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충무로를 호령했던 영화계의 거부 이장호 감독. 18년 만에 <시선>이라는 영화를 들고 세상에 나왔다. 아직 개봉 전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호평을 받은 <시선>은 이슬람 지역에서 피랍된 선교 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꽤나 파격적이고 종교적인 색채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까. 18년의 공백 그간 그의 눈길은 어디를 향하게 되었을까. 궁금함을 안고 이장호 감독을 만났다. 신화민 · 사진 김준영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제가 이뤄낸 것이 아니에요
“젊은 날에 많은 것을 성취하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것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내리막길이 시작됐어요. 27년 동안 계속 됐죠. 보통 그런 극심한 내리막길에서 죽음에 이르곤 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 브레이크를 잡아주셨어요. 영혼에 대한 문제를 직면하는 숙제를 깨닫게 하고 풀 수 있도록 이끄셨어요. 그 과정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제가 이뤄낸 것이 아니에요.” 그의 목소리에서 27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며 그 자리에 하나님으로 채운 단단함을 느꼈다.
그의 삶이 그랬듯, 이번 영화도 단편적인 사건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이끄심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특별한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았어요. 영화 제작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늘 함께하세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했다. 제작 자금이 모이는 과정도 그랬고, 함께할 스태프를 모을 때도 그랬다. “<시선>의 스태프는 비크리스천이 많아요. 기독교 가치를 다루는 영화를 크리스천들이 모여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걸 알았죠. 그들의 심리 상태에도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어요. 결국 우리의 목표는 비크리스천이지, 크리스천이 아니잖아요.” 해외 올로케였던 <시선>은 현지에서 뜻하지 않는 13세 직업 군인 역할을 하는 아이를 만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영화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모으셨다.
카메라 앵글도 그랬다. 과거의 습관과 감각대로 준비했던 것들을 바꿔놓으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 높아 보이는 벽들 앞에서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의 계획,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틈에서 그는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평안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사람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를 알게 하셨으니까요”하며 그때의 상황을 해석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영화감독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지속된 내리막길, 그리고 <시선>의 제작.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의 시선은 성공, 쾌락, 명예에서 하나님을 클로즈업하게 된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 생활이 예배가 될 거예요. 하나님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음을 항상 의식하는 거죠. 똑같은 이야기도 하나님이 그걸 바라본다고 생각하고 영화로 만들면 완전히 달라져요. 섹스를 예를 들면, 사람이 다루는 섹스는 분명히 외설로 가죠. 그런데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그건 굉장히 거룩한 장치가 되죠.” 그는 세속과 거룩으로 구분지어 편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다채로운 세속의 주제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시선을 읽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를 찍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단다. “영화를 이루는 모든 앵글과 각도. 이것의 주체가 누군지 알아요? 감독들은 다 자신이 정한 것이라고 해요. 미안하지만 영화가 처음 이 땅에서 시작할 때는 앵글이 하나였어요. 카메라 하나 놓고 그 앞을 지나가는 것부터 시작한 거예요. 영화의 기술이 발전하며 클로즈업, 바스트· 웨스트샷, 버즈아이· 웜즈아이뷰가 생긴 거예요. 이건 모두 제한없는 하나님의 시각이예요. 하나님의 무한한 앵글 중의 일부를 발견했을 뿐인거죠.” 이렇듯 카메라 앵글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그걸 아는 감독이 겸손히 영화를 통해 하나님의 시선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고 다시 힘주어 말한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만들면 사람들이 공감하며 재밌게는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영혼을 흔드는 어떤 메시지가 남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영화감독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해요.”



씨를 심는 거에요. 한국에 올바른 영화가 자라나도록
사실 그는 최근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마주했다. 함께 영화를 찍은 영화배우 故박용식 씨와 절친한 친구였던 故최인호 작가가 먼저 하늘로 갔다. 하지만 이 죽음 앞에 그는 우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의 소망을 품게 되었고, 죽음을 더욱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몇 시간 후의 일처럼 말이다. 죽음에 대한 담담함이 자리한 덕일까. 그의 시선이 완전히 바뀐 덕일까. 그는 영화가 다 만들었는데도 불안하지 않고 편안하다고 이야기 한다. “예전에는 영화를 만들고 난 뒤가 더 불안했어요. 사람의 방법으로 안달하며 빨리 배급사를 찾아 저인망 훑듯이 빠른 시간 안에 돈이 모이기를 원했죠. 이젠 하나님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란 걸 알기에 조급하지 않아요.” 안달하지 않는 그의 시선은 여생의 소망으로 잇따른다. “씨를 심는 거에요. 한국에 올바른 영화가 자라나도록. 개인의 인기, 돈벌이만 바라보고, 대기업의 투자에 의존한 영화들. 그래서 보는 이들의 영혼에 어떤 해독을 끼치는지 관심없는 영화와 달리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생각하게 하고 묵상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 거예요.” 그런데그는 스스로 열매를 거두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런 영화들의 씨를 심고 가면, 점점 확산되고 많아지겠죠. 언더우드가 조선 땅에 와서 절망을 느끼면서도 겸손히 일하며 ‘하나님이 일을 하실 것입니다’ 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씨만 심으면 하나님이 키워 열매 맺게 해주시겠죠. 그럼 나는 저절로 좋은 영화의 아브라함이 되지 않을까요?”



‘아브라함’이라 한 것이 쑥스럽고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는 듯 호탕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온다. 전혀 다른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 그는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만남에도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는 스태프들의 도움과 조언에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선>이라는 영화는 이름만 ‘감독 이장호’일 뿐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했다. 삶을 하나님의 역사로 가꾸어가는 사람, 이장호 감독을 통해 한국 영화계에 맺힐 선한 열매들을 기대해 본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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