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여행은 살아가는 일을 닮았다. 돌아올 곳을 알기에 떠났던 과거가 그렇고, 펼쳐진 풍경 앞에 두려워 떨다 이내 황홀해하는 지금이 그렇다. 한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발걸음을 계속해야만 하는 여행의 막바지는 우리 미래의 모습이다. 이 여행길에서 가장 중요한건, 스스로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일.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수들에게는 앨범 한 장을 내는 일이 그러할 테다. 올 가을, 13집 앨범을 통해 또 한 번 그 숙제를 해낸 가수 이상은. 그 이름 앞에 꼭 붙는 ‘보헤미안’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여행하듯 살아 온 그녀의 삶과 음악, 그리고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방황과 방랑 사이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알 수 없는 가사를 중얼거리던 독특한 가수에서 ‘삶은 여행’ 이라고 고백해내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았던 그녀의 이십대를 엿보면 알 수 있다. 정상에서의 활동을 기대할 때쯤 돌연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이후 미국과 영국 등을 오가며 음악도 아닌 미술을 공부했다. 음악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고.
“스무 살 이였어요. 아는 게 하나도 없던 시절이죠. 그런데 해내야 하는 것, 해야 할 건 너무 많았고 사람들의 기대가 큰 만큼 고민도 많았어요. 그래서 떠났어요. 물론 그때 말리시는 분들도 있었죠. 그치만 후회하지 않아요. 기특해요. 여기까지 온 게.”
자신을 온전히 끌어안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회상하는 젊음은 그 시간이 아무리 불안정하더라도 결코 ‘방황’ 이라는 이름으로 매겨질 수 없을 게다. ‘방황’과 ‘방랑’ 은 한 글자 차이. 방랑의 길을 떠나는 여행가가 될 것인가, 방황하는 부랑자가 될 것인가는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를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다.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의 선택은 그래서 곧 여행이 된다.
치유, 내 음악의 이유
외국에 있었던 십 년 동안도 꾸준히 앨범을 내왔다. 데뷔 이후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정도를 주기로 앨범을 내온 셈. 올 초에는 ‘아티스트가 되는 법’ 이란 부제가 붙은 <Art&Play>란 책도 발간했고, 가을바람이 완연히 불던 지난 달, 13집 앨범 <The Third Place> (제 3의 공간) 도 나왔다. 독특한 앨범 제목은 건축용어에서 빌려왔다고. 제 1의 공간은 집, 방과 같은 ‘생존을 위한 공간’을 뜻하고 제 2의 공간은 회사나 세상과 같은 ‘생산을 위한 공간’을 뜻한다. 마지막 제 3의 공간은 ‘영적인 공간’ 이다.
“제 2의 공간이 너무 많고 커진 것 같아요. 그렇게 점점 돈의 노예가 되어가죠.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같이 나누고 고민해 보았음 싶었어요. 제 3의 공간은 인간만이,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행위를 뜻해요. 사실 제가 그동안 음악을 해 오면서 가장 염두 해 온 건 치유에요. 제 음악이 치유의 힘이 있었으면 해요.”
나이 서른여덟. 이제 삶의 방식이나 방법들에 대해, 또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는 그녀. 답을 낸 건 아니지만,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이 ‘인간’ 이었다는 사실이 차라리 위로가 된단다. 고통 받고, 아파하고, 다시 치유 받고, 그 후에 찾아오는 행복을 신기해하며 웃고, 살아가는 모습도 똑같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 예수님은 잘 웃으셨을 게다. 아마도. 그러나 분명히.
아플 만큼 아프게
여섯 일곱 살 무렵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정작 세례를 받은 건 뉴욕에서였다.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외롭고 힘들었다고. 이때 만든 곡이 ‘언젠가는’ 이다. 돌이켜 보면 젊음도, 사랑도, 심지어 추억도 모두 소중했다는 가사는 어쩌면 이후에 펼쳐질 그녀의 종교적인 고민과 여정을 이야기하는 듯 진하게 다가온다. 일본에 있을 때, 기독교인들이 없어 힘들던 차에, 불교에 심취하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나 보다 하고 완전히 벗어나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더는 못하겠다고 울부짖을 때 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리고 그녀도 같이 아팠다. 원래 교회를 다니시지 않던 아버지는 ‘뭔가 이상하다’ 하셨고, 자리에서 일어나신 뒤론 ‘난 다 봤다, 나 교회 다닌다’ 하신 게 지금까지라고.
“마치 서해안 바다를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왜 잘 가다가 갑자기 땅이 푹 꺼져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더 나가면 죽고, 그런 상황 있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전 아플 건 다 아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프지 않다고 생각 안 해요. 그게 하나님의 뜻인걸요.”
한국 땅에서, 여성이 홀로, 13집의 앨범을 낼 때까지 음악을 계속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좁은 문을 통과 하는 게 가장 두렵고 힘든 일이기에 신앙이 없었다면, 기도하지 않았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거라 말한다.
“전 음악에 대한 영감도 기도로 얻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저작권은 하나님께 있다’ 하는 거구요.”
삶을 긍정하는 힘
먼 길을 돌아온 뒤 나오는 힘은 긴장을 풀어 낸 단순함과 긍정으로 드러나곤 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더라고 말하는 그녀도 그러했다. 최근 <긍정의 힘>을 아주 감명 깊게 봤다며 삶에 대한 긍정을 기도 제목으로 꼽는다.
“너무,너무,너무 좋았어요. 특히 목사님이라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 부분이 제일 좋았는걸요. 믿음의 모습이나 방식 그 형태도 진보해 나가는 거 같아요. 전 예수님이 회당에만 갇히지 않고 밖에서 설교를 하셨던 그 정신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산상수훈이 나온 거 아닌가요? 그런 젊은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죠. 소통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언젠가 자신의 이런 모습과, 생각과, 영혼과, 말이 ‘통’ 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그녀. 치유를 위한 음악을 계속해 나가고, 긍정의 힘을 믿으며, 소통의 중요성을 아는 한 그 여정은 계속 될 것이란 믿음이 간다.
언젠간 끝날 시간이기에, 돌아갈 곳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짐을 싼다. 그렇게 온 몸을 내던져야 할 순간이 오면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단 있는 것들을 안으리’ 라고 부르던 그녀의 노랫말을 기억해주리라.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이 차라리 위로가 된다.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으면,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어느새 마음은 벌써 짐을 다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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