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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11-12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6│예술가를 향한 찬미, 온기를 피워내다 - 부산엔 <보일라>

바다의 도시, 부산에 도착하자 서울 못지않은 속도감이 느껴진다. 이 도시가 처한 지리적 환경은 서울과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외모는 또 다른 서울처럼 매끈하고 화려하다. 그런데 부산의 젊은 예술가들은 오늘도 이 드넓은 도시를 떠나 서울로 향한다고 한다. 그들 의꿈과 재능을 펼칠 장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난한 짐을 싸 부산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예술을 알아봐주고,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예술의 밀집도시인 서울로…. 그래서 부산의 유일한 독립잡지 <보일라>는 오늘도 부산의 젊은 예술가들을 향해 목청껏 힘내라고 응원한다.‘ 여기 있습니다’라는 불어‘voila(부왈라)’의 의미와 삶의 온기를 더한다는 뜻에서 탄생한 이름, <보일라>. 이 잡지를 9년째 발행하고 있는 고집 있는 여자, 강선제 편집장을 만났다. 글 정효진


없기에 발견한 가능성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기록하려고 노트북을 켜는 순간,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보일라>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뚝심 있고 노련한 고수답게 하고 싶은 말 또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쌓여왔던 것이다. “2002년도에 창간된 잡지이지만, 사실 저는 1998년부터 대학을 다니며 <보일라>의 기초가 되는 잡지를 만들어왔어요. 그땐 제가 부산대학교 학생이어서 대학 잡지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당시 분위기가 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독립문화가 일어날 때였어요. 기존의 작가들이 아닌 인디밴드나 젊은 신예작가, 그 외에도 자유로운 예술가가 홍대라는 아지트로 모여들었던 거죠. 근데 부산은 그렇지가 못했어요. 그래서 부산에 문화의 거점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잡지를 만들게 된 거죠.” 그녀는 홍대 그라운드의 변화를 지켜보며 부산에 대한 아쉬움이 커지는 동시에 부산에도 저런 문화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늠해보았다. 지역을 넘어서서 문화를 즐기고 싶고 창조해 나가고 싶은 열정은 동일한 것인데, 그런 즐거운 축제는 서울에서만 열리는 현실. 그녀는 부산의 문화를 알리고 활성화하는 일을 잡지를 통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편함이 발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듯, 부러움과 부족함이 꿈과 도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보일라>는 주로 신예작가들, 숨겨진 인디밴드 등 젊은 부산의 문화예술인과 문화 소통의 공간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부산의 젊은 예술인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나 활동을 소개하고 인정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에요. 부산에도 훌륭하고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지만 도무지 그들의 재능을 보여줄 곳이 없어요. 그들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하니 자연스럽게 사람도, 작품도 사라지는 것이죠.” 부산의 예술가들은 <보일라>의 응원으로 힘을 얻었고, 소통할 작은 창구를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위한 아지트가 아쉽다. “일회성 행사 위주의 지원이 아니라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이필요해요. 결국 그들이 아지트를 중심으로 모여들 때 문화가 활성화가 되고, 전시가 기획되고, 공연이 생겨나니까요.” 예술인이나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아지트가 있다면 그들이 마음껏 사고 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기초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지면 위의 아지트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보일라>의 목적이다.

자생하며 온기를 내뿜다

<보일라>는 광고 없이, 무료로 배포되는 월간지다. 이 타이틀은 굉장한 도전이며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처럼 수많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광고도, 판매도 하지 않기 때문에 잡지를 만드는 사람에게 보수는커녕 제작비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기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잡지를 발행하고, 유명세도 없는 잡지를 대안공간과 갤러리, 서점에 배부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함께 했던 동지들은 자신의 살길을 찾아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역 잡지가 광고를 따낸다는 것이 학연과 지연이라는 인맥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인데, 그걸 이용해서 광고를 싣다보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고,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아 여차해서 발을 빼버리면 잡지는 폐간되고 말아요. 보일라는 철저하게 신예 예술인과 공간을 등장시키고 알리는 잡지이기 때문에 그들의 재능과 가능성을 기준으로만 섭외를 합니다. 그 순수한 목적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힘의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되죠. 그리고 저라는 사람이 원체 비즈니스에 약해요. 계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거나 잡지에 도움을 받기 위해 포장하고 꾸미는 일은 정말 하기 싫거든요. 사비를 털어 누구의 개입도 없이 혼자 만드는 게 편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내가 지은 밥, 내가 먹을 테니 상관하지 말라는 식의 의미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그런순수에 대한 고집과 천성 때문에 <보일라>가 영향력 있는 잡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제가 지원해주는 단체를 찾을 리도 없고, 사비를 털어 하기에는 벅차기도 하고…. 그런데 잡지는 유지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했어요. 저는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고, 그 때 편집도 혼자 공부했었어요. 그 경험을 살려 <보일라>를 만들었죠. 디자인비와 편집비가 따로 들지 않으니, 제작 비용이 많이 줄었죠.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제 밥벌이가 되었어요. <보일라>도 계속해서 발행할 수 있게 됐고, 하면 할수록 편집 실력이 늘어가니 이제는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도 디자인 의뢰가 꽤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편집부터 발송까지 혼자 도맡아야 하는 것을 비롯해 잡지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백 가지였지만, 뒤집어서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녀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잡지를 유지해나갔다. “대부분 사람들이 혼자서 일하는 저를 보며‘ 희생적이다’ 혹은‘ 헌신적이다’고 하시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오히려 저는 이 일을 저 개인의 프로젝트, 재미있는 놀이 또는 진짜 즐거운 취미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원대하고 거창한 타이틀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고 포기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더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일을 한다. 그렇게 작은 목적들을 그때그때 달성해가기 때문에 <보일라>는 아홉 살이라는 나이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다

<보일라>는 한 달에 약 만 부 정도를 발행해 여러 지방으로 발송한다. <보일라>의 90% 이상을 가져가는 서울과 부산이야 접할 곳이 많으니 알아서 가져가라 하면 그만이지만 두 지역을 제외한 타 지방에서는 여전히 예술 독립 잡지를 접하기조차 힘들다는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일라>는 더 쉬운 잡지가 되려고 한다. “화장실에서, 지하철안에서, 쉬는 시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잡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독해야 하는 잡지가 아닌 심심풀이 땅콩처럼 쉽게 쉽게 읽히는 잡지요. 종종 어떤 분들이 <보일라>가 너무 쉽다고 얘기할 때 기분이 참 좋아요. 폭넓은 잡지라는 뜻이니까요.” 예술은 어렵게 생각할수록 높은 가지의 열매처럼 닿기에는 너무 먼, 거리감 있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예술이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 어떤 특별한 지역에서만 공유할 수 있다는 부담스러운 시선이 <보일라>를 통해 누구든지 쉽게 접하고 즐길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 있었으면 한다.
그녀는 요즈음 지방에서 다시 희망을 보고 있다. “예전과 달리 교통도 많이 좋아졌고, 생활권도 상당히 넓어졌어요. 서울의 문화 밀집이 걱정이라고 하지만 예전보다 문화에 대한 시선들이 많이 확대된 것 같아요. 그러니 지방이라고 한탄하거나 무조건 서울로 갈 생각을 한다기보다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하면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생각해볼 만해요. 가만히 있어도 서울에서 <보일라> 보내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 또 <보일라>를 통해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갤러리에서 직접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정말 그때는 잡지 하는 보람을 느껴요.” 적지 않은 부수가 부산을 벗어난 곳에서 배포되고, 내용도 지역을 넘어선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강선제 씨는 여전히 <보일라>의 기반은 확실히 부산이라며 부산의 잡지라고 되짚었다. “기반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절대 부산을 떠나 <보일라>를 발행할 생각이 없습니다. 부산에서 발행하기에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부산은 제가 일하기에 가장 편안한 장소이며, 저의 기반이 있는 곳입니다. 예술을 하고자 부산을 떠나는 사람들은 전혀 낯선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집도 새로 얻어야하고, 직장도 다시 구해야하는 등 자신이 살던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을 하는데 배로 힘이 들어요. 잡지를 발행하는 일 역시 부산을 떠나 하기에는 너무 손해가 크죠. 제가 부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잡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니 보일라는 부산의 잡지가 맞습니다.” 부산 잡지 <보일라>는 부산을 발판으로 하여, 부산이라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그녀는 긴 시간을 유지해 온 지방 문화 잡지의 발행인으로서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이고 냉철한 조언을 건넸다. “지혜롭고 계획적이어야 해요. 문화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을 포함해, 지방에서 잡지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더더욱 말이에요. 열정만 앞서 창간호 내고 끝나는 잡지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니 꾸준한 후원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계획을 사전에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그저 계속해서 보일라가 나와 주는 것 외에는 더 바랄 게 없다는 강선제 씨. 앞으로도 <보일라>는 그 힘을 어디에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로지 사라질 수도 있는 한 예술인을 응원하기 위해 쏟아 부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보일라>가 잡지답게, 잡지로서 살아야 하는 목적인 것이다. ‘반하지 않으면 취재하지 않는다’는 강선제 씨의 원칙이 고집스럽게 지켜져 온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한결같은 <보일라>의 열정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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