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연재 종료

어메이징한 현실 속 숨겨진 진실들

얼마 전 종영된 <시크릿 가든>은 작가의 전작들처럼 수많은 폐인을 양산했다. 돈이 많고 잘생긴 젊은 사장님이 돈 없고 학벌도 그저 그렇지만 매력적인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여자를 잊으려고 수없이 주문을 외워보지만 자꾸 옆에서 얼쩡거린다. 사회 지도층 신분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런 설정이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인다. 현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기적과 같은 사랑을 이루어내는 것을 보며 우리는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는지도 모른다.그래서 요즘 현빈은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닌다. 이들이 만나고 싶은 건 현빈일까 아님 ‘김주원’일까.

대한민국은 예능공화국?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라스트 갓파더>를 두고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와 심형래 감독은 설전아닌 설전을 벌였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심형래 감독이 영화 홍보를 위해 특유의 장기인 미디어 노출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지난 영화 <디워>를 통해서 한바탕 미디어 배틀을 치룬 터라 사람들의 더듬이는 이미 이들에게 향해 있었고, 어김없이 미디어는 중계자 역할을 자처했다.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심형래 감독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영구 캐릭터로 무장을 했다. 마치 무한도전의 유재석, 정준하처럼 바보 같지만 착한 역할이다. 반대로 진중권 씨는 박명수처럼 못되고 비열한 악역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라스트 갓파더>라는 영화가 작품성이 있느니, 재미있느니 하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 둘은 서로의 역할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또 충실히 대중에게 이런 이미지를 팔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영화와 방송 미디어를 통해서, 다른 사람은 텍스트 미디어를 통해서 이미지를 노출한다. 이런 기삿거리에 광고주가 더 끌릴 것을 너무 잘 아는 미디어는 마치종합격투기 해설처럼 다투어 중계한다. 물론 대중은 관객이 되어 이를 즐긴다. 마치 온 국민이 즐기는‘ 예능 공화국’같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몇 년 전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황우석교수와 미즈메디 병원장 간에 벌인 미디어 배틀, 하루 종일 공중파 방송에서 번갈아가며 막말을 뱉어대던 기자회견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서도 분명히 착한캐릭터(라기보다는 이 경우, 동정심이 가는 캐릭터가 어울리겠다)와 악역이 있었고 대중은 이를 숨죽이며 관전했다. 물론 그 안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정확한 팩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디어나 대중은 그들이 벌이는 설전, 즉 그 이미지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가 맞닿아 있는 진실
최근 영화계의 핫 이슈 중에 하나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한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에는 ‘남는 밥’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는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미디어는 즉각적으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기사를 양산해냈다. 더불어서 어느 정치인이 트위터에 ‘천국에 가서도 남는 밥과 김치’라는 서민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사회 지도층으로서 매우 적절치 못한 메시지를 올린 후 이 문제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따라서 영화에 관련된 사람들은 피죽도 못 끓여 먹는 아주 불쌍한 인생이라고 대중은 인식하게 된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영화계의 스텝 근로 조건은 아주 열악하다. 이 이슈를 통해서 정치권에서는 창작자들을 위한 복지법안이나 영화인 노조의 숙원사업인 프랑스의 앙떼르미땅제도를 모델로 한 스탭복지제도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 개인의 사정이나 주변에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라는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중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꿈, 즉 이미지를 사고판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 <star, hollywood, 1956>을 보면 이미지의 허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봐도 ‘마릴린 먼로’처럼 생긴 배우를 사진 전면에 배치하고 후면으로는 그녀를 좇는 대중들의 시선을 배치했다. 전면의 마릴린 먼로는 프레임의 2/3 이상을 차지하지만 초점은 배우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에게 맞춰져 있다. 당시 미국사람들은 마릴린 먼로에게 빠져 있었지만, 마릴린 먼로라는 사람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 이미지를 좋아했다. 배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프레임의 후면 가장자리에 배치된 또렷한 형상의 그 구경꾼들 즉, 우리 대중이다. 따라서 이사진의 의미는 허상을 좇는 대중을 말하고 있다. 물론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나의 이미지를 팔기 위해서 논리를 꿰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현기(서울기독교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