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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예수가 암송했던 것을 삶으로 읊어보기.

예수와 제자들이 매일 암송한 것은 무엇일까?|스콧 맥나이트

장면 하나, 예수 곁에 열두 제자들이 둘러앉아 있다. 하얀 식탁을 두고 다들 손에는 음식을 집었으며 눈을 마주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눈앞에 떠오른 익숙한 그림은 최후의 만찬. 장면 둘, 이번에도 예수 곁에 사람들이 앉아 음식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에는 누굴까? 사람들이 죄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역시 모여 앉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뽕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모셔오는 삭개오의 기쁨이 그들의 표정에 어리어 있다. 이렇게 식사만 하다가 제자들과 암송은 언제 할까? 걱정할 필요 없다. 암송도 식탁에서 한다. ‘암송’이라는 어감에서 알 수 있듯 글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외는 것이다. 소리를 내 구절을 읊는 대신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게 다 인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 그들이 식사를 하며 암송했던 것은 다름 아닌 ‘ 예수신경’이었다. 이 책에서 다양하게 그려내는 ‘예수신경’이 무엇인지 짚고 따라가 보자. 예수신경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란다. 이것이 신경중추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신경세포다. 마음과 목숨과 뜻, 무려 세 가지를 다해 사랑하라니. 사랑은 표현이라고 했는데 어쩌나. “예수신경은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며 골머리 앓을 이유 없다. 앞에서 봐왔던 장면대로 예수님처럼 하기만 하면 된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웃 사랑이니까. 식탁은 음식만 있지 않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취향과 관심, 일상을 끌어안는 것이다. 그렇게 공동체는 형성된다. 우리는 하루에 세 번, 밥상 앞에 앉는다. 필요하기 때문에 밥을 먹기도 하지만, 먹는 순간이 즐거워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따뜻해서 밥상을 찾기도 한다. 예수 곁에는 항상 죄인들이 있었고 왜 그들과 함께 밥상에 앉았는지, 식탁은 어떻게 공동체가 되는지 스르르 의문이 풀린다. ‘제자’라는 말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묘사해 보자. 우리는 믿는다는 것이 사랑임을 알고 있다. 사랑과 신뢰는 변함없는 친구다. 예수신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예수를 따름으로써)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사랑의 행동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은 그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예수를 신뢰함으로써 그와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예수중추신경을 일깨워 보자. 모든 신경세포가 여기서 시작한다. 만일 여기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도 시작하지 않을 테니까. 겨자씨만한 신경세포라도 괜찮다. 점차 자라서 풀보다 크고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 테니까. 글 홍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