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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11-12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2 l 사람 사는 곳은 그 어디나 아름답다

전라도엔 <전라도닷컴> 굽이굽이 어여쁜 전라도길 구절구절 사연 많은 전라도 땅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구성진 전라도문화를 오롯이 담아내 온 전라도닷컴. 당신이 전라도 사람이 아니라면 ‘전라도가 고향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드는 잡지 당신이 전라도 사람이라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잡지 찬찬한 발길, 정스러운 눈길, 꼼꼼한 손길로 오늘 아니면 기록하지 못할 전라도를 담고 있는 전라도닷컴 전라도닷컴엔 전라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있습니다. <전라도닷컴> 소개글 중에서  글ㆍ사진 김승환



즐거이 함께하는 그 자리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전라도닷컴>(황풍년 편집장). 재래시장 한복판의 자판 한편을 아담하게 꾸며놓은 사무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통성명도 하기 전에 식사자리에 함께 앉았다. 남신희 기자가 정성스레 차린 점심상에 편집장님과 오남준 기자,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오붓하게 둘러앉았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3층 편집장실로 향했다. 재래시장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터라 천장은 낮고 계단은 비좁았지만 <전라도닷컴>의 이름에 제법 어울렸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두 평 남짓한 아담한 방. 편집장실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소박한 공간이지만 주인을 닮아서인지 대쪽 같은 선비의 향이 난다.
소반 위에 차 한 잔을 두고 담소를 주고받았다. 녹차를 주로 마시는 그의 책상 옆은 도자기로 빚은 아기자기한 찻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차를 달이는 특별한 방법을 물었더니 편하게 마신다며 격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즐기는 듯했다.

풍요로운 지역의 삶을 드러내다
“잡지를 꾸려나가기가 힘드시죠?” “네, 쉽지 않네요.” 사투리가 베여 있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 위엄이 있었고, 굵은 목소리로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선비 같은 강직함마저 느껴졌다. “매체에 광고를 내는 분들은 기사와 광고를 바꾸려고 하는데, 창간호부터 우리 잡지에는 그런 광고를 내지 않았어요. 오로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담아왔죠.” 광고주에 의존하기보다 한 권 두 권 잡지를 구매해주는 독자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10여 년 동안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는 많이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의 문화가 대부분 서울 중심이고 지방은 소비지로 여기는 풍토에서 지역 문화와 공동체의 고유 언어를 담아내고자 하는 매체들은 더욱 어렵습니다. 가치 지향적인 매체를 만들기 위해서 종사자들의 희생이 필요 하거든요.” ‘전라도’라고 하면 누구나 느끼는 선입견이 있다. 역사적이든 정치적이든 ‘ 전라도’라는 편견 속에 외면되었던 수많은 가치들이 있음에도 말이다. 황 편집장은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대안 언론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지역의 이름이 담고 있는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동안의 오해와 불신을 종식할 수 있는 매체가 없을까 하고 말이다. 외지인들도 <전라도닷컴>의 기사를 읽으면서 전라도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또 이래서 슬프구나, 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사람 사는 동네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지역의 그 결대로
2000년 10월 16일에 인터넷으로 시작한 <전라도닷컴>. 지역이 간직한 오래된 문화를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보여주고자 소박하지만 정직하게 사는 전라도의 삶을 담아왔다.“ 하지만 전라도로 한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희는 한국사회 전체를 다양한 주제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밥’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면 어떤 이들에게는‘밥’이 지독한 생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밥’벌이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느 마을에서는‘ 밥’이 수많은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전라도 닷컴>이 매번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주제마다 조명하는 수많은 삶의 모습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리고 놓치고 있었던 가치들 말이죠. 한 개인의 삶도 어떤 주제를 통해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색을 띄고 있거든요.”
사실 오늘날 매체는 광고주와 독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의 기호를 맞추고자 현장의 언어와분위기를 왜곡한 채 수많은 미사여구로 포장하기 십상이다. “요즘 매체들을 보면 현장에서 인터뷰하는 당사자들의 톤과 뉘앙스들을 거의 다 왜곡하고 있어요. 지역의 언어와 풍습들도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거든요. 언어가 담고 있는 정서와 삶을 드러내지 못한 채 획일적으로 수요자 중심이 되는 것 같아 무척 가슴 아픕니다. 문화의 핵심은 다양성이잖아요. 그래서 <전라도닷컴>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탯말’들을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읽는 분들이 조금은 힘들지 몰라도 전라도의 다양한 사투리를 통해 지역의 고유 정서를 살리는 거죠. 매체는 그래야 하거든요.”

삶 그 자체를 흐르게 하다
<전라도닷컴>의 취재 방식 또한 조금은 독특하다. 무안의 낙지 잡는 쌍둥이 할아버지, 한여름 뙤약볕에서 농사짓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 새벽녘 섬진강에서 줄배를 띄워 일하는 어부들. 뉴스에서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기도 하고 시골장을 찾아가 할머니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담아오기도 한다. 그분들이 어느 동네에 누가 있다고 추천해주면 직접 방문하여 마을로 들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는 이내 그네들의 너무나도 평범한 그럼에도 진지한, 어느 순간부터 잊고 지냈던 저마다의 뿌리와 정체성을 떠올리며 닳고 닳은 일상에서 그 가치를 재발견해낸다. 너무나도 소박한 일상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에 자기네 동네도 한번 취재 올 것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삶 그 자체가 지닌 힘은 때론 이렇듯 강력하다. 이렇게 전라도를 걸어내며 <전라도닷컴>은 10년 시간을 잡지 안으로 흐르게 했다. 한결같이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자리를 지켜내는 매체로 서 있기를 바라는 황 편집장은 단순히 전라도에만 한정된 잡지보다 각 지역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지역 매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지역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지난 7월, ‘통권 100호에 부쳐’에서 편집장은 이런 글을 남겼다.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은 비록 고단하지만 저마다의 가슴에 소박한 꿈을 그러안고 순정하게 땀 흘리며 살아갑니다. 그 무수한 인생들이 형형색색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꿈틀꿈틀 이어가는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의 삶에 깃든 찐득한 사연, 거짓 없어 어눌한 토박이 말, 주름살 골골 깊은 정한 배어든 얼굴을 꾸밈없이 담아보자 길을 떠난 지 8년 남짓… 가도 가도 끝도 없는 길, 바닥을 알 수 없는 무궁한 이야기,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새 정이 우러나는 그윽한 풍경들이 자꾸만 등을 떼밀었습니다… 정녕 우리가 지켜야 할 공동체의 가치, 자연과 인간의 조화, 폐기할 수 없는 습속과 정신, 그리고 인간의 원형을 질박한 토속어로 표현할 줄 아는 증인이었습니다. <전라도닷컴>의 여정은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땅을 파고 씨를 심어 사람과 역사의 명줄을 잇는 그들이야말로 사람살이의 총화, 문화의 보고, 방대한 유산을 품는 박물관임을 확인하는 놀라운 각성이요 쉼없는 기록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데 왠지 모를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가 사는 땅의 빛깔이 같기를 바라지 않고, 각 사람의 다양함을 온전히 보듬을 수 있도록 땅을 갈고 닦는 일이기에 내가 사는 땅이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인다.

“요즘은요. 젊은 친구들이 그리워요. 인문학적 베이스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2, 30대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데… 원래의 취지를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잡지의 방향을 밀고 나갔으면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으면 합니다.” 말꼬리를 흐리며 연신 담배를 뿜어내던 그의 모습은 조금 고독해보이기도 했다. 1층까지 내려와 마중해주던 황 편집장은 돌아서는 모습이 아쉬웠는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이대며 찰칵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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