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예기치 않은 고통을 마주할 때, 그리고 그 고통이 밑도 끝도 없는 낭떠러지로만 이끌 때, 내가 믿는 그분은 과연, 어디 계신 것인가 몸부림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몸과 영혼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데, 다 그분의 뜻이 있노라, 하는 조언과 충고는 적어도 그 순간에는, 절대적으로 타자화 될 뿐이다. 그 긴 터널을 빠져 나오는 순간, 나와 함께 우시고, 고통당하신 그분의 현존을 그제야 깨달으며 우리는 주어진 삶의 길을 다시 걸어가곤 한다. 몇년 전 11월의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 채희동 목사(1964~2004)의 뒤를 이어 들꽃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이진영 목사를 만났다. 우연히도 마침, 급작스럽게 맞닥뜨린 고통에 인간의 한계와 무기력함을 느끼며, 한없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였다.

먼저 간 남편, 장례식에서 만나다
남편 고 채희동 목사는 <하나님ㆍ사람ㆍ자연이 숨 쉬는 샘>이라는 계간지를 통해 권정생 선생, 최완택 목사, 이현주 목사, 고진하 목사 등의 글을 담아냈고, 고향인 아산에 내려와 들꽃교회를 목회하며 깊어가는 영성을 조용히 나누고 있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재학시절 만났던 남편은 열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났지만,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하여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행복하게 지냈더랬다. 그렇게 갑자기 사고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처음엔 그냥 멍했어요. 영화 <사랑과 영혼>이 생각나더라구요. 잠깐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했죠. 잘 아는 언니가 문상을 와서 함께 울며 안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그 언니를 통해 남편이 나타나 이야기를 하더란다.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했더니,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에 떠났다고, 참으로 좋은곳에 와 있으니 울지 말라고 하더군요.” 남편의 이야기를 마치자, 그 언니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남편을 만나고 나서 기운을 차렸어요. 괜찮다고, 밥 먹으라고,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장례식을 치룰 수 있었죠.” 장례식은 남은 자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히 참으로 은혜로웠다. 마치 예수의 부활을 보는 듯 했다고. “함께 6년 살았지만, 60년 산 것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다며 인사하고, 보낼 수 있었어요.” 그는 이후, 목회를 하기 위해 감신대 신학대학원을 마쳤다. 석사학위논문집 첫 페이지에는 ‘나의 남편, 나의 스승, 나의 예수 고 채희동 목사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라고 적었다.

혹독하게 치른 ‘고통’이라는 공부
그분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만 주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목사 안수를 받고 들꽃교회를 목회하며 두 아이와 함께 생을 다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죽음 같은 삶을 피어나게 한 남편과의 그 ‘만남’ 때문이다. 들꽃교회는 주일이면 10여 명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삶을 나눈다. 혼자서 일방적으로 하는 설교의 형식 대신에 모두가 함께 말씀을 보고 묵상하여 나누면서더 풍성한 말씀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목회자와 성도의 구분이 따로 있지 않고, 함께 모여 밥을 먹는 한 식구로 편안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정경화된 예수, 만들어진 예수가 아니라 살아서 숨을 쉬는 예수를 만나고, 느끼고, 따르는 교회가 되고 싶어요. 교회가 정해진 틀에 끌려가기보다 늘 새롭게 무언가 만들어갈 수 있다면 살아있다는 증거겠죠.”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한 사람은 삶을 죽을 만큼 살아낸다. 막연했던 죽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삶과 가깝게 붙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인생의 고통이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또 자랐고, 자라겠죠.” 그 혹독한 공부를 치룬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하다. 공부는, 공부라 쳐도 그리움은 어쩌나. “그립죠. 보고 싶죠. 만지고 싶죠. 햇살 좋은 날엔 밖에 나가 둘이 함께 이불을 털었었어요. 지금은 나 혼자 끙끙 이불을 터니까. 그 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후후!” 사소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존재의 부재. 웃으며 말하는 그의 이야기 이후로 나는 잠깐, 다른 질문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떨 때는 매정하리 만치 생각이 나지 않기도 해요. 나는 밥만 잘 먹으면 이길 수 있거든요. 힘든 문제가 찾아와도 밥만 잘 먹으면 되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인터뷰를 하자고 했을 때 별로 할 말이 없다며, 그냥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했던 게.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하셨을 때
“기도하는 데 그러시더군요. 내가 너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갔으니, 네가 원하는 것은 다 주겠다고, 무엇을 원하느냐고요. 그 때 그랬어요. 겸손하기 원합니다.” 순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끄덕여진다. C.S. 루이스는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고통에 도달했다는 것은 그가 우주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에 도달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곳에 그대로 있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관통하는 우주적 고통과 마주하며, 앞으로는 ‘조화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이진영 목사. 고통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 살아있음의 증거라 믿으며, 몰아내야 할 적으로서의 고통이 아닌, 부활의 꽃을 피우기 위한 밑거름으로서의 고통을 삶으로 감내해온 그의 마지막 말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지금, 우리가 다시 ‘두 손을 모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기도는 생활이에요. 아니, 생활이 기도에요.”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기형도의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시가 가슴 아리게 저며 온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시인 기형도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던 그 ‘목사님’은 결국 그 동네를 떠나야 했다“.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찬송하는 법도 없어/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고, 게다가 “학생회 소년들과/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니, 불경스럽고 불성실하기까지 한 목사는 동네를 떠나는 것이 당연했다. 예수님이 걸레질하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난 그의 남편 채희동 목사. 기형도는 그 ‘목사님’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노래했지만, 그는 남편 채희동 목사가 걸어갔던 그 길 위에서 생활에 밑줄을 그으며, 들꽃 같은 삶을 피워내고 있다.  글 노영신 | 사진 정미희

이진영 목사가 추천하는 책 _ 걸레질하시는 예수

채희동|대한기독교서회

역시, 남편의 책이 제일 좋단다. 다시 읽고, 또 읽으면서 아, 이렇게도 깊이 깨달았던 사람이구나, 싶단다. 이만큼이나 깨달았던 이였기에 그토록 일찍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저자는 십자가가 문자 속에, 신학 속에, 교리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십자가를 걸레에 비유하며, 자기 희생, 자기 헌신, 자기 비움, 자기 나눔, 자기 내어놓음의 십자가를 이야기한다. 두 손으로 닦는 수고를 할 때 더러운 곳이 깨끗해지듯,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삶에서 짊어져야만 자신과 세상을 닦을 수 있다는 이야기.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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