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다양한 빛을 내는 여러 가지 유리와 돌들이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 홀로 있을 때는 그 모양과 빛깔이 생경하지만, 한데 모여 각자의 자리에 턱턱 들어맞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전체를 이루어 신비로운 예술로 재탄생한다. 어쩌면 교회 공동체를 정확하게 표현한 예술이 모자이크이지 않을까? 각진 모서리처럼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은 조각들이지만 서로가 연결될 때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서울모자이크교회는 2008년 4월 그렇게 문을 열었다. 글 · 사진 김승환   

우리는 꿈이 있는 개척교회다
교회를 새롭게 시작할 때 한국 교회는 개척이라는 말을 쓴다.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말이다. 거친 땅을 일구어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드는 일이 개척의 뜻이라면 거칠고 상처가 많은 사람들,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부드럽게 감싸고 힘을 북돋아 기쁨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드는 진실한 소통의 만남이야말로 정말 개척의 의미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망을 서울모자이크는 교회를 시작하며 고스란히 자신의 비전에 담았다. 그들이 담은 비전은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한 사람의 영혼을 향한 정결한 목마름이다. 그 목마름을 순수한 애절함으로 치환하여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처럼 그들을 찾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리곤 무의미한 만남으로 끝내려 하지 않고 그들의 영혼까지 마주하여 만난다. 한 명의 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고 참된 성도 한 명을 세우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둘째는 이천 년 전 예수님이 세우고자 했던 교회의 원형을 따르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요즘 비난 일색이다. 교회가 상처로 얼룩져 있다. 이것 또한 품어 내고 싶다. 어디서부터일까. 서울모자이크교회는 그 지점에 서서 다시금 출발해보려고 한다. 상처투성이 교회를 품어 그 기초를 다시 놓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웠던 그 교회의 지점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서울모자이크교회는 자신의 시선을 내부에 두기보다 외부로 향한다. 한 사람의 참 성도가 참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그 공동체의 역량을 내부 지향하지 않고, 외부 지향하자는 것이다. 이 비전에 단단한 성도들은 각자의 모양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섬긴다.

개척교회, 문화 선교를 말하다 
문화 선교라는 말의 정의도 어렵지만, 한국 교회가 늘 부담을 안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고 있지만 잘 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고민스럽다. 특히 개척교회라고 불리는 교회일수록 선교, 문화 선교 등은 다른 교회 이야기일 수 있다. 게다가 목회자 자신이 선교에 역량을 쏟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박종근 담임목사는 이 점을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이야기한다. “사실 예수님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문화 선교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 자신이 문화 선교의 중심에서 있어야 할 겁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목회자는 교회 공동체의 리더며 지역과 시민 사회의 문화 선교자입니다. 교회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교회 밖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이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교회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교회가 아닐까요?” 
그는 문화를 도구로 선교적 역할을 해야 할 때 정작 목회자가 교회 공동체 리더로서 역할을 책임감 있게 감당할 것을 강조한다. 문화를 통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작은 교회와 개척 교회의 고민을 아주 잘 이해한 말이다. 리더는 함께 따라주는 자들의 즐거운 동행도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 문화 선교사로서 박종근 목사가 지금껏 쌓은 목회적 경험과 교수로서 보였던 역량, 네트워크를 이용해 아주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이끌면, 함께하는 성도들은 기쁨으로 돕는다.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 다른 개척교회를 돕는다. 정기적으로 지역 개척교회를 방문해 함께 수요예배를 드린다. 또한 매해 40여 명의 농어촌교회 목회자를 초청해 1박 2일간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듣고, 그들의 교회에 힘을 북돋아 준다. “목회 평생 반주자 하나 없이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신 분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선교적 리더니까요.” 이 섬기는 일에 서울모자이크교회 성도는 기쁨으로 동참한다. 한 모자이크 조각이 하나의 다양한 빛으로 조화를 이루어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작은 이의 진정한 벗으로 살다 
교회를 시작한 후 4년 사이에 3번씩이나 예배의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순간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더군다나 어디서건 지역사회와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도전했다. 지금 자리에 온 후로는 토요재능교실을 통해 지역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재능을 함께 나누고 있다. 교회 안에 다양한 모자이크 조각과 같은 재능을 지닌 성도가 자기 자리에서 지역을 섬긴다. 미술, 음악(노래와 악기), 외국어, 스포츠(탁구교실) 등을 열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교회 인근에 있는 빌딩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강남 도곡동이라는 교회 위치를 십분 활용해, 주변의 사무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큰 빌딩에 교회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 교회가 있음을 알리는 계기도 되겠지만 교회는 당신의 이웃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또한 시대의 약자들, 특히 북한, 중국, 네팔 등 지구촌의 소외받는 작은 자들에게 관심을 품고 교회를 향한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바꾸어가는 사역을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특히 북한 영유아를 돕는 사단법인<모두함께>를 세웠다. 일부에게서 법인 허가를 받아 1월부터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준비 중이다. 2008년 설립한 개척 교회이자, 작은 교회인 서울모자이크교회는 결코 작은 교회가 아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색을 잘 맞추어 조화를 이룬 공동체를 통해 누군가의 진정한 이웃으로 오늘도 빛을 내고 있다. 2013년 그들의 빛을 통해 드러날 그 누군가를 진심으로 기다려본다.

 
서울모자이크교회
서울시 강남구 도록1동 963번지
역삼4 럭키아파트 상가 2층 202호
02-573-5973



인 · 터 · 뷰 서울모자이크교회 박종근 목사 
한 사람의 성도인 목사

걸걸한 목소리와 시원시원한 말투, 박 목사에게서 풍기는 모습은 소박한 시골 농사꾼이었다. 겨울 걷이를 막 끝내고 돌아와 내년 파종을 기다리며 한숨 고르는 듯해 보였다. 참 열심히 살아온 인생길. 누구에게나 삶의 여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의 이야기 한 보따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충청도 오송읍에 있는 궁평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누구에게 이끌려간 것도 아닌데 교회가 그렇게 좋았지요. 종손이라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는데 16살 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 정도니 그 때는 교회가 제 삶의 전부였습니다.”
박 목사는 자신을 가르친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이름을 지금도 줄줄 다 외우고 있었다. 주말이면 고향으로 돌아와 교사로 헌신했던 대학생들. 그 중에 세 분은 목회자, 한 분은 장로가 되었단다. 17살쯤, 자신의 길에 대한 소명을 강하게 인식했 고,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안양대(전신 대한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첫 사역은 우이중앙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열정이 대단했었던 것 같아요. 그 교회는 제 인생에 가장 값진 것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박기풍 목사님을 통해서 목회자가 누구인지 크게 배웠지요.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가도록 허락해주고 돌아와서도 사역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두 번이나 교회를 개척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에는 꿈도 못 꾸는 일이지만 친구와 교인들의 도움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샌디에고와 LA에서 개척 이야기를 어찌나 신나게 말씀하시던지.(웃음)
“그 때는 가게 앞에 가마니만 깔고 예배를 드려도 교회가 되던 때에요. 실제로 봉천동에서 그렇게 시작한 교회가 지금은 제법 큰 교회로 성장하기도 했지요. 미국에선 가정집에서 모였어요. 건물이 필요 없죠. 부부들이 참 많이 출석해서 좋았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아내도 그 시절을 너무나 즐거워합니다.”
 
박 목사는 유학을 마치고 안양대에서 20년간 교수로 섬기며 신학대학원 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설립자인 김치선 목사의 건학 이념에 따라 ‘2만 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개척 정신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그래서 좋은 임지를 마다하고 97년에 또다시 개척한 교회가 잠원동에 열린문교회였다. 그는 10년 동안 목회하기로 마음을 먹고 700명에 이른 열린문교회를 두고 2008년에 사임했다. 그리고 이 교회를 다시 개척했다. 한 번도 하기 어려운 교회 개척을 4번이나 했으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개척을 너무나 어렵게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죠. 열정을 품고 시작하다가도 물질과 관계에 상처를 받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교회 개척에 있어서 건물보다 중요한 것이 ‘스피릿’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교회가 교회 재산을 가지고도 다툼을 많이 하는데 사실 교회 건물은 하나님의 것이요, 나라와 지역사회의 것이에요.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건물보다 그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 비전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목회를 오래했지만 최근에 와서야 교회를 향한 애통의 마음이 더 간절해짐을 깨닫고 있어요. 오히려 더 소박하게 돌아가고 싶어요.”
그는 어린 시절 동네 교회 전도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자전거에 보리쌀 한 봉지를 매달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목회자의 삶이 무엇인지 알았단다. 목회자 세습뿐 아니라 원로목사제도도 반대하는 그는 은퇴를 하고 나면 평범한 성도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박 목사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교회를 향한 애절함이 전해졌다.
그대는 우리의 참 좋은 목회자입니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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