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자녀가 서울의 한 국제중학교에 ‘사회적 배려대상’ 자격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사회적 배려 대상 입학생 중에는 유명했던 전직 국회의원의 아이도 있었지요. 또 학교에 큰 금액을 기부한 이들의 자녀들 상당수가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까지 연이어 불거지면서, 이 학교의 이름은 연일 검색어 순위에 올랐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선배에게 그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부모님한테서 줄곧 그런 얘기를 들어왔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좋다’라는 말의 의미는 복합적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생활 수준이 높은 것을 ‘좋은 삶’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학창시절 성적이 높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삶을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형이 서울대에 가려는 이유는 합리적인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보통 스스로 노력이 필요하니까, 노력으로 ‘좋은 친구’를 사귀고 훗날 ‘좋은 삶’을 얻는다는 논리는 그래도 그럴 듯 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라면 대개 자식들이 좋은 학교에 가기를 원합니다. 
서울대 뿐 아니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다는 국제중학교나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인기가 높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자식농사 만큼은 제 맘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원인 중에 하나는, 예부터 학부모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 자녀가 꼭 공부를 잘 하라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적어도 자녀 세대에는 부모의 삶을 그대로 대물림하지 않을수 있다는,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아들딸에게는 아직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많았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첫 부분에 말씀드린 국제중학교의 이야기는 
‘을’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 열아홉, 스무 살 때부터도 모자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이에게 계급장을 붙이는데, 그것이 학생의 노력이 아닌 부모의 돈이나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겪는 사교육 기회의 차이를 묵묵히 참고 공부하는 ‘좋은 친구들’에게, 공교육의 대표 격인 학교마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어떻게 ‘좋은 학생’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장이고 비약이지만 심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야 목격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
다. 공부는 잘 못했지만 부모님에게 돈이 많거나 힘이 있어서 해외 ‘좋은 학교’ 간판을 얻고, 또 부모의 힘을 등에 업어 ‘좋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 말입니다. 그런 분들 보면 어른도 힘 빠지는 일이 많은데, 어린 아이가 이러한 현실에 눈을 뜬다면 오죽하겠습니까. 옛날부터 학생에게 말하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 공부 열심히 해야 훌륭한(좋은) 사람 된다는 훈계를 계속하고 싶다면, 어른이 먼저 최소한의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현용| 커다란 머리만큼이나 세상의 아픔을 돌아보고 알리고 싶은 MB C 기자. 사실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고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는 여러 나라를 개 마냥 싸돌아다니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화려한 밥상보다 오직 맛있는 연유가 들어간 모카빵을 좋아하는, 크리스천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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