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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5-06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 특집 4 _ 아빠,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아빠에게 쓰는 편지
아빠, 안녕! 

아빠, 안녕!
원래 이런 글에는 존댓말을 써야 하지만, 이렇게 편지 쓴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감히 시도를 못 하겠어. 지금도 손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어.
아빠한테 편지 쓰는 게 처음이잖아. 평소에 써 보는 연습 좀 해둘 것을….
초등학교 육 학년 즈음인가? 아빠가 실직하고 어린 마음에 우리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은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기도에 얼른 응답해주셔서 바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되었지만, 그 잠깐 사이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 그렇게 들어간 곳이 가락시장이었지? 사람은 밤낮이 바뀌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빠를 보며 알았어. 가락시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모습에 마음이 참 아팠었거든.
드라마에서처럼 길거리에 나앉거나 여관을 전전하진 않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삶의 무게가 주는 고통의 맛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아빠는 무슨 재미로 살까, 아빠의 꿈은 원래 화가였다던데,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했었다고 들었는데, 아빠는 지금 무슨 재미로 살아? 몇 번이나 묻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아. 오랜 시간 존재했던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처럼 가족을 부양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빠의 삶의 의미고 즐거움이겠지만… 나 같으면 그저 괴롭고 싫을 것만 같아서. 가끔은 아빠도 고등학교 때의 일을 떠올려보며, 그때 어떻게 해서든 그림을 계속 그렸다면 지금의 삶은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내가 모르는 아빠의 삶이 있겠지? 그 속에서 아빠는 좀 더 생기 넘치고 좀 더 웃고 있을 것이라 믿어. 내가 괜한 걱정과 괜한 죄책감을 품고 있는 것이라 믿을게.

여느 딸내미들처럼 애교도 있고 응석도 좀 있으면 좋으련만. 아빠도 알다시피 무뚝뚝하기로는 지상 최고의 나 아니겠어? 아빤 아마도 다른 딸 가진 아빠들이 하는 자랑 따위 해보지 못했을 거야. 그래도 아빠! 터무니없는 욕심이지만, 나는 아빠가 나랑 내 동생 덕분에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는 게 재미졌음 좋겠어. 욕심만으로 남지 않도록 노력도 할게.
아빠가 교회 다니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야. 믿기지가 않네! 항상 마음 한 쪽에 커다란 돌처럼 남아 있는 소망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어.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아빠한테도 고마워. 아빠가 그동안의 삶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느꼈을 모든 아픔, 하나님이 분명 갚아 주실 것을 알기에 더 기뻐. 실제로 아빠는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 마음의 짐을 던 것 같아서…. 역시 자식은 끝까지 이기적인 존재인가 봐. 
아빠! 앞으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대화합시다! 정말 많이 늦은 감이지만, 나도 귀여운 응석받이 딸이 되어볼게. 아무튼 사랑하고, 내 아빠가 되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글 윤지혜


엄마에게 쓰는 편지
엄마의 눈물

엄마, 저는 엄마가 눈물 흘리시던 날들을 모두 기억해요.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지금껏 버텨온, 여려 보이지만 누구보다 강한 사람.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울던 날을 어떻게 잊겠어요.

엄마가 동대문에서 옷을 떼어다 팔던 시절의 어떤 날이었어요. 그날은 수화기 너머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더 떨렸어요.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니까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고, 괜찮다고 했어요. 저는 그날 그 목소리에 눈물이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서른한 살이나 되어 아빠보다도 더 살게 됐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내 나이 때 엄마는 어떻게 버텼을까를 상상해요. 갑자기 남편을 잃고 가장이 돼 버린 스물여덟 여인에게 삶은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날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겨우 짐작하곤 해요.

엄마가 그렇게 자리를 잡으시고 우리 식구가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외환 위기로 주저앉아서 그린벨트에 있던 지하실로 이사해 살던 어느 날을 기억해요. 의료보험이 없어서 왜 아픈지도 모르고 끙끙 앓기만 하던 제가 다른 사람 보험카드를 빌려 진단을 받아왔었잖아요. 척추 관절이 굳는 병 때문에 아픈 거라고. 많이 굳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문제는 없을 수 있지만 치료방법은 없다고. 눅눅한 지하에 마주 앉아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봤어요. 곰팡이 핀 쌀로 밥을 해 먹고, 라면 한 봉지가 그렇게 비싼 것에 절망하고,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 했지만 한 번도 눈물 보인 적이 없으셨는데. 그때 느꼈어요. 내가 엄마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취직을 하고, 텔레비전에 얼굴도 나오고, 이제는 밥 벌어먹는 건 물론이고 자동차까지 사서 타고 다니던 어느 날을 기억해요. 우리 세 식구 같이 대학로 식당에 앉아 잘 차려진 밥상을 앞에 뒀는데도, 엄마는 말없이 굵은 눈물만 뚝뚝 흘렸잖아요. 엄마, 나 췌장에 종양이 있다고. 이게 암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의사가 그러더라고. 그날은 제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났어요. 수술을 해보니 결국 암이 아니었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어서 다들 감사했잖아요. 하지만 저는 엄마의 눈물을 더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어요. 

엄마, 제가 성공하고 싶다면 그건 엄마 때문일 거예요. 엄마의 꿈이 다 옳았단 걸 증명하고 싶으니까요. 제가 무거운 삶의 짐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언젠가 하셨던 엄마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일 거예요. 돈을 원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저도 기꺼이 제 짐을 지고 갈 거예요.
그리고 여태 결혼을 못 하고 있는 것도, 그것도 엄마 때문일 거예요. 엄마 같이 날 사랑해 줄 여자는 세상에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의 답은 항상 같았어요. 나중에 엄마의 눈물에 관한 얘기를 쓸 때는, 그 땐 아프지 않은 이야기가 훨씬 많을 거예요. 행복하게 살라는 말씀대로, 그렇게 살게요. 사랑해요 엄마! 글 조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