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하고 두 손을 곱게 모아 정성껏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괴이쩍은 소리인 듯하지만 파란 하늘 아래 녹색의 빛이 만연한 데에서 두 손을 벌려 힘껏 펴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과 마음껏 그 자체를 즐길때 그분이 내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기도 한다. 살아 계신 그분을, 살아 있는 내 온 몸으로 느끼며 누리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귀를 넘어선 내 몸으로 듣는다면 그 순간은 바로 오늘을 넘어선 영원이 된다! 그렇게 전율하는 영원은 이내 감격스러운 합일로 나를 이끈다! 정해진 룰과 제도에 붙매인 채 시들부들 꺼져가는 내 영혼이 안타까웠다. 해서 영혼의 감격스러움이 그리워 마음에 그 어떤 계획을 그리지 않고, 사전조사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물어물어 ‘삼무곡자연예술학교’를 향해 무작정 떠났다. 단지 ‘강원도 삼척시....’라는 성의 없이 끼적거려 놓은 주소가 적힌 메모만 뒷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말이다.

글·사진 김준영


본디 이런, 그야 말로 산중에 학교를 하고 싶으셨던 것인가. 아니다. 나는 원래 감리교신대원을 졸업한 후 태백의 광산촌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까지 야심 하나는 크게 먹은 사람이었다. 허나 소위 거친 삶을 사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첫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하였다. 부푼 꿈을 꾸고 멋지게 벌어질 목회 현실을 기대했지만, 내 현실은 그야말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광산촌 분들이 얼마나 거친지를 그때 비로소 알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동원해서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 사용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목회 현장이란 것이 대부분 그러할 것
인데, 그 현장을 새롭게 보려어떤 특별한 계기를 만들었나.
그렇다. 그렇게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저들을 변화시키겠다고 무턱대고 덤벼들던 그 때. 교인 사이의 분쟁에 휘말리면서 모든 게 싫어서, 무작정 월요일 새벽예배를 하고 나서 바로 대충 짐을 꾸려 나왔다. 누군가 정말 어려우면 만행을 떠나보라는 말이 퍼뜩 생각이 난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짐 꾸려 둘러메고 나왔다. 무작정? (웃음) 그렇다. 그러고서는 그냥 걸었다. 길이 닿는 곳 아무 데나. 그리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정말 내 교회 성도들이 정말 싫습니다. 저들을 변화시켜 주시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보내주시지요”라며 하나님 앞에 건방을 떨 대로 떨었다. 그러게 만행을 사흘 정도 했을 거다.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의 물길이 확 바뀌는 경험이었다. 자세히 말해 달라. 한 밤이었다. 도로변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내 앞에서 휙 하고 유턴을 하고 가는데 그 차의 전조등 불빛이 계속 내 앞에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혹시 가로등? (웃음)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둥근 원을 그린 그 빛이 내 앞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기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그 중심 안에 한 풀이 돋아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말이다. 순간 갑자기 고요해지더니 정막이 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네 힘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해보거라.’ 선명한 소리였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생명의 힘을 보았느냐? 그 생명이 저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네 설교를 듣는 그 성도들의 마음에도 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바로 나다. 내가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변화시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는데, 그분은 나에게 아주 간단한 대답으로 내 마음을 때리신 것이다. 바로 생명이신 주님이 믿는 성도 마음에 거하신다는 것!
주님이 성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얼마나 내 자신이 웃겼는지. 내가 강대에서 설교했던 모든 설교는 수많은(무한한) 주님 앞에서 했던 것이다. 주님 앞에서 설교하면서 온갖 주워들은 것, 어디서 읽은 것, 사변적, 논리적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주님 앞에서 말이다. 여태껏 나의 모든 목회는 주님을 내 앞에 앉혀 놓고 그저 지식과 머리, 말의 시건방이었다. 내 인생
에 영적 자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 많이 달라졌겠다. 그렇다고 하겠다. 그 후에 나는 내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주님을 마음에 담은 성도들에게 변화를 가하려고 절대로 강제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이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중한 깨달음이 내 삶을 지배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시니 나는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면 내 할 일 다 하는 것이다. 그저 그다음부터 구경꾼 노릇만 했다. 나는 한낱 구경꾼일 뿐…. 해석이 탁월하십니다(웃음). (웃음)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 해석은 또 하나의 화두였다. 내 삶에, 아니 누구나 자신의 삶에 사건과 사고, 문제, 갈등은 늘 일어난다. 그런데 대부분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나에게는 2가지 수련 지침이 있다. 첫째는,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확신한다. 둘째는, 내가계획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이것 또한 틀림없이 하나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갈등, 사고, 사건은 모두 위 두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를 만나면 나는 중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중재하려 하면 어느 쪽이든 상처를 입고 만다. 크고 작건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이냐는 물음만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물음은 내 큰 스승님이신 예수님께 여쭙는 구체적 표현이라 하겠다.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들을 것인가, 무
엇을 여쭐 것인가만 집중한다. 기다려서 들으면 된다. 쉽다. 영성이란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들은 내용대로 움직이 면 된다. 이때 여타 벌어질 상황, 예상되는 일, 부족한 내 현실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들은 대로 행동하면 된다. 여기에는 거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가장 좋고 유익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게 제일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의 태도이다. 그러니 내 삶의 자리는 그저 놀이판으로 승화하면서, 그 놀이판에서 즐
기는 내가 되었다.
놀이판에서 즐기면 되는 삶이 마음에 와 닿는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을 즐기지 못하는 데서 고민하지 않는가. 우리는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면 되는데 말이다. 맞다. 사고가 복잡하고, 말이 복잡하면 모두 피곤하다. 그저 하나님 앞에 단순하게 하나님 존재만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들음의 수련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런 삶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 실제 음성으로 이해하는 쪽이 있다. 혹은 반대편에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말씀으로 종결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쭙고 듣는 것을 더 이야기해 달라. 주파수를 하나님과 맞추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마음에 영적 감동이라는 방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에 따라 움직이면 그것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유익한 길이다. 이것이 자신도, 타인도 다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다.
이 삶에서 기다림은 행복이고, 설렘의 순간이다. 단지 기다리는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여쭙는 것이다. 갈등의 구조가 내 삶에서 일어나면 그저 하나님께 여쭙는다. 여기에는 동적, 혹은 정적 움직임이 사람마다 다양하게 필요하다. 아마 그 사람의 본디 성性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조용히 밤새 기도하거나 조용히 아무 말 하지 않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 영적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다. 한편 크게 소리치고, 온 몸에 힘을 주어가며 애통하는 것을 통해 의식이 멈추고 영적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다. 방법은 고정적이지 않다. 나는 명상을 통해서도 영적 자각이 일어나며,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내 온몸에 전달된다. 그렇지만 요즘은 오히려 동적 활동의 집중을 통해 영적 자각이 일어난다. 그것이 더 편하다. 그래서 요즘 주로 엔진톱을 사용한다(웃음). 엔진톱을 들고 통나무를 베다 보면 그 동적떨림이 나의 온몸을 진동하면서 순간 육과 영의 의식이 멈추는 순간이온다. 이 때 영적인 내 자아와 맞닥뜨리면서 내 온몸에 덧대어 있는 수 많은 장치들이 벗어지고 영적 자각이 일어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귀로 듣는 경지를 넘어선 어떤 말씀을 나에게 던져 주신다. 이 대답이내 자신의 영혼에 영적 감동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내 자신과 만나는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의 끝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 합일하는 것이다. 사람이 즐거움의 극치를 맛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할 때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이 즐거움은 우리가 창조 행위를 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완전한 극치다. 통나무집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두 손과 육체를 사용해서 집을 지어서 무형의 땅 위에 유형의 집을 지을 때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는 시간인것이고, 나의 즐거움과 하나님의 즐거움이 일치하는 지점인 것이다.
처음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삼무곡자연예술학교를 하는 것도 목사님의 영성과 관련이 있는가. 어떻게 보면 통나무집을 짓고, 영성 훈련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영적 감동이 밀려온다. 이것 또한 창조(성장) 행위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것도 소유, 계획, 판단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여쭙고, 듣고 하는 과정을 통해 너와 나가 없는 우리는, 모두 새로운 공동체로서 함께 자라나는 한 생명인 것이다. 삼무라는 것이 방금 말씀한 것인가. 그렇다. 무주, 무계, 무비(無主, 無計, 無非)다. 이 삼무는 내 삶이자, 여기서 함께 사는 아이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의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연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배우고, 배운 바를 예술로 표현해 낸다. 그리고 각자 스승에게로 찾아가서 묻고 답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언어이다. 그 배움의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여기, 이곳 골짜기이다. 그래서 삼무곡이다. 영적감동 이야기를 자주 말씀하시는데, 어쩌면 그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서(영접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찾아오는 평안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음악을 좋아하는가. 나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음악을 들
으면 어느 순간에 감동이 내 온 몸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특히 합주곡이나 국악, 연주곡들을 들으면 더 생생하다. 직접 연주를 하는 사람은 그야 말로 황홀경 속에 빠진다 한다. 그때 전율케 하는 감동이 마치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혹은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실 때 느끼는 감동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적 감동은 그야말로 세상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희열 그 자체이다.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것이나의 이 희열에 손상을 가할 수 없다. 나는 바로 이 희열 속에서 마음껏 뛰놀고 싶다. 아무 계획도, 판단도, 소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잠자리를 마련해 주신 손수 지으신 통나무집 교장실 2층에 자리를 펴고 누울 무렵, 목사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머리맡에 창문을 내일 아침동이 트자마자 열어 보세요.” 그리고 말씀하신다.“ 창문 열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불현듯 불쑥하고 내 삶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이 김종률 목사의 가장 큰 존재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내심 속으로 부럽고, 사모했었는데…. 놀이판에서 마음 놓고 소리치며 갈지자로 휘저으며 움직여 보고 싶다. 그저 하나님을 내 온 몸으로 느끼고 싶다.

삼무곡자연예술학교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사곡리 378번지. 033-578-9789 / 동서울에서 원덕행 무정차 직행 버스를 타고 조그만 원덕 정류장에 내려 하루에 2번 있는 버스를 타거나, 사모님(돌꽃 조현경)의 도움을 받아야 갈 수 있다.

책을 소개해 주십사는 부탁에 저는 책보다 우리 학교 학생 중 곽푸른하늘의 노래 가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 하겠다 하시며 강원도 깊은 밤 푸른하늘이를 불러 함께 청해 들었다. 그 감동을 어떻게 전할까? 가사만 살짝 맛보시라.

모든 게 멈춘 듯 시간이 멈춘 듯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새들은 허공에 날개를 펼친 채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파도의 소리는 소라껍질의 잠든 채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제자리에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도시는 어느새 숲처럼 고요해 / 그저 바람만 불어 바람만 불어 / 흐르지 않는 물과 구름 / 그 어떤 소리도 없는 /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 모든 게 멈춰 버린 지금 그대와 나 그대와 나 / 너와 나 우리 둘 / 우리가 만난 후 모든 게 멈췄어 / 머리도 멈췄어 / 심장도 멈췄어 / 우리는 그렇게 서로만 바라보다 / 어느새 깨어나 서로에게 기대어 /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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