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에서 밴드음악, 힙합, 댄스에 이르기까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클래식 부문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클래식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가깝다고 할 만한 것으로, 유명 대중 가수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게 하는 경우는 있었다(어쩌면 이것이 ‘대중성’ 의 척도로 가늠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의 현재 위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 장면은 두 대의 피아노가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과 조화로운 즉흥 연주로 정말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았던가. 방식을 잘 고민하고 실력 있는 연주자와 작곡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클래식 연주 대결 프로그램도 재미있는 쇼가 될 수 있을 성싶다. 

연주 대결은 역사가 길다. 모차르트 시대만 해도 일 대 일 연주 대결이 흔했고, 모차르트는 이 대결에서 패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당시 흔했던 음악가들의 연주 여행이란 것도 이런 대결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탁월한 테크닉으로 인근 지역의 내로라는 음악인들을 주눅 들게 하던 천재에게 아직 새파란 젊은이가 대결을 청한다. ‘한 수 가르쳐 주시지오’ 하는 겸손한 멘트와 함께 시작한 즉흥 연주는 천재가 추구하던 선율과 리듬, 화성의 정확성을 전혀 무시한, 근본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문법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듣는 이를 전혀 새로운 세계에 데려다놓는 힘이 있다. 뭐랄까, 좀 더 아름답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진다. 청중이 환호한다. 한 천재가 새로운 천재에게 무릎 꿇는다. 무림의 영광이란 이렇게 찰나적인 것, 오직 역사가 그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사실, 연주 대결은 좀 더 멀리, 그리스 신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잘 알려진 것이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대결. ‘판’ 으로도 불리는 반인반수 사튀로스 마르시아스가 어느 날 멋진 피리를 손에 넣는다. 마르시아스는 이 악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테네 여신이 만든 피리였기 때문이다. 의기양양해진 마르시아스는 아폴론에게 당신의 리라로 이처럼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고 도발한다. 기가 찬 아폴론이 패배자는 승리자가 주는 벌을 달게 받는다는 조건으로 대결을 수락한다. 첫 대결은 무승부. 아폴론은 거꾸로 악기를 연주하자고 제안하고, 대결에서 승리한다. 아폴론이 마르시아스에게 내린 벌은 나무에 매달아 살가죽을 벗기는 것. 피리와 리라 소리가 가득하던 그곳에 끔찍한 비명이 메아리친다(이때 마르시아스 편을 들었던 이가 미다스 왕이라는 설도 있다. 화가 난 아폴론은 미다스 왕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황금손 미다스 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시절이 바뀌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대결의 심판관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먼 레브레히트는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이란 책에서 레코딩 기술이 보급되고서 클래식 음악에 새로운 경쟁이 도입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번 음반에 담긴 연주는 반복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연주를 예술적 영감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데까지 이르렀다.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의 음반을 갖추어 들으며 비교하는 일도 흔해졌다. “레코딩에는 본질적으로 경쟁의 속성이 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야 더 말할 것 없다. 그렇다면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다고 클래식 음악이 나태해질까 염려할 필요는 조금도 없겠다. 대결은 보는 이에겐 즐거운 것이 지만 지나친 경쟁은 마음과 피부를 상하게 한다.


강영특|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을 듣다가 그만 잠들어 버리고 마는 클래식 초보. 그래도 책은 고전이 최고라고 믿는 고지식한 출판 편집자.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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