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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평화노래꾼 홍순관 l 착한 노래 위에 천국이 자란다


다수의 공연무대에 길들여진 노래꾼 홍순관 씨의 목소리는 굵직하고도 유연했다. 노련하고 거침없는 어투로 인터뷰어가 원하는 바를 빠르게 잡아내고 시간순서대로 대답의 물꼬를 터놓는다.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바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해 할 질문들, 그러니까 가스펠 가수가 어떻게 평화박물관 건립사업에까지 몸담게 되었는지, 그의 이름을 걸고 활동했던 수많은 운동들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국악과의 독특한 조합을 선보여온 그만의 CCM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지. 묻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들을 귀만 있으면 알아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일 상 의 바 닥 에 서 노 래 하 다
사람에 따라서 경배와 찬양 스타일의 CCM송들이 친숙해서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만나는 찬양들은 여전히 미국으로부터의 번안곡이라는 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1살에 문틈으로 들어온 전도지 한 장에 마음이 동해서 달려갔던 교회는 왜 우리 정서에 맞는 노래는 없느냐는 소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다. 노래가 좋고 교회가 좋았던 어린 시절, 안타까운 마음에 기타를 잡고 직접 곡을 써보고 입에 맞는 가사도 붙여보면서 쉽지 않은 걸음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노래는 일상의 곳곳으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생각. 홍순관 씨가 소중하게 감싸 안는 일상의 바닥에는 도시에서 점차 자취를 잃어가는 우리의 자연이 자리한다. 들판의 벼이삭에서 영감을 얻어 써내려갔던 ‘천국의 춤’은 그러한 의식이 노랫말로 드러난 시작이었다. “들판의 벼이삭에 바람이 불 때 벼이삭과 바람이 하나가 되어서 춤을 추는 걸 보고, 옳다 저게 천국의 춤이다, 라고 떠올렸어요. 그러니까 사람의 수고와 하나님의 비와 바람과 태양, 이런 것이 다 있어야 벼가 익는데. 이 모두가 하나라는 것, 옳거니 이것이 천국이구나. 이곳에서 하나님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자연스러운 춤을 추고 있구나. 얼마나 기특해, 스물여섯 살짜리가. 지금이라면 난 못 쓸 것 같아. 껄껄” 온난화로 지구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때에 나무와 물과 바다가 제 숨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도 제 숨을 되찾고 관계가 회복될 것을 믿으면서 홍순관 씨는 꾸준하게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태양과 바람을 이 땅에 나리신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하늘을 나는 새들이 새들이
들판을 달리는 소년의 그 얼굴이
마치 무용수처럼 춤추네 정말 무용수처럼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태양과 바람을 이 땅에 나리신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벌판서 잘 익어가는 쌀들이 콩들이
땀흘려 일하는 농부의 그 얼굴이
팔벌려 손잡은 사람의 만남이
하늘의 노래를 부르는 그 얼굴이
저 강물처럼 춤추네 저 바람처럼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천국의 자유가 춤추네

- 홍순관, 천국의 춤 -
 

가 장 아 름 다 운 소 리 , 우 리 국 악
94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국악기를 접목시켜 찬양집을 냈다. 한참동안 우리 악기 자랑이 쏟아진다. “관현악기들 죽 늘어놓은 앞에서 가야금이 한번 줄을 튕겨 봐요. ‘당~’하는 그 깊은 소리에 다른 악기들은 죄다 물러갈 수준이라니까요. 탁월한 그 맛을 정작 우리 는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국악을 계속 끌어안고 갔던 덕에 뉴욕 링컨센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을 올릴 수 있었으니 자신이 옳았다고 확신하게 되지만, 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 교회음악이라기엔 색다른 음악에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의 노래는 이내 외면당했다. “범신론자라느니, 뉴에이지라느니, 다원주의라느니…. 정말 별 소리를 다 들었어요.” 이쯤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교회는 찬양의 폭에 너무 게으른 것이 아닌가. 천편일률 서구로부터 들여온 찬양만이 옳은 것이라는 풍토를 어디서부터 고쳐야할까. 20년 전 맨손으로 우리 식의 찬양을 만들겠다고 덤볐을 때 교회와 학계에서 듣는 시늉이라도 하고, 약간의 응원이라도 보내주었더라면 오늘의 가스펠이 이토록 습자지마냥 얇고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참고 있던 속내를 드러냈다. 단 한명의 CCM 가수 후배들이 뜻있는 일이라며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어도 그 정도로 외로운 길이지는 않았을텐데, 안타깝고 아쉬운 과거다.

제공 : 춤추는 평화 공연‘ 엄마나라 이야기’



예 수 님 이 라 면 불 렀 을 노 래 의 자 리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 자리에서 노래하고 있지 않겠어요? 가장 아픈 삶의 현장에 동참하고 고통을 함께하지 않을까요?” 죄다 놓고 이 땅을 버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멍석’을 깔기 시작했다.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무수한 이야기에 눈감고 귀 닫은 교회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래서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고, 종군위안부라는 60년 묵은 상처를 품은 할머니들이 눈물 흘리며, 용산 재건축 바람으로 하루아침에 삶터와 일터에 가족까지 잃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늘. 이들의 고통에 함께 울고 웃는 ‘착한 노래’만이 사람들을 바꾸고 도시를 깨우며 지구를 살릴 것이라 그는 굳게 믿는다.이 모든 관심은 결국 ‘평화’로 갈무리된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 이사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2004년, 2005년 10월에 링컨센터에서 이뤄졌던 국악 CCM공연도 결국은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공연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이 10년에 걸쳐 150회 동안 올려졌고, 7년짜리 ‘지구살리기 프로젝트’가 막 착한노래 만들기로 발동 걸리기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총 10년 계획 가운데5년차를 막 지나고 있는 평화박물관 모금공연 역시, 느린 듯 긴 호흡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4월 초에는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을 찾아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가정을 꾸리게 된 다문화가정 엄마들을 위한 공연 ‘엄마나라 이야기’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 이 땅 위에 벌어지는 아픔과 고민마다 입 모아 노래하는, 매 공연이 끝날 때면 서로 어깨를 겯고 나아가게 되는 평화박물관 모금공연 프로젝트의 하나다. ‘자비가 출렁이고 침묵이 춤추는’ 춤추는 평화. 그것은 그에게, 더 이상 무기력한 이상향이 아니다.

뭔가 답을 찾고 희망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오래된 말들로 누덕누덕 기운 낡은 꽃그림을 보여주는 대신, 이 땅에서 우리 숨을 쉬고 우리 노래를 부르는 것의 고달픔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도무지 소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고통과 소외를 개인의 부채로 쌓아가는 이 땅의 현실을 확인하자 드러난 상처가 버겁고 슬퍼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기자에게 어느 여성이 던지고 지나간 바람결 같은 한마디가 남았다. ‘문화는 꽃이 아닌, 토양이고 거름이다’ 쥐똥더미 같은 세상에서, 그 잿더미 위에 피어난 꽃은 이미 우리 문화가 낳은 생명이란다. 들여다보고 감격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살펴 키우자. 시간은 흐르고, 흙은 갈수록 비옥해진다. 그러니 들어라, 자리자리 순간순간마다 흐르는 우리의 착한 노래를.         이은정 | 사진 노영신


홍순관의 춤추는 평화
www.hongsoongwan.com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99-1
02-735-5811~2
http://peacemuseum.or.kr



단상집
네가 걸으면 하나님도 걸어  홍순관|살림

“짧은 묵상에 흐르는 하늘 숨결! 불현듯, 잊었던 천국이 다가온다.” 생명, 평화, 통일을 위해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서 영혼과 신앙을 담아 노래를 불러온 홍순관이 마음속에 간직해 온 깊은 묵상들을 생명력 넘치는 언어로 담아 엮은 단상집. 곤핍했던 시대를 향한 성찰의 시집이며,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수 있을까 하고 고뇌하는 공동의 기도서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가난한 자들과 함께 가난한 마음으로 걸어가며 시간과 삶과 자연에서 길어 올린 그의 진솔하고 담백한 성찰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