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김준영
본디 이런, 그야 말로 산중에 학교를 하고 싶으셨던 것인가. 아니다. 나는 원래 감리교신대원을 졸업한 후 태백의 광산촌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까지 야심 하나는 크게 먹은 사람이었다. 허나 소위 거친 삶을 사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첫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부푼 꿈을 꾸고 멋지게 벌어질 목회 현실을 기대했지만, 내 현실은 그야말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광산촌 분들이 얼마나 거친지를 그때 비로소 알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동원해서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 사용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목회 현장이란 것이 대부분 그러할 것
주님이 성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얼마나 내 자신이 웃겼는지. 내가 강대에서 설교했던 모든 설교는 수많은(무한한) 주님 앞에서 했던 것이다. 주님 앞에서 설교하면서 온갖 주워들은 것, 어디서 읽은 것, 사변적, 논리적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주님 앞에서 말이다. 여태껏 나의 모든 목회는 주님을 내 앞에 앉혀 놓고 그저 지식과 머리, 말의 시건방이었다. 내 인생
이 삶에서 기다림은 행복이고, 설렘의 순간이다. 단지 기다리는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여쭙는 것이다. 갈등의 구조가 내 삶에서 일어나면 그저 하나님께 여쭙는다. 여기에는 동적, 혹은 정적 움직임이 사람마다 다양하게 필요하다. 아마 그 사람의 본디 성性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조용히 밤새 기도하거나 조용히 아무 말 하지 않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 영적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다. 한편 크게 소리치고, 온 몸에 힘을 주어가며 애통하는 것을 통해 의식이 멈추고 영적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방법은 고정적이지 않다. 나는 명상을 통해서도 영적 자각이 일어나며,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내 온몸에 전달된다. 그렇지만 요즘은 오히려 동적 활동의 집중을 통해 영적 자각이 일어난다. 그것이 더 편하다. 그래서 요즘 주로 엔진톱을 사용한다(웃음). 엔진톱을 들고 통나무를 베다 보면 그 동적떨림이 나의 온몸을 진동하면서 순간 육과 영의 의식이 멈추는 순간이온다. 이 때 영적인 내 자아와 맞닥뜨리면서 내 온몸에 덧대어 있는 수 많은 장치들이 벗어지고 영적 자각이 일어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귀로 듣는 경지를 넘어선 어떤 말씀을 나에게 던져 주신다. 이 대답이내 자신의 영혼에 영적 감동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내 자신과 만나는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의 끝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합일하는 것이다. 사람이 즐거움의 극치를 맛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할 때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이 즐거움은 우리가 창조 행위를 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완전한 극치다. 통나무집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두 손과 육체를 사용해서 집을 지어서 무형의 땅 위에 유형의 집을 지을 때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는 시간인것이고, 나의 즐거움과 하나님의 즐거움이 일치하는 지점인 것이다. 처음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삼무곡자연예술학교를 하는 것도 목사님의 영성과 관련이 있는가. 어떻게 보면 통나무집을 짓고, 영성 훈련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영적 감동이 밀려온다. 이것 또한 창조(성장) 행위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것도 소유, 계획, 판단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여쭙고, 듣고 하는 과정을 통해 너와 나가 없는 우리는, 모두 새로운 공동체로서 함께 자라나는 한 생명인 것이다. 삼무라는 것이 방금 말씀한 것인가. 그렇다. 무주, 무계, 무비(無主, 無計, 無非)다. 이 삼무는 내 삶이자, 여기서 함께 사는 아이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의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연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배우고, 배운 바를 예술로 표현해 낸다. 그리고 각자 스승에게로 찾아가서 묻고 답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언어이다. 그 배움의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여기, 이곳 골짜기이다. 그래서 삼무곡이다. 영적감동 이야기를 자주 말씀하시는데, 어쩌면 그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서(영접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찾아오는 평안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음악을 좋아하는가. 나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음악을 들
잠자리를 마련해 주신 손수 지으신 통나무집 교장실 2층에 자리를 펴고 누울 무렵, 목사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머리맡에 창문을 내일 아침동이 트자마자 열어 보세요.” 그리고 말씀하신다.“ 창문 열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불현듯 불쑥하고 내 삶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이 김종률 목사의 가장 큰 존재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내심 속으로 부럽고, 사모했었는데…. 놀이판에서 마음 놓고 소리치며 갈지자로 휘저으며 움직여 보고 싶다. 그저 하나님을 내 온 몸으로 느끼고 싶다.
삼무곡자연예술학교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사곡리 378번지. 033-578-9789 / 동서울에서 원덕행 무정차 직행 버스를 타고 조그만 원덕 정류장에 내려 하루에 2번 있는 버스를 타거나, 사모님(돌꽃 조현경)의 도움을 받아야 갈 수 있다.
책을 소개해 주십사는 부탁에 저는 책보다 우리 학교 학생 중 곽푸른하늘의 노래 가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 하겠다 하시며 강원도 깊은 밤 푸른하늘이를 불러 함께 청해 들었다. 그 감동을 어떻게 전할까? 가사만 살짝 맛보시라.
모든 게 멈춘 듯 시간이 멈춘 듯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새들은 허공에 날개를 펼친 채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파도의 소리는 소라껍질의 잠든 채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제자리에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도시는 어느새 숲처럼 고요해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흐르지 않는 물과 구름 / 그 어떤 소리도 없는 /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 모든 게 멈춰 버린 지금 그대와 나 그대와 나 / 너와 나 우리 둘 / 우리가 만난 후 모든 게 멈췄어 / 머리도 멈췄어 / 심장도 멈췄어 / 우리는 그렇게 서로만 바라보다 / 어느새 깨어나 서로에게 기대어 /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게 멈춘 듯 시간이 멈춘 듯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새들은 허공에 날개를 펼친 채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파도의 소리는 소라껍질의 잠든 채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제자리에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도시는 어느새 숲처럼 고요해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흐르지 않는 물과 구름 / 그 어떤 소리도 없는 /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 모든 게 멈춰 버린 지금 그대와 나 그대와 나 / 너와 나 우리 둘 / 우리가 만난 후 모든 게 멈췄어 / 머리도 멈췄어 / 심장도 멈췄어 / 우리는 그렇게 서로만 바라보다 / 어느새 깨어나 서로에게 기대어 /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