설. 가정환경 때문에 원하는 교육도 받지 못하고 첫 사랑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주인공 유진은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삶을 꾸밈없이 살아내는 옆집 아저씨와의 만남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조금씩 고민하게 된다.



이철환 작가가 추천하는 책 _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1977년 <문학과지성>에 발표된 시‘ 정든 유곽에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이성복의 시집. 125편의 시를 묶은 연작시적 구성이 특징으로, 10년 만에 출간된 이성복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2003년 출간된 후 KBS <TV 책을 말하다>에서‘ 200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