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어제보다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힘겨워한다. 버거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생명을 거두어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을 정도다. 유래 없는 풍요 속에 더욱 도를 더해가는 경쟁은 사회적 갈등을 심화하고 있으며, 삶에 대한 불평과 불만족이 나날이 커져서 결국 죽음의 문화를 낳고 있는 오늘이다.

세계화로 상징되는 오늘의 현실은 어제는 동네에서만 경쟁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였던 삶을 세계적 경
쟁으로 키우고 있다. 20/80, 10/90 사회로 상징되듯이 아주 소수의 경쟁력을 갖춘 이들에게는 세계적인 기회가 찾아오지만, 대다수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항상 염려하는 오늘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생뚱맞게(?) ‘쉼’을 생각한다. 여가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인 leisure는 어원이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인격으로 발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쉼’을 뜻한다. 자유로서 여가는 꼭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관념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여가를 즐긴다는 말은 책을 읽는다든가 음악회나 미술관을 찾고, 야구장과 축구장에 가고, 주말에 전원을 찾아가는 등의 문화 활동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이 진정한 여가활동이 되려면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쉼’도 매우 왜곡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상업주의적 소비문화가 대중매체를 통하여 선전하는 문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니 ‘우리도 해외에 한 번 나가 봐야지’와 같은 ‘쉼’ 계획은 전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쉼’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쉼과도 거리가 멀다. 그런 ‘쉼’은 육체적 피곤함만 남길 뿐이지 진정한 자아 발견이나 즐거움과 만족스러움을 줄 수도 없다.

이제는 진정한 ‘쉼’을 준비할 때다.
성경은 진정한 ‘쉼’은 창조의 하나님이 몸소 모범을 보이신 안식에서 시작 되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땅을 잘 돌보라는 일함의 명령뿐만 아니라 쉬라는 명령도 주셨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신앙적인 눈으로 보는 ‘쉼’은 왜곡된 삶의 회복이다. 예배가 그러하듯이 진정한 ‘쉼’은 이 세상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그러하니, 세상이 그러하니 나도 뛰고, 경쟁한다는 이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아니하고 분명한 푯대를 향한 삶을 추스를 수 있는 ‘쉼’이 절실하게 필요한 오늘이다. 그 푯대는 십자가와 부활로 증명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자.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헛된 경쟁의 문화를 넘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생명의 문화로 변혁하여 가는 촉발점으로서, ‘쉼’을 누리자!

발행인 임성빈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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