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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1-02 문 열자, 깃들다

문 열자, 깃들다 8│교회, 삶터가 되다 - 사랑방교회

교인들이 모두 함께 산다면? 오래된 성도라면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 해봤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긋지긋하지’라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 수 있지만, 어떤 이는 ‘와! 이게 바로 교회의 본 모습은 아닐까’하고 머리를 위 아래로 끄덕일 수도 있다. 의정부를 지나 포천으로 들어가는 입구 어간에 위치한 사랑방교회가 바로 후 자들이 모여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교회다. 찬바람이 매서운 오후 털털거리는 차를 끌고 그곳을 찾아갔다. 글 김준영

 

한 울타리에서 함께 사는 교회
여느 시골 마을의 전경이 앞에 놓여 있고, 여러 집들이 드문드문 모여서 서 있다. 학교 건물 비슷한 운동장 공터에 차를 세우고 다가가니 한쪽 집 입구에서는 막 겨울 준비로 한창이다. 이용신 장로다. 그분의 안내를 받았다. “오늘 학교 학생들이 모두 졸업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조금 한산합니다. 교회 건물이면서 동시에 학교 건물 2층 휴게소 겸 회의실 이면서도 교실로 가시죠.”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 한 공간을 멀티로 부르신다. 그리고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조금 후에 정태일 담임목사 겸 멋쟁이 학교 교장이 맞아주신다. “여러 공동 생활 형태가 있지만 교회의 본질인 공동체적 삶을 보여주고자 시작한 게 98년입니다. 당시 화두가 인간화였습니다. 인간 회복, 인간 생명, 인간적 삶에 대한 것이었죠. 그런데 교회가 그 화두에 적절한 해답을 던져주지 못했어요. 이론은 있는데 삶이 없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하나 됨을 지향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 진짜입니다. 그에 대한 자각과 샘플이 필요했죠.” 그리고 삶을 나누자는 공허한 메시지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 공간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그룹에서 출발했다. 몇몇의 목회자와 평신도가 모여서 한울타리에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모여 지금은 약 스무 가정 정도가 모여 이곳에서 함께 산다. 형식은 이렇다. 한 건물에 서너 가정이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학교 교실이 된다. 큰 강당은 학교 강당이고 동시에 교회 예배당이다. 그리고 커다란 울타리 속 여러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며, 공동 생산하는 공동체적 삶의 기본적 원리를 따른다. 여가까지 함께 보낸다. 참다운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오신 모 건축과 교수님이 우리 교회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신기해했죠. 한 공간이 여러 기능을 하고, 그것이 모든 성도의 소유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간이 되는 것에 굉장한 반응을 보여주셨죠.” 이 장로의 말이다. 함께 생활하기에 생활비용이 필요하지만 이 또한 공동생산을 통해 충당한다. 지금은 대부분 사랑방공동체학교를 통한 수입을 공동으로 분배해 함께 생활하지만 앞으로 1차 산업에도 관심을 기울일 작정이다.

물질이야 자기 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조금 떼어 주면 그만이다. 물론 이것도 꽤 큰일이다. 시간이야 자기 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조금 떼어 함께 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것도 큰 작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나누고, 24시간 함께 살고, 함께 먹는 것, 이건 삶을 송두리째 함께하겠다는 엄숙한 자기선언과도 같다. 어쩌면 이렇게 나누며 보이는 내 모습이 진짜이지 않을까. 인터뷰 후 세 가정이 함께 모여 사는 공간을 거침없이 보여주니 마치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공동체가 이러해야 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거룩한 의식을 수행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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