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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5-06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 특집 5 _ 우리 엄마를 소개합니다.













글 · 사진 송건용

우리 엄마는 나와 달리 활달하시다. 소싯적엔 가족 모르게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나가신 적도 있으실 정도다. 
요즘 우리 엄마는 탁구에 푹 빠져 사신다. 아들 둘 군대에 다 보내고 시작한 취미인데, 아마추어 탁구 심판자격증도 따시고, 대회에도 여러 번 출전하실 정도가 되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참 좋으시다. 겨우내 내가 입고 다닌 스웨터는 대개 ‘메이드 바이 김 여사’ 다. 
엄마의 손재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나도 커피와 사진을 하고 있다. 
겉은 활동적이시지만 속은 섬세하시고 자상하시다.
남자라면 누구나 힘든 군시절이 있다. 난 친구도 애인도 아닌 엄마에게 큰 위로를 받고 무사히 군 생활을 마쳤다. 
유독 심약했던 나는 군 시절 못나게도 극단적인 결심을 한 적이 있다.
결심을 강행하려던 아침 화장실, 드라마처럼 그 순간 선임이 내 이름을 불렀다. “송건용! 여기 있냐? 편지 왔다!” 평소엔 오지도 않는 편지. 편지를 보러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뜯어보았다. 하얀 봉투에 반 장의 편지. 수신인은 고모였다. 어, 고모? 
의아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짧은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조카 건용이에게’로 시작한 편지의 마지막은 고모의 질문이었다. ‘세상에서 건용이 너를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누구일 것 같니? 고모도, 네 여자친구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네 엄마란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을 내용의 짧은 문장이, 그날의 못난 나를 흔들었다.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힘들 때마다 등장하는 원더우먼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힘든 걸 어떻게 아시는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 누구보다 날 사랑해줄 여자. 
엄마. 


엄마, 유일의 여자
글 · 사진 정효진


봄이 오고 꽃이 흐드러지면
단단한 운동화를 신고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엄마는 꽃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낡은 운동화와 붉은 립스틱의 부조화를
초월한 유일의 여자, 엄마.
그렇게 많은 낭만을 가지지 못한 예순의 여자는 
일 년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 앞에서 
매해 사진을 찍는다. 

우는 법이 없었던 엄마가 
우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울 때,
처음으로 내가 저 여자의 딸이라는 것이 미안했다.
내가 너무 많은 봄을 그녀에게서 빼앗았던가. 
주름진 손에 봉숭아 물 들인 손톱이 꽃잎처럼 발갛게 슬펐다. 

시간이 흘러 
봄꽃을 바라보는 엄마에게서 소녀를 본다. 

벚꽃 아래에서 
아직 나의 엄마가 아니었을, 그때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자식들에게 봄을 다 내주고도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유일의 여자는 엄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