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 내내 어색해하던 그가 마지막 컷을 위해 매니저에게 기타를 받아들었다. “친구가 선물해준 기타예요”라며 튜닝을 시작하자 스튜디오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는 마치 아무도 없는 듯 기타와 한 몸을 이루더니 가느다란 나일론 기타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는 그 음악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포즈가 괜찮은지 불안한 듯 계속 사진작가에게 조언을 구하던 어색한 모습은 사라지고, 음악과 하나 된 데뷔 21년 차 가수 조규찬만 존재했다. 그의 기타 소리와 지블리쉬로 마치 콘서트장이 된 듯한 스튜디오에는 일순간 자유가 찾아왔다.
기타 소리에 미안한 듯 끼어드는 셔터 소리마저도 깰 수 없는 자유. 귀를 파고드는 기타의 선율은 진심을 담고 있었다. 정미희 | 사진 탁영한


아홉 번째 안녕! 첫 번째 안녕히!
그를 만난 것은, 지난 7월 29일. 무덥고 긴 여름 가운데 그가 미국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렸
다. 이미 9월의 표지인물 인터뷰가 정해진 후였지만, 떠나기 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려면 3년을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리고 콘서트 준비에 바쁜 그가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긴 공백 끝에 9집 앨범을 낸 것도, 떠나기 전 3일 간의 공연을 한 것도, <오늘> 인터뷰에 응한 것도 모두 떠나기 전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떠나는 것이 언제 실감이 났느냐면, 공연을 기획해 주시는 분이 공연 제목으로 ‘hello farewell’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이전에 한국에 있을 때 공백과는 다른 차원이잖아요. 한국에서 모든 일을 일단 접고 전혀 다른 세상, 제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세상으로 가는 거니까요. 공연을 위해서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원래 오래된 친구는 친구를 멀리 떠나보낼 때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거든요. 하던 대로 농담하고, 하던 이야기 하고…. 저도 그렇게 하려고요.” 담담한 듯 쓸쓸한 말투. 그는 그렇게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려는 마음을 담아 9집 앨범을 준비했다. “천천히 느리게 다가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음악은 간식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입에 감기고, 바로 기억나고, 바로 감칠맛 나고 그런 것도 즐겁겠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이 오히려 음악에 본질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혹시라도 제 마음에 그런 욕심이 생겨서 훅(hook:짧고 매력적인 반복구로 소녀시대 ‘GGG’가 한 예다)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더 사랑받고 더 기억하기 쉽도록 노래에 훅을 삽입하는 것이 필수처럼 되어버린 시대. 하지만 그는 듣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문화적 권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대중들이 듣기에도 무리가 없고, 음악적으로도 만족스럽고, 자신도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어야 좋은 앨범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다.
“떡볶이를 예로 들면, 집에서 고기 넣고, 좋은 양념으로 해서 고급스럽게 만들어주시는 떡볶이도 몸에는 좋겠지만 그냥 거리에서 먹는 조미료 잔뜩 들어간 떡볶이가 더 맛있을 때도 있잖아요. 그건 논리로 해결이 안 되는, 먼지의 맛이라고도 하죠. 그 공기의 맛, 먼지의 맛을 어찌할 수 없거든요. 음악이 목적이던 시대가 끝나고 음악은 뭔가의 부속물이 됐어요. 드라마, 영화, 게임, 아니면 인터넷 서핑을 할 때 배경 음악으로…. 엄청난 용량의 작은 MP3 안에 너무나도 쉽게 곡이 저장되고, 나의 것이 되고, 버려지죠. 그런 메커니즘에 의해서 우리의 참을성, 음악에 대한 태도 그리고 취향의 변화 속도도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조근조근 조심스럽게 그가 요즘 음악에 대한 속내를 내비쳤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걸어 나가는 후배들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지금 추세라면 저와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앨범을 낼 수가 없어요. 너무나도 안타깝게…. 빠른 시간에 행사든 광고든 승부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제작이 나서질 않아요. 정말 제작자가 없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워야 할 하나님의 음악
음악으로는 언제나 청년이고 싶다는 조규찬. 음악적으로 계속 탐구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 유학도 결심했다. “배운다기보다 경험하고 싶어요. 제가 영미 문화권의 음악을 통해서 음악을 시작했고, 그것이제 음악의 모체에요. 재즈의 본고장이 미국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그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뉘앙스로 연주를 하고 있는지, 여기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껴보고 싶어요. 앙상블도 다시 해보고 싶고…. 앨범으로 들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섣불리 배움을 통한 당장의 변화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부한 것이 대번에 드러난다면 그것은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것들을 경험한 뒤 스스로 흡수하고, 소화한 것이 천천히 자신의 음악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꼭꼭 씹듯이 말했다.
“앨범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할 수는 없지만, 기술집약적으로 제가 그것보다 훨씬 더 음악적으로 많은 고민과 치밀한 준비를 해서 양질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그 음악을 가지고 공연을 하고싶어요. 현장에 발품을 팔아서 오는 분들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음악을 하는 거죠. 거기에서 여러분이 찾아주시면, 제가 할아버지 될 때까지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팬들 곁에서 오랜 친구 같은 음악을 하는 꿈과 함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꿈도 꾸고있다. 그리고 그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크리스천으로서 대중음악과 CCM에 대해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배우가 살인자의 연기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배우가 살인자인 건 아니잖아요. 이효리의 <10Minutes>을 예로 들면, 그 메시지가 조금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것도 그냥 연극이나 퍼포먼스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가사에서 필요 이상으로, 아니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굳이 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죠.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 하지만 우리에게 그 정도의 의식 성숙도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런 연극, 저런 픽션, 저런 설정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하는 이도, 듣는 이도 그렇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해요. 그렇게 된다면 조금 더 넉넉하고 조금 더 강인한, 부드럽지만 꺾이지 않는 강인한 하나님의 자녀로 건강하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그 예술을 허락하셨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세상에서 그 어떤 음악보다도 화려하고 멋있는 음악이 하나님을 믿는 이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대중음악의 변방에 위치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고, 대중음악 자체가 CCM이어야 하고요. 대중음악과 벽을 만드는 것 자체가 허물어져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 나의 아버지
그는 음악을 통해 자유를 그린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간에게 주신 궁극의 축복은 자유로움이거든요. 단지 죄의식에서 자유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게 매몰된, 나를 옭아매고, 환경이 옭아맨 것들에 길들여져 살고 있어요. 자유에 익숙하지 못하죠.” 그는 모든 이들이 음악이라는 하나의 점에 응집된,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순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시간 위에 얹어진 것이 음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초월하는 게 음악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음악을 통해 자유를 느끼게 하고 싶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자유 속에 거하며, 그분이 선물로 주신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하는 기쁨은 그를 변화시켰다. “아이를 보며 참 저 녀석이 ‘나를 닮았네’ 할 때가 있어요. 흐뭇한 ‘닮았네’가 있고, 근심어린 ‘닮았네’가 있잖아요. 아마 하나님께서도 그러실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정도의 생각이실 거라고 상상했던 것들이 너무나도 좁은 시야였다는 걸 깨달아요.”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한 발짝 떨어져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보게 된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다.
“아이가 우동을 먹고 있었어요. 조금만 흔들려도 면이 다 떨어지잖아요. 그걸 안 흔들리게 하기 위해서 손으로 받쳐줬죠. 그런데 자기 것을 뺏어 먹는 줄 알고, ‘내 거예요’ 하면서 막 먹는 거예요. 자기가 맛있는 것 가지고 있을 때 건드리면 싫어하거든요. 나 역시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참… 그럴까. 그 너그러움 덕에 이렇게 그냥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뭉클하죠. 자식을 보면서…”
그는 결혼 후에 자연스레 외우게 된 기도제목이 생겼다. “아이와 아내, 가족의 삶에 제가 결코 누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제가 혼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제 삶이 정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써달라는 기도를 해요.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만드셨을 텐데. 그래서 연단이 많았고, 아픔이 많았던 것일 텐데. 과감하게 부르시는 일에 나아가고 싶고, 세상에 하나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쓰임 받고 싶어요. 그게 가장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 혼자 일 때는 그 기도는 없었거든요. 아마… 쓰실 것 같아요.” 해가 갈수록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그의 음악처럼 무르익고 있는 그의 성품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따뜻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일컬어 아랫목 저 아래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는 음악이라 했다. 그의 새 앨범 <9>를 반복해서 들으며,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그가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남긴 말을 그대로 전하며, 나도 그의 인터뷰에 늦은 배웅하려고 한다. “지난 6년의 공백보다는 짧아서, 제가 몰래 갔다 오면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가 유학을 떠나고요. 그 유학의 제 개인적인 삶의 목적도 분명히 있고, 여러분과 어떤 음악적인 무언의 약속 같은 것도 있는데요. 제가 선물해드린 9집 앨범, 제 마음을 다해서 담은 거니까 많이 들어주시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3년 동안, 거기서도 꾸준히 음악을 할 거니까.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여러분과 반갑게 만나고, 소통하고,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 걸음 더 자유로의 접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의 삶에….”
잠시 멈춤, 그리고 그가 돌아오면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될 일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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