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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당신에게 온전히 다다르기 위한 말하기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는 많은 말 속에 머무르다 보면 어떤 게 내마음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서로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채 건네자마자 땅에 떨어지는 말들, 내뱉는 순간 상처될 거라는 마음의 알아차림보다 먼저 혀끝을 떠나는 말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느라 쏟아낸 빈 깡통 같은 말들…. 그런 말 속에서 허덕거린 날이면, 몸과 마음이 방전되어 축 늘어진다. 어디 사람과 대화뿐이랴. ‘하나님과 대화’라는 기도의 정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도는 항상 일방적인 통보로 끝나기 일쑤다.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으려고 하고, 용서하기보다는 내 손해를 토로하고, 하나님이 입을 떼시기도 전에 할 말 다했으니 돌아선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다 믿는 그 믿음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가 하는 일생의 기도 중 과연 몇 번이나 온전히 하나님과 대화했다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 온전함은커녕 기본에도 다다르지 못한 대화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온전함에 이르는 대화>는 남 탓하지 말고, 먼저 자신부터 깨어 있어야 한다며 우리를 대화에 끌어들인다.
어떻게 ‘깨어 있는 나’라는 단순하지만, 막연한 상황에 다다를 수 있을까. 너무 바쁜 ‘나’는 슬픔, 아픔, 고통, 불안, 근심이 깊어져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 모든 응어리를 무의식의 세계로 내려 보내기 바쁘다. 아니면 외부 환경의 탓으로 돌리며 ‘이 XX같은 세상’이라고 외치면 그만이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알아채지 못한 채 무의식으로 떠내려간 응어리들은 또 나도 모르는 사이 내뱉는 말 속에 섞여 타인에게 옮겨간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그래서 <온전함에 이르는 대화>는 깨어 있는mindfulness 의사소통을 위해 먼저 자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딸기를 먹을 때도 딸기의 모양, 촉감, 색깔, 냄새 등을 자세히 살피고, 이 딸기가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상상하고,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먹어본다. 씻자마 딸기인 것만 확인하고 바로 입 속으로 들어갈 때와 분명 다른 맛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산만해진 의식을 하나로 모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알아차리는 상태가 곧 깨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태로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알아차리고, 대화하는 지금 이 순간에 현존을 누리고, 사물과 사람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때 인간관계를 가로막는 삶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틀이다.
당신 말이 맞다. 말로 하긴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려우며, 내 삶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언가 빨리 도달하기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온전함에 이르는 대화’는 단순
히 ‘하라, 하지 말라’는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기독교와 불교, 명상의 종교를 아울러 참 자아와 타인, 세상과 온전히 대화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렇기에 하나의 종교적 틀로 이 책에 접근하다보면 거부감이 생겨날 수도 있겠다. 자아를 산책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글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