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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11-12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5│대구에서 길을 찾다 - 대구엔 <대구 포켓>





대구에서 길을 찾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대구로 향하는KTX를 탔다. 도보로 2주, 자동차로 4~5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KTX로는 2시간도 들이지 않고 이동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잡아탔다. “봉산동 217-5번지 1층 스파크미디어 <대구 포켓>로 가주세요.” 기사 분은 되묻는다. “네? 어데요?” 움직이기 시작한 택시에는 네비게이션이 없다. “봉산동 217-5번지 스파크미디어요.” 기사 분은 버럭 소리를 지른다. “ 번지로 그래 말하면 몬 찾지요. 전화 함 해보이소.” ‘동대구역에서 택시로 10분 거리’라던 그곳에 찾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 지도를 참고하고, 행인들에게 길을 물으며 우여곡절 끝에 <대구 포켓>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대구는 서울과 달랐다. ‘대구의 방언’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이었는데도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만약 외국인이라면, 어떨까? 외국인들이 타지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인이 한국 대구에서 잡지를 만들다

‘대구의 인사동’에 해당하는 ‘봉산문화거리’에 자리 잡은 <대구 포켓>의 사무실에서 편집장인 크레이그 화이트 씨(35, 캐나다)와 마케팅 담당 스콧 맥로프린 씨(27, 미국), 홍보 담당 이유리(28, 한국) 씨를 만났다. 먼저 맥로프린 씨가 <대구 포켓>을 소개했다. “대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영어로 제공하는 잡지입니다.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가 병기되어서, 단지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영어를 사용(공부)하는 한국인들’도 함께 읽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다른 영어 잡지와 차별화된 <대구 포켓>의 독특한 점이죠.” 이유리 씨는 “대구에 거주하는 미군들 사이에서 엄청난 양의 <대구 포켓>이 일주일도 안되어서 금세 동이 난다”며 자랑했다. <대구 포켓>은 2009년 2월에 창간호로 1천부를 발행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매월 평균 5천부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다른 문화가 한 잡지에서 만나다
이 잡지가 이렇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이트씨는 “문화적 차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구 포켓>은 80여 쪽의 분량에 단순히 먹거리, 볼거리등 관광 정보만 나열한 잡지가 아니다. 한국과 대구에 관한 폭넓고 자세한 문화와 역사, 사회, 경제, 생활 분야를 두루 담아내고 있다. 화이트 씨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했다. “한국의 고깃집에서는 요리하지 않은 생고기 사진을 붙여놓습니다. 냉면이나 비빔밥 같은 요리 사진 옆에요. 처음에 그걸보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맙소사, 한국에서는 고기를 익히지도 않고 그냥 날 것으로 먹나봐. 난 도저히 못 먹겠다.’ 하지만 한참 지나고 나서야 고깃집에서 고기를 불판에 구워서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까지 온 외국인들은 이 사회에 깊이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여행을 하든지 생활을 하든지 간에,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깊숙하게 들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낯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를 모르거든요. 한국이나 대구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할 방법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대구 포켓>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문화적 간격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해설해준다. “우리는 영어 문장에 ‘아줌마azuma’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생각해보니, ‘아줌마’라는 말에는 영어의 ‘lady’나 ‘woman’, ‘madam’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묘한 어감이 들어있다. “김치나 소주, 부대찌개 같은 것들도 모두 한국말 소리를 따라 영어로 표기합니다.”

잡지에서 만나 서로 소통하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만을 부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이 정말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기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도 주력한다. 그래서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려고 애쓴다. “누구나 돈 때문에 고민하고, 결혼 때문에 염려하고,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고,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새 휴대폰을 사고 싶어 안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귀한 일인데, 힘들지는 않을까? <대구 포켓>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 직업이 따로 있다. 이 잡지를 만들면서 돈 한 푼 받지 못한다. 오히려 무료 잡지를 발행한 후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자비까지 들인다. 이들에게 왜 ‘대구’ 잡지를 하느냐고 물었다. 이들의 대답은 사뭇 실존적이었다. 자기들이 “대구에 살고 있고, 또 대구를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만약 이들이 광주에 살았다면 <광주 포켓>을, 부산에 살았다면 <부산 포켓>을 만들었으리라는 것을.

사막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구가 아름다운 까닭은 배타적일 수도 있는 지역 사회 속에 이방인들과도 하나 됨을 이루어가는 이들의 땀과 수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구 포켓>의 열정이 보다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더 많은 지역에 지역의 <포켓>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글ㆍ사진 이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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