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의 물음이 아닌 어떤 모습이 교회일까를 생각해보자. 처음 교회가 생겼을 때가 교회의 전형이라 한다면, 우리는 처음 교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을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교회마다 그 모습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단, 교파를 비교해 보더라도 큰 특색이 별로 없다.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마찬가지다. 교회의 모습이 정형화한 모습으로 비슷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더더욱 교회의 다양한 모습이 요구되고 있다.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시대에서 교회가 어떻게 그들을 수용해야 하는지는 꽤 중요한 질문일 것이고, 교회가 고민해서 답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에 적절한 답으로서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멋지게 서가고 있는 드림교회를 찾았다. 글 김승환 · 사진 김준영


성도를 더 가까이서 만나다
드림교회는 1999년 4월에 분당 정자동에서 시작됐다. 개척 당시 IMF가 찾아온 어려운 상황이라 대한민국은 모두 힘들었다. 이 시대 무엇을 해본다는 것은 큰 용기를 품고 바다를 향하는 모험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드림교회는 그렇게 모험을 시작했다. 제법 큰 지하를 마련하고, 플랜카드 하나 붙였다. “큰 교회 부목사로 근 9년 가까이 있으며 여러모로 많이 배웠죠. 그런데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특히 성도들이 담임목회자와 교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죠. 나는 성도 한 명 한 명을 품고 만나는 목회자로 교회를 섬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곤 무식하게도 교회를 개척한 거죠.” 성도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교회에 소속감을 느낀다지만 하나님 앞에 개인으로 서면 너무나 고독해 보였다고 강기호 목사는 말한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줄 몰라 끙끙대며 스스로 이겨내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를 꿈꿨다.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다
드림교회의 시선은 늘 소외된 곳, 그늘진 곳, 눈물이 고인 곳에 머물러 있다. 특히 교회를 시작하며 피씨방 같은 장소를 마련했는데, 주변 학생들이 폐인이 될 정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슴에 핀처럼 와 박혀 고통스럽게 했다. 게다가 외국에서 한국이라는 다른 문화권으로 와 가정을 꾸린 다문화가정에게도 관심이 흘렀다. 해외에서 선교하는 선교사, 그리고 그분들이 한국에 들어와 거처해야 할 곳 없이 떠도는 발걸음에도 마음이 가 닿았다. 북방의 우리 동포들에게도 드림교회는 손을 펼쳤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애통하는 교회를 꿈꿨기에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라면 드림교회는 힘을 기울여 함께하려 한다. 드림교회 사역은 늘 그렇게 시작한다. 사람과 돈을 의지하지 않고 애통하는 마음과 눈물로 나아간다. 작은 시작이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시기에 단단하고 야무진 결실을 맺고 있다.

YWCA와 연계하여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것이다. 강사를 섭외하고 재정을 후원하며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을 교육하고 상담한다. 북방의 동포를 돕기 위해 전적으로 후원하는 선교사를 지금도 계속해서 만나고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 동포를 위한 그들의 마음이다. 또한 같은 처지의 선교사들이 국내에 돌아와 마음껏 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공짜로 제공하는 선교관을 운영 중이다. 게다가 소외된 자를 향한 그들의 수고는 밥퍼 사역과 결을 같이 하였고, 지금까지 연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수고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강목사는 밥퍼 사역이 초기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장신대 선후배 사이에서 다일복지재단 이사직을 맡은 작년까지 그 사역의 중심에서 강목사와 드림교회는 최선을 다해 섬겼다. 지금도 교인들의 대부분이 해외에 나갈 때 착한여행의 형태로 해외 밥퍼 공동체를 순례할 정도니 소외된 자를 향한 그들의 사랑의 헌신도는 그 깊이를 재기 어려울 정도다.

가족과 하나님이 있는 학교를 만들다
드림교회의 가장 큰 사역은 데오스중고등학교(교장 김태호)를 운영하는 것이다. “대안학교는 그 중심이 애통이어야 합니다. 많은 기독교 대안학교가 거룩과 의를 강조하고, 거기에 이르도록 학생들을 꽤 강하게 독려하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필요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중심일 수 없습니다. 대안학교의 중심은 애통함입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통하며 바라보고 다가가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을 대해야 하지요. 처음엔 2명으로 시작했어요.”
아이들 마음속 애통을 예수님의 애통함으로 바라보니 일은 쉬웠다. “처음에 시작한 아이들을 제 집에서 밥해 먹이고 했어요. 그 아이 중 한 아이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아이였죠. 후에 대학에 입학하고는 이렇게 고백하더라고요. 데오스학교에는 하나님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목사님은 나를 아버지처럼 대해주셨다고 말입니다. 전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은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얻은 아이들이라고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고요.” 잠시 생각에 잠긴 강기호 목사는 현재 60여 명이 모이는 학교가 되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일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에 온 학생들은 공교육이 따라올 수 없는 따뜻하고도 특화된 학습프로그램으로 자신만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졸업생의 진학률을 물으니 꽤 좋단다. 패자부활전을 치른 학생들이지만 자신을 발견하고 꿈과 비전을 찾아 하나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품은 한국의 리더를 빗다
데오스학교는 크리스천 리더를 키우는 것이 목표이며 동시에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이 나라를 보며 애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학교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 운영하는데, 첫째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 학부모는 사교육(예체능계 제외)을 시키지 않겠다는 데 서명해야 한다. 둘째는 주도적 학습을 지향한다. 교사가 주도하고 학생은 피동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준다.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길러낸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이 나라에 소망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지도하고 있다.

하나님을 체험하며 예수를 닮아가다
드림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는 아니다. 그런데 크다. 하는 일도 크고, 꿈도 크고, 비전도 크다. 움직이는 폭도 크고 믿음도 크다. 그들은 교회의 미래도 규모에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당연히 학교의 미래도 사람에 있다고 믿는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건 학교도 교회도 마찬가지라 한다. 모두 그런 꿈을 품고 자란다. 특히 하나님을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는 예배,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는 찬양,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섬김과 교제와 선교는 그들에겐 별 흥미를 주지 못한다. 기도한 후 돌아서 혼자 있으면 공허함이 가슴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가 자신들의 기도이길 꿈꾼다. 삶의 현장에서 적확하게 힘을 발휘하는 말씀과 예배가 그들이 품은 꿈이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만히 깨닫고,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그 곳에 마음을 두는 드림교회는 지금도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 보며 단단히 자신만의 보폭으로 걷고 있다.

드림교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75-2번지
031-711-1485 | dreamchurch.or.kr

인·터·뷰 드림교회 강기호 목사 인터뷰
하나님의 숨결에 따라 춤추다


그의 첫인상을 뭐라고 설명할까. 분당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외모.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순박한 웃음은 도시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매력이 흘러나오는데 볼매 목사님이 아닌가. 세련된 말솜씨와 그 이면에 보이는 강인함이 사람을 끌어들이더니, 저돌적으로 무엇인가를 뚫고 나가려는 기세를 던져 주었다. 게다가 마치 긴 도보여행을 마치고 막 돌아와 한숨을 돌리다가도 다시 짐을 싸들고 가볍게 먼 길을 떠나려는 청년의 신선함까지 엿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오라고 했는데 어머니와 상의하자 어머니는 선장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상황이 아니었죠.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한 후 5년 가까이 배를 탔습니다. 어부의 고단한 삶을 일찍 경험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소원함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섬마을의 작은 교회에 전도사님이 목회자가 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방통고를 졸업하고 장신대 기독교육학과에 들어간 거죠.”

정치적 격변기를 살던 당시에 그는 장로교청년회(장청) 활동을 열심히 하며 사람의 변화는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른 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이 땅에 예수님의 제자를 세워나가고자 했던 그의 젊은 열정은 사역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순수함에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일까. 그에겐 좋은 멘토들이 늘 함께했다. 목회의 길로 안내해준 채영남 목사, 기독교교육학의 큰 스승인 사미자 교수, 20여 년을 함께 해온 밥퍼의 최일도 목사, 첫 전임사역지에서 신앙의 균형을 깨닫게 해 준 박종순 목사, 설교하는 목회자로서 모델이 된 곽선희 목사는 지금의 강 목사를 세워준 고마운 분들이다.
“해보니까 목회가 재미있습니다. 참 재미있어요. 마치 모험하는 것과 같아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때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따라가는 삶이 행복합니다. 처음에 아무도 없는 상가 지하에서 개척을 시작했고 2~3명으로 대안학교를 세워 여기까지 왔지만 하나님의 가치를 좇아왔기에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개척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여전히 행복한 목회자다.
“애통함이 있는 사역자이고 싶어요. 시대에 대한 아픔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리며 하나님의 관점으로 가치를 새롭게 밝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목회는 한평생을 받쳐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기꺼이 보리떡 한 조각이 되어 예수님의 손에 들리고 싶다면 이 땅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그런 인생이고 싶습니다.”

보리떡 한 조각으로 주님 앞에 서고 싶다는 소박한 고백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사역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시대적 소명을 잃지 않고 싶다던 강기호 목사. 그의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소망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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