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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쌩얼 미인 예수에게 배우는 믿음의 쌩얼 만들기

욕쟁이 예수|박 총

나는 비둘기 워너비다. 성경에 등장하는 순결한 비둘기가 되고 싶지만, 나와는 다른 모습에 매번 좌절하는 진창 속의 집닭쯤 되는 비둘기 워너비다.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너무 답답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뜻대로 살고는 싶기 때문에 겨우겨우 비둘기 흉내나 내고 있는 집닭이다. <욕쟁이 예수>의 저자 박총은 비둘기를 닮고 싶어 비둘기처럼 꾸미며 살고 있는 비둘기 워너비들에게 말한다. 그게 정말 주님의 뜻이긴 하냐고.

<욕쟁이 예수>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상이하다. 한국 교회에서 제시하는 예수
님의 얼굴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 질투도 나지 않는 절세미인의 메이크업 버전 정도 된다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님은 아무것도 찍어 바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맨얼굴이다. 숨 막힐 정도로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볼수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얼굴이랄까. 형식적인 규약에서 자유로우며, 희로애락을 억누르지 않고,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인간으로서 예수를 보며 그분도 나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인간으로 오셨다는 점을 피부로 실감한다. 책 속에 화장기 없는 ‘쌩얼 미인’ 예수의 모습을 통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세상과 유리된 채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한가. 그곳은 오직 영혼구원의 터전이며,
주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흡족한 세상은 수많은 다양함이 제각각 자신의 향기를 내며 조화로이 어울리는 세상이었음을 돌이켜 생각하게 한다. 믿음을 가장한 일방통행의 종교적 신념에 휘둘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고하며, 믿음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서 세상으로 배출하는 그리스도인의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폭로한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비난을 핍박이라 여기며 즐거워함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의 한국 기독교사를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는 이러한 발언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나 역시 같은 종류의 고민으로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또 그러한 이유로 교회를 떠난 지인들의 뒷모습의 기억이 많기 때문이리라.

곳곳에 저자가 너무 열려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다. 어떤 독자는 ‘이 책, 약간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
다. 하지만 이곳은 60억이 살아가는 세상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며 그분과 교감하는 세상이다. 이름 없는 들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듯, 저자 역시 자신의 색깔로 주를 사랑하고 높이고 있을 뿐이다. 교양과 상식 너머에서 발견한 ‘쌩얼미인’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나는 아직 진창 속의 집닭이다. 그러나 더는 비둘기이고 싶지 않다. 비둘기는 할 수 없는 다른 방법으로, 이를테면 새 아침을 알리는 우렁찬 목소리 따위로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소리와 색깔이 어우러져 만드는 하나의 사랑. 통제되고 제어되지 않은 그 모습 역시 주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을 거라고 믿는다. 글 주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