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역사 영화’라고 부른다면, 역사 영화는 크게 둘로 나뉠 듯하다. 역사적 사실fact에 충실하려는 영화가 그 하나고, 영화적 완성도나 관객의 몰입을 위해 사실의 진위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영화가 또 다른 하나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킹스 스피치>는 전자에 속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허구 장르에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객관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실에 접근하더라도 영화라는 장르상 허구를 삽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증상, 그와 언어 치료사의 우정, 2차 세계대전 등은 분명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영화적으로 다루는 부분에는 어쩔 수 없이 허구의 영역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진짜에 가까운 허구가 선사하는 감동일 것이다. 진짜같은 허구가 주는 감동. 어째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을까.

주인공 조지 6세의 이중성은 먼저 관객과 동일시를 이끌어 낸다. 그는 왕실의 왕자로 태어났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국왕이 된다. 왕실 귀족인 그의 신분에서 관객은 어떤 동일시의 지점도 발견할 수 없다. 그저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말더듬증이라는 그의 콤플렉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왕도 우리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버지의 호령과 잘난 형의 그늘에서 어두운 유년을 지낸 왕자의 신세보다 자기의 평범한 처지가 차라리 낫다고 자위할지도 모른다. 조지 6세가 학위도 작위도 없는 이방인인 언어 치료사와 절친한 관계를 이룬다는 사실 또한 평
범한 관객이 부담 없이 왕족인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는 역할을 할 듯하다. 조지 6세는 평범한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대단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장애와 결함을 지닌 평범 혹은 평범 이하의 사람이다. 주인공의 이러한 이중성은 관객이 한편으로 그를 동경하고, 다른 한편으로 동정하면서 영화 서사에 몰입해 가도록 유도한다.

또한 콤플렉스의 극복 과정이라는 주제가 갖는 보편성이 주효했다. 영화 초반부에서 강조되는 것은 조지 6세의 말더듬증이 대단히 심각한 정도라는 점이다. 저명한 의사와 전문가들이 치료에 나서지만, 말더듬 증세는 악화되면 악화됐지 나아지지 않는다.
영화 첫 장면은 대영 박람회 폐막식 연설에 실패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연설은 관객에게도 답

답함과 짜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한다는 감동적인 결말은 영화 시작 전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구태의연한 실패 극복담, 진부한 성공신화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영화가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철저히 허구라면 이 서사를 관객의 판타지를 부추긴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가 진짜 있었던 사실이라는 점은 관객에게 묘한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인간은 누구나 결핍을 경험하고 그것은 성격 장애를 초월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일평생 자기 속에 그 어두운 그림자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진실이다. 이런 진실성을 인정하기에, 한 인물의 장애 극복기인 이 영화에서 관객은 공감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주목받는 리더십과 연설에 대한 강조가 영화의 시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과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성공의 비결은 스피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말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가 없었지만, 말·화술·스피치가 21세기에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2차 세계대전 당시는 더욱 리더의 연설이 중요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히틀러의 연설이 잠시 등장하는데 적절한 억양과 제스처를 동반한 그의 연설은 청중을 휘어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와는 정반대로 억양 없이 떠듬거리는 조지 6세의 연설은 초라하기만 하다. 하지만 조지 6세의 말을 통한 선전포고는 영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화려한 기술에서 비롯되지 않은 진성성의 결과였다. 전략이나 기술보다 진정성이 가치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숱한 말들의 주체로, 혹은 객체로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화려한 언술이 아닌, 진정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면 좋겠다.  정재림 (2010서울기독교영화제 영화비평 우수상 수상)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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