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은 기자



우리네 영원한 순수 처녀 ‘복길이’로 기억되는 그녀. 그러나 결코 ‘복길이’로만 남을 수 없는 그녀.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세련된 노처녀로 써내려간 일기장을 부지런히 채워 가는가 싶더니, 드라마 <내 사랑 못난이>에선 너무 잘나서 사랑스럽기만 한 가수 지망생으로 트로트를 구성지게 뽑아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단숨에 이별하여 뮤지컬 <달콤한 안녕>의 제작자로 변신, 요즘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기꺼이 삶의 순간순간을 최고로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멈출 수 없는 그녀의 선택, 그 길 위에서 처음과 나중 되심을 믿으며 그 분의 사랑을 나지막이 고백하는 배우, 김지영 씨를 만나 보았다.


무대, 포기할 수 없는 달콤함

불현듯 뮤지컬 <달콤한 안녕>의 제작자로 나선 그녀. 동생이자 뮤지컬 배우인 김태한 씨가 출연했기에 어렵지 않게 주머니를 열었겠거니 했는데, 무대 자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배우에게는 모든 무대가 로망 그 자체에요. 처음 연극 무대로 데뷔하기도 했지만, 제가 배우의 꿈을 가진 게 93년 뮤지컬 <캣츠>를 보고서였거든요. 그걸 보고 공연 예술이란 신 이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창조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 시작 전 꿈꾸던 모습이 무대 위의 모습이었던 만큼 그동안 꾸준히 2년에 한번 씩은 공연을 해왔고 기회가 되면 창작극 형식의 작은 작품을 꼭 올리고 싶었다고. 그러다가 남동생이 준비하던 창작극이 투자 받는 과정에서 여러 번 수포로 돌아가며 상처 받고 좌절하는 모습을 봤단다. 음악감독부터 기획자, 연기자까지 모두 제 힘으로 끌어 모아 어떻게든 무대를 만들어 보려 노력하던 동생이었는데 말이다.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도 외면당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유독 제작자로 창작극을 고집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죠. 공연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작지만 가치 있는 창작극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위치인데도 안 하는 거, 그게 ‘죄’죠. <달콤한 안녕>은 지치지 않고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도망가고 싶은 시점, 다시 출발해야 할 때

그러나 다시 철저히 배우로 돌아왔을 땐 외려 지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 자신의 실험성,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촬영을 시작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렇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요즘 온몸이 만신창이다. ‘일등주의가 우선인 이 시대에 사실 진정한 승자는 마지막 땀방울을 흘릴 줄 아는 자가 최후의 승자다.’ 라는 감독의 변을 읽고 시나리오는 읽지도 않은 채 무작정 출연을 결심했다. 그러나 연기 뿐 아니라 국가 대표를 상대해야 하는 훈련도 견뎌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작품이나 감독님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감히 내가 흉내라도 제대로 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커 진통제 없이는 잠도 못잘 정도라고.

“그럴 때마다 진짜 도망가고 싶다, 어떻게든 잘 달려야겠다, 하는 두 가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하하.” 훌쩍 달아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 모든 걸 놓아버리고만 싶어지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다시 출발해야만 하는 게 때론 살아가는 일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도망가고 싶다는 것은 곧, 지금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살아 있음이 아름답기

엄격한 불교 집안인 그녀의 가정과 그녀가 하나님을 알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제가 사실 어릴 때부터 지병이 있었어요. 혈관에 종기가 나는 희귀병이었죠. 고등학교 때 완치되기 까지 수술을 8번인가를 했는걸요.” 스무 살을 못 넘길 거라던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기적이다. 병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한 마음에 중학교 때부터 엄마와 다니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완고하던 할머니도 마지막 수술을 받던 그때 교회에서 백 명에 가까운 교인들이 수혈을 해주러 와준 걸 보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저는 정말 잘 살아야 해요. 제게 하나님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다시금 기회를 주신 분이시거든요. 다시 태어나게 하셨죠.” 그때 이후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하나님께 기꺼이 ‘아름다운 구속’이 되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해야 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처럼 그녀는 살아있음 자체가 아름다움일 수 있도록 주어진 길을 가고 있다.

어릴 적 다른 종교와 자연스럽게 부딪치며 자라서일까. 지금 그녀의 시댁은 불교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신앙인으로 배신이 아닌 선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편이죠. 자라온 환경에서 이런 경우의 현명함과 지혜를 자연히 배운 것 같아요.” 덕분에 남편 남성진 씨는 결혼 이후 3년 동안 그녀와 같이 교회에 나가주고 있다. 그저 예배를 같이 드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견딜 만큼의 고난에 감사

어린 시절 병치레 말고도 그녀에게는 또 한 번의 고난이 찾아온다. 바로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제야 간신히 건강함을 선물 받아 다시 살아보려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런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신앙과 분리되거나 의심한 적이 없어요.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지나고 나니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낸 거 자체가 큰 힘이 되더라구요. 그런 경험이나 기억들 자체가 지금 저를 지키는 무기가 된걸요.” 견딜 만큼의 고난을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고백이 넘치다 보니 남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젠 배우로서의 토양을 갖추는데도 한몫 했단다. 돌이켜 보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이끄심이었다. 뜻하지 않고 참여한 오디션에 합격해서 연극 무대에 섰고, 그 곳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TV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좋은 거고 천직이라면 천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그녀. 허락하신다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단다. “내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모든 게 비관적이 되어 기도도 하지 않고 그런 시간이 올까 두려워요. 그것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요?”


돌이켜 보면, 삶의 단편적인 ‘과정’은 오로지 그것만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는 고백. 그 전과 이후의 시간들이 모두 맞물려 있더라는 말 속에서 처음과 나중 되시는 그 분을 본다. 어느 인물의 인생에 ‘안녕’ 하고 인사하고 들어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안녕’하고 나와야 하는 배우의 기구한 운명. 그러나 온몸으로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고 있기에 그녀는 이 찰나의 순간, ‘달콤한 안녕’을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배우이기 이전에, 제작자이기 이전에 처음부터 나중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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