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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추천 음악

사랑하는 것들은 저 길 밑에 있고

한돌타래566 : 그냥 가는 길 _ 한돌
공부보다 피아노가 더 좋아서 집에만 돌아오면 흰 건반 검은 건반 뚱땅거리던 시절, 코드반주책들과 최신가요 모음집은 새로운 길을 향한 보물지도였다. C, F, G, Am, Dm…, 다장조의 가장 기본적인 코드들을 하나하나 익히고 나면, ‘고향의 봄’과 같은 곡들의 뒤를 이어 한돌의 노래가 연습곡으로 나왔다.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살았네.” 동요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가요라고 하기에는 너무 순수한, 가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담백한, 그것이 바로 그의 노래, 아니 ‘타래’였다. 라디오나 테이프가 아니라 악보에서 나는 그를 만났고 악보 뒤에 울리는 목소리를 상상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집 밖을 자유로이 나설 나이가 되었을 때, 노래를 캐던 심마니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그는 노래없이 걸었다. 그리고 16년이 지났다.
여기, 빈손으로 떠났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한돌의 손에 주렁주렁 달린 타래를 보라. 그는
독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독도에 비가 내리면’), 사라져가는 고향의 학교를 아쉬워한다(‘아무도 없는 학교’). 우리말보다 영어가 우대받는 현실을 꼬집어내고(‘황소개구리’), 통일을 향한절절한 갈망을 풀어낸다(‘한뫼줄기’, ‘가고 싶다’). 마지막 트랙에서는 반갑게도, 꼴찌를 향한 그의 오래된 예찬이 흘러나온다(‘꼴찌를 위하여’). 그의 노래는 세상을 향하여 싸움을 걸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의 소란스런 목소리와 동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묵묵히 노래를 캐내며 자신의 길을 다시금 걷는 중이다. 이 길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으로 빛나는, 그리고 꼴찌를 하고 천천히 돌아간다 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어린 날의 꿈이다. 또한 이 길은 그의 고백처럼 하수도이다. “더러운 곳이 아니라, 더러운 것을 처리하는 곳”이다. 그는 그렇게, 길 밑의 길을 걸으며 노래한다. 아니, 노래를 캔다. 사랑하는 노래를 온몸으로 감싸 안고 씻어준다.
글 정동현


레 미제라블 _ 루시드 폴(Lucid Fall)
또 한 사람, 먼 길을 돌아와 다시 고국을 밟은 청년이 있다. 여행꾸러미에서 풀어놓은 그의 노래는 여전히 따뜻하고 섬세하다. 거칠게 튀지 않는 그의 음표들은 허공에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린다. 그 수채화의 주인공들은 외롭고 슬프고 가난하고 서글픈 사람들, 곧 주변부로 밀려났던 이들이다. 자기 자신이 한국에 대하여 타자로 존재했던 경험이 있는 이 청년은, 그들 한 명한 명의 이야기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인다.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도 듣고 싶어 하는 한 소년이 자신의 외로움을 노래하고(‘외톨이’), “맛도 없고 비린 지느러미를 지닌 고등어”가 화려한 반찬대신 자신을 선택해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고등어’). 이곳에서, “레 미제라블”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트랙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의 삶을 붙들기 위해 손을 뻗친다.


Good Time _ 이한진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트롬본 주자로 손꼽히는 이한진과 그의 밴드가 새 음반을 들고 찾아왔다. 트럼펫이나 색소폰에 비해서 한결 부드럽고 여유로운 트롬본의 음색이 브라스 밴드와 리듬 세션의 펑키한 사운드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5번 트랙인 ‘ Moanin’이나 9번 트랙 ‘Stairway tothe stars’에서 함께 등장하는 여성 보컬의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앨범의 초반부에는 주로 이한진이 직접 쓴 곡들을 선보이며, 후반부에는 스탠다드 재즈와 찬송가를 연주했다. 연말연시, 차가워지는 날씨일수록 그들의 음악이 주는 감미로움은 더욱 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