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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홈 로스팅

몇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 된장남이라고 불리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데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를 인터넷에 질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메리카노와 블랙커피를 혼동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커피 전성시대. 거기에 조금 더 유별난 사람들이 있다.

내게 만족을 주는 맛을 빗다

한국 사람이 마시는 음료가 커피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지천이 커피 전문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시럽 없는 아메리카노를 무리 없이 마신다. 중국집보다 커피전문점을 찾기 쉬운 곳도 많다. 이왕 중화요리 전문점과 커피 전문점에 대해 비교를 해 보았으니 한 가지만 더 말해보자. 커피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으로 상상해 볼 때, 만약 커피 산업이 지금보
다 더욱더 발전하여 중국집보다 커피 전문점이 더 많아진다 하더라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맛집. 맛집검색 앱app을 백날 찾아봐야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는 검색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쁜 카페만 있을 뿐이다. 뭔가 한결같이 약간 부족한 느낌. 비싼 돈을 주고 마시지만, 획일적인 맛이 나면, 왠지 모르게 즉석식을 사 먹는 기분이다. 커피는 분명히 기호식품인데, 이상하게 그 맛과 향에는 주관적으로 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 지점이 바로 홈 로스팅의 시작이다. 알수록 향긋하고 깊은 커피의 세계를 직접 본인의 집에 구현해 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홈 바리스타쯤 되겠다. 값비싼 커피 전문점에 간다 하더라도 자기 입맛에 꼭 맞는 커피를 찾아내기가 것이 쉽지 않다.


한 잔의 커피보다 훨씬 풍부한 이유
홈 로스팅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질문. 과연 그것이 시중의 커피 전문점의 커피보다 우수할 수 있을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답은 아마 NO일 것이다. 기업적으로 수입·제조되는 커피 공정을 이겨낼 수 있는 개인이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홈 로스팅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맛이다. 커피 맛을 좌우하는 요소의 7할 이상은 생두로스팅되기 전 단계의 원두의 맛에 달려 있다. 이 커피라는 것이 생각보다 신선도에 민감한 식품이라는 게 포인트인데, 일반적으로 잘 보관하면 2~3년 정도까지인 생두의 유통기한은 로스팅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단축된다. 로스팅한 커피는 그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여 점점 그 고유의 맛을 잃어간다. 산패酸敗다. 로스팅한 커피가 제 맛을 잃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분쇄하지 않은 경우라면 한 달, 분쇄한 경우는 2~3일이다. 이미 산패된 최고급 커피보다는 갓 볶아낸 그저그런 커피가 훨씬 맛있다는 말이다. 이뿐 아니다. 로스팅하고 나서 5일 전후는 폴리페놀이라는 활성물질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시기다. 폴리페놀은 노화 예방, 기억력 증진 등의 효과를 주는 물질이다. 맛과 건강. 그 많은 커피 전문점을 마다하고 나만의 신선한 커피를 마실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유별나고 고매해 보이는 이 취미의 또 다른 장점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데서 찾을 수 있다. 바로 가격. 커피를 즐겨 마시는 혹은 자주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한 잔에 사오천 원씩 하는 커피는 가계부에 구멍을 내는 주범이다. 홈로스팅의 경우, 생두 구매에 드는 돈은 커피를 사 마시는 것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착한 가격. 500g에 만 원 안팎이다. 커피 한 잔을 뽑아내는 데 넉넉잡아 원두 10g 정도 사용하는데, 사 먹는 커피 2잔의 가격으로 최소 50잔 이상을 뽑아낼 수 있는 셈이다. 한번 홈 로스팅을 시작하고 나면 커피를 잘 사 마시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온전히 커피를 느끼다
홈 로스팅의 피할 수 없는 매력은 자신이 원하는 맛을 직접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생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커피맛을 다르게 낼 수 있는 경지에 누구나 이를 수 있다. 신맛, 단맛, 탄 맛 등을 볶는 과정을 통해 알고 난 후 자신이 원하는 맛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그게 다크 로스팅인지 미디엄 로스팅인지는 차차 알게 될 터이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로스팅 되어 있는 원두를 사다가 내려 마시는 것과는 사뭇 다른 DIY적 재미이다. 또한 다양한 품종의 커피를 직접 맛볼 수 있는 것도 자가 로스팅의 매력이다. 개인에게 판매하는 생두는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 다양한 생두의 구매를 통해 각각의 커피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선물하기도 하고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니 이것 또한 매력 있는 일이다. 경험이 많아지니 자신이 원하는 맛을 또렷이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요, 두루뭉술하기만 한 커피의 맛을 평가할 수도 있게 되니,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실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커피를 대하게 된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 정도쯤 되면 준 커피 마스터인 셈이다.

삼십 분이면 일주일 치의 로스팅이 가능하다. 값비싼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라면 어떤 카페도 부럽지 않다. 아빠 다리를 하고 마셔도, 파자마를 입고 마셔도 좋다. 오늘도 이 집은 커피 향으로 향긋하다. 글 주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