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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 띄우는 글

출처: 네이버

편지가게|기타가와 야스시|살림

봄 오는 시기는 갈수록 종잡을 수 없다. 이상기후로 인해 개화도 제멋대로이고, 춘삼월에 폭설도 예삿일이니. 하지만 한 가지, 완연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변하지 않는 지표는 바로 취업준비생들이다. 상반기 공채 모집이 시작되고, 많은 젊은이들이 새 넥타이와 새 정장, 새로운 프로필 사진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동안 쉼 없이 숫자를 올려 나갔던 외국어 성적표와 엿 바꿔먹고 싶지만 별 수 없어 머릿속에 우겨넣은 시사 상식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봄이 확실하다.
취업에 목을 매는 것은 우리나 일본이나 비슷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취업은 지금껏 끊임없는 시험을 통해 자신을 입증해야 했던 것의 연장선상이다. 학교에서는 다음 학교를 위해, 마지막 학교에서는 직장을 위해서 달린다. 자신을 입증하려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면 그건 별로 상관이 없다. 그 수많은 자기 증명에서 적당히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면 그뿐이다. 멋진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은 면할 수 있다. 생각은 이미 영락없는 기성세대다.
그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편지가게’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희망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해 나가야 하는 사회생활에 대한 상쾌하고 능동적인 의미를 알려주고 그것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도와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왜 하필 편지를 통하여 이 이야기가 오갔던 것인지. 모름지기 편지 교환은 의사전달보다 그에 대한 기다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고 싶은 말을 쓰더라도 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이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더라도 대답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기다림이 상대방의 생각에 대한 경청의 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편지에게는 말을 끊거나 딴청을 피울 수가 없으니까.
진심어린 마음과 이를 감사하는 두 마음이 전한 열 번의 편지가 인간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250수 정장도, 양악수술도, 어학연수도 해주지 못한 것. 나는 편지를 통해 주인공 료타의 인간으로서 역량의 증대가 이루어짐을 보았다. 생각을 넓히는 것은 면접 스터디로 되는 것이 아니며, 장애를 즐기는 것은 학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멋진 인생은 대기업이 살아주는 게 아니다. 단 열 통의 편지가 전해준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런 이유로 웬만한 사람들은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담백하게 말하고 있다.
만약 ‘편지가게’가 모습을 드러내고 직접 료타에게 이야기를 건넸다면, 육체적 거리는 가까웠을지언정 진심의 거리는 종이 한 장에 자신을 담아 보냈을 때처럼 가까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의 카테고리는 자기계발서이다. 계발이 아닌 개발만 일삼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 필요한 서적이다. <편지가게>처럼 나를 찾는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한 통 써 주고 싶은 밤이다. 때마침 친구 녀석에게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봄이었다. 차갑지만 분명한 봄밤이었다.  글 주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