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이란 만화가 있었지요. 오래전 <광수생각>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나사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구형 라디오였는데, 나사 하나가 빠졌지만, 소리는 잘 나옵니다. “나와 같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지요. 나사와 같은 삶이라니, 안타깝다고요. 글쎄요, 여러분은 다르십니까?

사람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 일 없는 듯이 굴러가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자꾸 소외됩니다. 불편한 마음 한가득 이지만, 어느 순간 결단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나는, 내가 사라지면 가동이 중단될 만큼의 중요한 부품이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나사와 같은 삶을 버려야 할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도구된 삶에 대한 열망
우리는 종종 성경을 예로 들어 ‘도구’된 삶에 대해 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는 데에 쓰였고,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포문을 여는 도구로 쓰였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 쓰였다고 말입니다. 모든 상황과 삶을‘ 도구’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긴 하지만, 많은 설교와 책들은 ‘도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셨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도구로 사는 삶, 괜찮죠. 그래서 인지, 우리의 기도도 ‘도구’에 맞춥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한 점이 되길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의 일을 돕고 싶습니다. 나를 사용해 주세요, 내가 그 일을 감당하게 해주세요, 나를 들어 써주세요.’‘ 도구’란 단어만 없을 뿐, 우리는 수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런데요, 자신을 삭개오나 나사로, 네 명의 도움을 받아 예수를 만난 중풍병자, 광야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 민족 중 하나가 되길 바라며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조금 무리한 예를 들긴 했지요. 하지만, 왜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에 포함되지 않았나요? 네, 우리는 중요해지고 싶습니다. 열두제자가 예수님 옆자리를 놓고 싸운 것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조금이라도 더 큰 집을 짓고 싶어서 하늘 보화를 쌓고 싶은 마음에서죠. 아, 어떤 분은 교회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아니라고 해도 왠지 중요한 자리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장로가 되기 위해서 돈을 썼다느니, 차량봉사로 얼굴을 비췄다느니 하는 식의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돌아다녔습니다.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어디서나 찬양을 할 수 있지만, 단상 위에 올라 찬양할 수 있는 찬양 팀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합니다. 건반을 칠 줄 알아도, 조금 더 실력이 좋은 사람에게 자리를 줍니다. 찬양 인도는 훨씬 더 치열합니다.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할 뿐더러 그에 맞는 통솔력과 신앙은 기본입니다. 전문직이 생겨나는 거죠. 예배에 쓰이는 영상에 관한 제작과 편집, 음향 마스터링, 조명, 워십 댄스 등등 어느새 그냥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시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나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멀스멀 이런 말도 나옵니다. 이제, 내가 없으면 예배는 어떻게 하지?

네가 없으면 반주는 누가 하니?
도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과 도구된 삶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 같다가도 곧 문제를 일으키곤 하지요. 바로, 주객이 전도될 때입니다. 마치, 편리를 위해 스마트폰을 사놓고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주 쉽게 이런 상황을 맞이합니다. 사람이 사라지고 자리만 남습니다. 내 이름이 없어지고 반주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너무나 쉽게 하는 겁니다. ‘네가 없으면 반주는 누가 하니?’ 반주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요. 예배가 전문적인 모습으로 변할수록 일상적인 것과 멀어지는 것이지요. 가끔은 가정교회라고 말하는, 가정집에 모여 앉아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그립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은,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겨서 매번 참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맡은 일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빠지면 너무 휑하기 때문에, 빠지면 뭐라고 할까 봐, 그랬습니다. 반주를 안 하려고 머리를 쓴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다시 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너무 휑했거든요. 그렇게 자리를 탐내다가 경쟁자를 제치고,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만두면 된다고요? 그럴 수 있겠죠. 그런데 이미 제 신앙은 봉사와 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좋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되는 일은 참다운 봉사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다른 선택도 있습니다. 나사와 같은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방법은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라고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교회가 잘 만들어진 구조나 기계가 아닌 유기적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하나님께선 우리를 쓰고 버리는 도구로 만들지 않으셨고, 그렇게 사용하지도 않으셨지요. 하나님은 동역자가 필요하신 것 아닐까요? 글 원유진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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