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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7-08 떠나라, 삶은 여행이다

떠나라, 삶은 여행이다 2 ㅣ ‘여행가족’이 펼쳐내는 이야기


여행, 두 딸을 키운 바람
시원한 바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정인화 교수의 집. 그는 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들을 키웠다. 여행이 그의 독특한 자녀 양육 방식이었던 셈이다. 이제 다 자라 ‘뿔뿔이 흩어진’ 딸들 대신, 바로 곁에 있는 뒷산과 호수를 벗 삼는다는 아버지와 옆에서 지금의 자신으로 성창시킨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덕이라고 상기하는 큰 딸 정다훈 씨가 반갑게 맞는다. “처음으로
한 가족여행은 초등학교 때 유럽 여행이었어요. 그 때는 그냥 놀러갔었죠. 아빠는 뭔가 전달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저희가 그걸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고, 돌아오고 나서는 제가 지나온 데를 찾아보긴 했죠.” 너무 일찍 해외로 나가기를 고집하기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여행을 떠나는 편이 시야를 넓히기에도 좋다는 현명한 판단일 게다. 다훈 씨에게 지금을 있게한, 중국에서의 시간도 요맘때였다. 교환교수로 1년간 중국 북경에서 지내야만 했던 아버지는 학교도 휴학하고 선선이 자신을 따라나선 딸과 함께 틈틈이 중국 전역을 여행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중국의 문화적 특색, 역사와 예술에 대한 감상이 쌓여서 나온 책이 <클릭! 차이나> 그리고 <지금 중국이라고 하셨나요?>. 아직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딸을 독려해 북경에서 멀리 떨어진 티베트 근처 소수민족들의 지방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보냈던 아버지의 믿음이 없었으면, 지금의 다훈 씨는 정말이지 상상하기 어려울 거란다. 이렇게 홀로 풀어간 경험들, 짧은 10개월의 기억이 스스로 공부를 찾아 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여행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행을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맞는데, 여행으로부터 느꼈던 한계가 저를 많이 자극했던 것 같아요. 대화로 묻고 싶은 건 많은데 상대가 외국인이다 보니 언어적 한계가 크고, 그래서 영어공부를 하게 되고. 또 영어로 말하면서도 지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데 한계가 보이니까 좀 더 책을 찾게 되었죠.” 여행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 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답변이다.



떠나기 전에 준비할 것들
이들 가족이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첫째, 국내여행부터 가라. “국내 여행을 할 수 없으면 해외에도 못 가요. 참 갈 데가 많죠. 다행히도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써서, 문화투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잖아요.” 추천하는 여행지 1위는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실학자들의 생가라든가 유배지 같은, 이왕이면 교육효과가 있을 법한 곳이면 더 좋겠다는 얘기다. 단, 패키지 관광 상품보다는 미리 공부해서 떠나는 배낭여행을 더 추천. 덧붙여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부모님부터 틈틈이 여행 경험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 다 자란 아이들을 이끌고 갑자기 해외여행에 뛰어들었다가는 극복해야 할 역효과가 클 것이라고 염려하기 때문이다.
둘째, 테마를 잡는다. “예컨대 유럽의 미술을 돌아본다든가, 아니면 작가의 고향을 돌아본다든가. 오페라, 공연을 보고 온다든가. 이런 등등의 테마를 가지고 할 수 있죠. 그리고 학생들이 다 유럽만 가려고 하는데 유럽보다도 그리스, 이집트, 인도, 이런 문명의 원류들. 그리고 동서양 교차로에 있는 터키. 이쪽이 더 볼 게 많아요.” 일례로 다훈 씨가 한동안 푹 빠졌던 테마는 종교였단다“. 어쩌다 보니 이슬람만 빼고 4대 종교의 성지를 다 가본 셈이 됐어요.” 예수가 살았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의 곡부에 이어 친구와 함께 다녀온 인도여행 이후에는 정말 한참 종교학에 몰두했었다는 다훈 씨. 이슬람 신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메카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으로 나온 책이 <세계 신화 여행>이었다고.
셋째, 떠날 수 있는 방법의 폭을 넓게 잡는다. “상황이 맞아서 여행을 가본 사람은 운이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안 되면 저는 워크캠프 같은 것도 많이 추천 하는 편입니다. 워크캠프를 한번 갔다 온 친구들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봉사할 방법을 찾아요. 코이카라든지 이런 식으로 연결이 계속 되더라고요. 짧으면 2주의 시간이지만 거기서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한번 발붙인 이 땅에서 떠나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당부하는 다훈 씨. 금전적으로 여력이 충분치 않아도 찾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왕 그렇게 가는 것,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투신하는 것이 젊은 시간을 더욱 값지게 쓰는 방법이 아니겠냐고.

소녀에게 여행은 근 10년 동안 흔치않은 경험을 쌓게 했던 고마운 ‘방법’이고 ‘추억’이었다. 무작정 떠나기를 좋아하는 ‘여행 마니아’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선택하는데 튼튼한 밑거름으로 삼으면서 다훈 씨의 오늘은 더욱 풍성해진다. 이제는 책 속으로 들어가 그렇게 자신을 키웠던 지역에 대한 공부를, 그래서 장차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 머지않아 다시 책으로 만날 것을 믿어본다.  글 이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