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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9-10 마을, 다시 피어나다

마을, 다시 피어나다 7 ㅣ 서로 다른 너와 내가 가족이 되어 _ 아름다운마을공동체


북한산 산자락, 수유리의 아주 조용하고 평범한 한 마을로 찾아갔다. ‘여기서부터 아름다운마을공동체입니다’라고 씌어 있는 공식적인 표지판은 없다. 물론 울타리나 경계선도 없다. 모여서 예배를 드릴만한 커다란 예배당도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 가운데 드문드문붙어 있는 ‘아름다운마을학교’, ‘아름다운마을어린이집’과 같은 조그만 팻말들만이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존재를 암시해 준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외따로 떨어진 별세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에 그렇게 스며들어 있었다. ‘마을 안에 있는 마을’,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마을사람들과 이들을 이끌고 있는 최철호 목사를 만났다.

배운 대로 살아내기 위하여
1980년대 후반, 신학생 시절의 최 목사는 처음부터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둘 졸업하여 사회로 진출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회론을 배우지만 그것대로 세워지지 않는 교회, 신학 따로 현실 목회 따로 존재하는 불균형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교회와 사회 내에 구조적인 힘,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그것이 매우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최 목사가 직면하게 된 문제는, 개인적 신앙의 결단이나 의지만으로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을 사역현장에서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으로서 그는 공동체운동을 시작하였다. 1991년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도정 역시 계획된 틀대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그 때마다 직면하는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대안을 모색하고

임신·출산·육아 강좌

 
풀어가는 과정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공동체지만 점차 참여의 폭이 넓어졌다. 모임을 시작한지 8년이 지났을 때 즈음, 공동체 차원에서 3개월가량 침묵하며 성찰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인간적 정서, 인간적 사귐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대안적인 운동과 공부를 하다 보면서 생길 수 있는 지적인 유희와 교만의 위험에 대해서도 돌아보았다. 이런 성찰의 시간들이 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힘이었다. 2000년대 초에 들어서는 구성원들의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최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의 현실적 문제에 부딪치면 젊었을 때의 신념을 포기하곤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마을, 그리고 마을 안에서의공동육아와 교육이 필요했다. 그들이 마을을 선정했던 기준은, 청년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 지역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 그리고 도시에서 최소한의 생태적 교육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세 가지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인수동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 물론 정확한 지역의 구분이나 울타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밤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갈 수 있는 범위, 그것이 이들의 마을이다.

한 몸 안의 다양한 지체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는 대안적 기초공동체 생성과 연대를 통해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치는 것이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마을의 핵심단위는 ‘기초공동체’이다. 7~8명에서 많게는 10명 정도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기초공동체는 보통의 지역교회가 감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여기서 예배, 목회상담, 소모임, 공부, 영성 수련을 비롯한 실천 등이 모두 이루어진다. 기초공동체들을 목회하는 이들은 대부분 평신도이다. 셀 교회나 가정교회와 비슷하지만, 공동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밀착된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초공동체 3~4개가 연합하여 30~40명 단위의 독립된 마을교회를 이룬다. 그보다 더 큰 단위에서 전체 모임은 월 1회, 매달 첫 주에 있다고 한다. 각각의 기초공동체는 개성적이고 자율적이면서도 각기 다른 기초공동체와의 연대 속에서 균형과 일치를 유지한다.
기초공동체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유연한 관계 가운데서 자신도 몰랐던 은사가 드러나고 계발된다는 점이다. 어릴 적부터 굳어진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교육받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할 기회가 없지만, 기초공동체는 그와 같은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해 줄 수 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새로운 모습과 은사를 끊임없이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을 통해 ‘놀이’와 ‘문화’가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문화사역이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전체는 약 100여 명 정도라고 한다. 미혼자들은 3~5명씩 공동생활을 한다. 이 같은 공동생활은 강요하지는 않고 권면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 이 생활을 거쳐서 결혼을 하는 추세이다. 또한 결혼한 가정 중에서도 원한다면 한 집에 두가정씩 공동생활을 하기도 한다. 지침이나 규율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설정하되, 그 약속을 상호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처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양식 속에서 최 목사가 말하는‘ 생활영성’이 길러진다. 나의 집, 나의 가족, 나의 생활에서 우리의 관계, 우리의 공동체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는 셈이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또한 마을공동체 구성원 중에서 아예 재산을 공유하는 이들을 ‘기초생활공동체’라고 부른다. 현재 다섯 가정과 미혼자 한 명 정도의 규모인데, 이들은 자신의 수입을 공동 통장에 넣고 생활비를 균등하게 분배하여 사용한다. 이와 같이 여러 단위로 얽힌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왜 이렇게 공동체 단위가 복잡한지 종종 묻는다고 한다. “본래, 살아 있는 공동체는 맥락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지닙니다. 우리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이죠.” 최철호 목사의 대답이다.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넘어서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사역은 NGO단체인 ‘ 생명평화연대’, 마을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인 ‘아름다운마을학교’, 그리고 청년 지도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기독청년아카데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같은 사역공동체는 꼭 교인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이들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외부에도 열려 있다. 그래서 그들이 보다 편하게 공동체와 결합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아름다운마을학교’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공동육아의 다음 단계로서 마련된 것이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이 학교를 통해서 공교육과 대안교육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마을 안에 있지만 일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대안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방과 후나 주말학교, 계절학교 등에서 서로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교과 자체를 공교육 교사와 대안교육 교사가 함께 만나서 같이 만들기도 하며, 주말학교와 계절학교에 공교육 교사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공교육의 입장에서는 관습대로 굳어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대안교육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게토화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름다운마을학교’의 건물은 낮 시간에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사용하지만, 해가 기울 때는 어른들의‘ 마을 서원’이 된다. 여기서는 동·서양고전을 하나님나라 공동체,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재해석하는 공부를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또 다시 이공간은 ‘마을 수도원’으로 변한다. 수도원이 일상의 현장에 가까이 있는 셈이다. 신청자들은 이곳에서 침묵피정을 한다. 피정을 비롯하여 마을 구성원들의 경건생활 일정은 스스로 설정한다. 하지만 일단 정해진 사항들은 마을 공동체 안에서 약속을 하고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새벽 시간에 어떤 이들은 가까운 영락기도원에 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택견 등의 몸 수련을 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일상의 경건훈련을 공동체가 함께 지켜봐주고 독려해 주는 상호목회의 과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 어귀에서 마을버스를 타며 작별했다. 최철호 목사를 비롯한 세 사람이 이내 점점 멀어지면서 하나로 보였다. 좁은 문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어깨를 걸고 있다.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어깨를 걸기위해 오셨듯이.  글ㆍ사진 정동현


아름다운마을공동체 
http://cafe.daum.net/sooyucom
아름다운마을생활      http://cafe.daum.net/agimazung
아름다운마을학교      http://cafe.daum.net/maeulschool
생명평화연대          서울시 강북구 인수동 430-7 청룡빌딩 3층 ㅣ 02-999-9294
                     http://welife.org



최철호 목사와 나눈 몇 가지의 이야기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하나의 교회


다음은 최철호 목사와의 만남, 공동체의 정오기도회, 밥상 나눔, 그리고 산책으로 마무리된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방문 일정 가운데서 주고받은 몇 가지의 질문과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대안적인 공동체, 대안적인 교회를 통하여 -혹은 그것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부르심과 은사에 맞게- 하나님나라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을 향한 소중한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대부분의 대안적인 교회라 볼 수 있는 곳은 외부에서 볼 때 제도권 밖에 있는 특수교회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주류의 교회들은 제도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동시에, 게토화의 우려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반면에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겪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구분은 인식의 오류에서 발생한다. 교회를 가시적 교회로 인식할 때, 교회 권력의 논리가 생겨난다. 이것이 제도권 안과 밖의 이분법,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불리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특수한 교회라는 이분법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비가시적 교회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에 있는 이들은 모두 한국교회의 범주에 속해 있다. 어느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인가? 그리스도의 몸의 다양성을 생각할 때, 각 지체는 모두 특수하고 개별적이다. 그것이 모여서 보편교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가시적인 차원에서 보편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실은 다양성 가운데 연대와 일치라는 본질을 상실했을 때, 그게 바로 독선적인 분파, 이른바 섹트(sect)가 된다.


대안적인 교회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누가 그런 이상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냐’, ‘보통 교회에서 현실적으로 따라 하기 어렵지 않냐’고 말합니다.
성경이 실패한 사람들의 이상을 기록한 책으로만 여긴다면, 그래서 계속 삶 속에서 타협하기 시작하면 성경은 액세서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성경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을 나누어 규정하는 것도 인식의 오류이다. 이상은 그것을 살아내는 이에게는 현실이다. 예수님과 부자청년의 대화를 보라. 부자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갔을 때 제자들이 묻는다.
그러면 누가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겠냐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는 그것을 하실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이 과업이 어렵다고 해서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같은 대안적인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이들이 이것을 딴 세상 얘기로 느낀다면, ‘지금-여기’에서의 관계와 소통을 외치면서도, 역설적으로 또 하나의 경계를 만드는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운동에는 늘 그 긴장이 있다. 그것은 해소될 과제가 아니라 가지고 갈 과제이다.

그 긴장이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사신 것이 아니었는가.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적어도 우리가 십자가에 달릴 가능성은 없지 않는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기쁨과 평화를 알기에 그 긴장은 대수롭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좁은 문을 가는 이들이다. 혼자서는 이 과업의 무게가 매우 무겁지만, ‘같이’하기 때문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