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딸이 아빠를 버려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어도, 신생아를 바꿔치기하고, 살인과 치정, 불륜이 등장해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게 되어버린 막장 드라마는 ‘돈 되는’ 드라마의 기본 요소로 자리잡았다. 
아마도 <내 딸 서영이> 때문일것이다.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버린 딸의 선택을 보고 시청자는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무능력과 실수로 딸이 고생한 이야기가 밝혀지고, 극 후반으로 가면서 아버지의 지극한 딸 사랑과 결국은 가족이 우선이라는 교훈적인 화해 분위기 조성으로 시청률은 급반등했다. 어마어마한 막장 코드라도 폭풍같이 밀려들 감동을 위한 초석이라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새로울 것 없는 드라마의 예상치 못한 힘
<내 딸 서영이>의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기 위해서일까, 뒤를 잇는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은 안전한 길을 택했다. 막장 드라마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출생의 비밀과 여배우의 과거, 버림받은 남자의 복수 등 새로울 것 없는 막장 코드의 조합이다. 여기에 신데렐라스토리를 큰 손질 없이 덧바른다. 재능 없는 재투성이 아이의 연예계 데뷔는 성공적이어야 하지만 소속사 대표와 레스토랑 점주와 이룬 삼각관계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렇다 할 성공을 이루어 내지 못 하더라도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를 신을 것이다.
설정만 보아도 기대가 떨어지는 이야기인지라 상당 부분의 제작비를 끌어다 썼을 스타의 조합도 맥을 못 추고 있을 때, 대화를 멈추고 집중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순신(아이유)의 엄마 김정애(고두심)다.
업둥이로 들인 셋째를 제 자식처럼 아끼며 살던 정애는 두 언니에 비해 가진 것이 없어 어깨 한 번 제대로 못 펴보는 막내가 안타깝다.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는 막내의 말에 제 일처럼 기뻐하다 사기를 당하고, 사기로 잃은 돈을 갚으려고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러 나선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남편이 벼락같이 세상을 떠나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려니, 업둥이인 줄로만 알았던 막내가 알고 보니 남편 옛 애인의 딸이라고? 
믿음이 두터울수록 거짓이 주는 균열은 파괴력이 상당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남편에 대한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져 나가, 정애의 가슴에 큰 응어리로 남은 것이다. 정애가 보여주는 초점을 잃은 눈과 핏기 없는 얼굴, 부스스한 머리와 톡 건드리면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한 걸음은 고스란히 상실감과 배신감의 무게를 지닌 채 시청자에게 다가가 가슴을 친다. 주력 스토리라인이 아닌 곳에서 이렇게 드라마는 스스로 설 힘을 얻었다.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를 반대하며
우리가 ‘이야기’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
자의 소중한 한 시간을 보장받은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할 것인가.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제작진에게 ‘죽음’은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이야기를 꼬아놓을수록 풀어내는 답답함과 쾌감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이제 시청자가 궁금한 건 어떻게 진실을 은폐하고 등장인물이 위기에 이르며 어떻게 화해하고 행복하게 마무리하는지 등의 과정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요즘 열연이 도리어 민망한 시대를 산다. 인기 때문에 연기력과 상관없이 주요 배역을 맡아대는 스타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연기가 아닌 자극적인 소재와 전개로 승부수를 던지는 드라마가 늘어났다. 
그래도 배우는 드라마 속 ‘현실’에 발을 딛고 진심으로 살아내야 한다. 시청자를 대면하는 이는 작가도 연출도 아닌, 배우이기 때문이다. 기대하진 않아서일까, 배우가 주는 무게와 그 힘을 보며 반갑고 그만큼 부끄러웠다. 혼잡해질수록 중심을 잡아가는 노력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배우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시청자가 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껴 저절로 시청률을 보장받을, 기적과 같은 드라마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글 원유진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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