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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11-12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3 l 아줌마의 힘, 춘천을 품다

서로 첫눈에 반해 뭉친 4명의 아줌마가 만든 ‘춘천을 말아먹는 아줌마들의 모임’은 조용하기만 한 춘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었다. 만나서 먹고, 수다만 떠는 소비적인 모임이 아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고민했을 때, 그들이 찾은 답은 문화였다. 그러다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뚝딱 일이 시작됐다. 그렇게 2008년 4월, 문화·교육·정보·먹거리의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교양지를 표방하고 <감자골 점순이네>(이하 감자골)가 태어났다. 잡지 이름은 청정 강원도를 대표하는 ‘감자골’,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편한 느낌으로 ‘점순이네’를 붙여서 지었다. 글ㆍ사진 정미희


유쾌한 아줌마의 힘
잡지 등록을 하고,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온라인에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는 일까지 아줌마 4명의 추진력과 즉흥성은 실로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잡지를 시작으로 춘천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만들려던 그들의 계획도 탄력을 받았다. “춘천에 우리처럼 괜찮은 여자들이 많거든요.(웃음) 그런데 수질 보전 때문에 공장도 없고, 회사도 없어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재능 있는 아줌마들이 좋은 에너지를 다 아이들한테만 쏟고 있는 게 안타까웠죠.” 그런 목마름에 대한 동질감이었을까. 카페 회원은 1년을 넘기며 600명(현재 800명)을 넘어섰고,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춘천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에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꺼리들이 많죠. 그런데 공무원들이 많은 도시라서 그런지 의식이 자유롭지가 않아요. 능동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도청 소재지라서 참여할 만한 문화 활동이나 축제도 많은데, 시민들의 참여도가 낮아요.” 그런 토양에서 <감자골>은 좋은 것들을 함께 향유하는 능동적인 문화로 변화하는 것을 꿈꿨다. 카페를 통해 모인 회원들이 함께 사진을 배우고, 독서 나눔을 하고, 정모를 통해 소수라도 함께 모였다. 외부 지원 하나 없이 후원회비와 자비로 운영비를 충당하면서, 적자로 고생도 했지만 결국 사람의 힘으로 지나왔다.
“강원도에는 읽을 만한 문화 잡지가 없어요. 관官에 관계된 잡지가 대부분이에요. 순수하게 일반인 후원으로 만드는 잡지가 2년을 넘어간다는 건 쉽지 않죠. 그런 사례도 별로 없고….” 서로 필요성과 목적을 공유한 사람들의 힘은 셌다. 정말 어려웠던 상황에도 창간 1주년, 2주년 기념식을 열어 지면이나 온라인에서만 만났던 사람들을 직접 볼 기회를 만들었다. “모두 <감자골>의 의미와 뜻을 이해하고, 주인의식을 지니고 참여하는 분들이에요. 이제 아줌마 4명이 만드는잡지가 아니라 모두의 잡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꾸려고 했던 거고요.”

우리 잡지라는 마음
<감자골>는 지난 여름부터 변화를 맞이했다. 초대 편집장이 사임을 하고, 그동안 후원회원으로 활동하며 잡지에 여러 가지 조언을 끼지 않았던 공현배 씨가 편집장을 맡은 것이다. 남성 편집장이라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남자도 40대 넘어가면 아줌마라고 생각하니까요.(웃음) 저희 후원회원 중에는 남자들도 꽤 많아요. 여자들만의 잡지가 아닌 걸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회원 중편집위원들을 세워 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필자 섭외에서 인터뷰, 취재 기사 작성까지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모여 격월에 잡지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걸까. “그냥 서로 엄살도 부리고, 서로 의논하면서 하니까 힘들다기보다는 재미가 있죠. 저희는 취재갈 때도 놀러가는 것처럼 삼삼오오 함께 모여서 가요. 혼자 취재하러 가면 부담스럽잖아요. 한 사람 취재할 때, 저희는 옆에서 수다도 떨고, 이야기도 거들고 그러죠.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걸 배우게 돼요.”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의견을 내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일하는 재미가 책임감이라는 짐을 뛰어넘은 듯하다. 제작 과정이 그러하듯이 <감자골>은 혼자의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잡지가 되는 것을 꿈꾼다.
“처음에 함께 어울리는 장을 만들자고 잡지를 시작했지만, 사실 콘텐츠를 비롯해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게많 았 어요. 그동안 주변 사람들과 회원들의 애정 어린 충고들을 많이 해줬죠. 그런 것들이 지금 이 잡지에 다 녹아들어 있는 거예요.” 누가 하라고 해서 시작했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일, 시간이 흐르면서 책임감과 부담감을 더 느낀단다. ‘우리의 책’이라고 생각하기에 쉽게 그만둘 수 없다는 초기 멤버 길정숙 씨의 말처럼 <감자골>은 애정을 품고 지켜봐주는 이들이 있어 참 행복한 잡지다.

창간호부터 지금(통권 15호)까지 늘 표지에 닥종이 인형 컷이 실릴수 있도록 돕던 닥종이 인형 작가 임하연 씨는 <감자골>을 통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부심이 생기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것을 나눴을 때, 더 크게 자신에게 돌아오는 기쁨을 느끼며 <감자골>은 오늘도 춘천 곳곳에 뜨끈한 정을 나누고있다. <감자골>이 그렇듯 내 이웃이 전하는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의 이야기에는 진심이 담길 수밖에 없다. 효율성이나 경제논리가 아닌 삶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춘천 도처에서 들려오는 정보들을 나름의 색깔로 녹여내 탄생되는 잡지 <감자골>에 아줌마 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감자골 점순이네 정기구독 cafe.naver.com/jeom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