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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말, 바르지만 곱지만은 않다│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설명서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오승현│살림Friends


언어 순화의 필요성이 갈수록 요구되는 요즘이다. 하나의 단어가 생명을 얻고 널리 통용되는 과정이 예전과 비교하면 너무
나 순식간인지라 잠시 잠깐 미디어에서 멀어지는 날에는 대화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드문드문 생겨나 버린다.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원초적인 단어의 조합들. 전자레인지에서 딩동 소리가 나기도 전에 ‘이기적인 몸매’ 나 ‘우월한 유전자’ 같은 단어는 잘 데운 인스턴트 음식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사용자의 흥미를 위해 극단적으로 과장되어 있다. 네트워크로 말미암은 놀라운 정보 공유력으로 인해 우리의 언어지도는 매일매일 재스민혁명으로 가득하다.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라든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같은 개인의 언어 사용에 대한 고찰 내지는 조언일 것만 같다. 하지만 정반대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거쳐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는 어휘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폭력성과 불평등함을 조명한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언어에는 그 스스로 역사성과 사회성이 있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우리 사회가 걸었던 발자국이 묻어있다. 비단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거는 차별과 편견에서 자리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해서 오랜 시간 사용해온 단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몹시 불편하다. 비트겐슈타인의 인용으로 이를 극대화한다. 당신이 사는 세계는 엉망진창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묻고 싶은데 ‘그냥 그렇다고’ 이상의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산부인과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시댁과 처가의 호칭 간 애매함을 정리해 줄 ‘애정남’ 이 짠하고 나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급격하고 오용된 단어들의 예를 든 바 있다. 언어 사용에서 지금과 같은 지각변동이 있었던 적이 또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우리의 말은 하루가 다르게 꿈틀거린다. 흥미와 돈벌이를 위해 유통되는 말이 있으니, 다정하고 따뜻한 말의 유통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바다처럼 거대하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언중의 말을 통제의 그물로 가두기란 불가능하다고. 우리 스스로 ‘못된 말’ 들이 우리를 ‘못된 세상’ 에서 살게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쾌한 자각을 한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자신의 세상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말을 탄생시키고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엄청나게 다행한 환경에서 사는 셈이다. 매일매일의 재스민혁명은 이런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 있다. 글 주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