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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09-10 같이의 가치를!

같이의 가치를! 2│신명나는 재래시장을 위한 36시간


오랫동안 웹 기획자라 이름을 달고 일하면서 여러 가지 서비스를 만들어 본 것 같다. 누구나 아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을 때는 그 안에서 직업적인 작은 보람과 만족도 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고 생각을 했을 때는 막막함이 앞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일이 전부인데, 그것을 이용해서 이 사회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그저 먼 일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기획서 한 장, 코드 한 줄이 조금 더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흩어진 아이디어가 하나가 될 때
조금 거창하긴 하지만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이 이뤄지도록 도울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 바람을 이룰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소셜디자이너스쿨’이라는 희망제작소의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소셜이노베이션캠프를 열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캠프에 대해 관심을 두고, 군침을 삼키길 수차례. 올 6월에 비로소 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은 미국에서 온 앙드레를 포함해 남자만 5명으로, 회의실 옆에 간식으로 놓여있던 방울토마토를 보고 즉흥적으로 토마토라는 팀명을 지었다. 우리 팀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래(再來)’라는 이름에 아이디어를 맡았다. 아이디어 제안자의 재래시장 활성화 아이디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재래시장이 지니고 있는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을 공유할수 있도록 하고 이것을 통해서 외국인들이 재래시장 방문을 돕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 폰과 재래시장이라는 약간은 어울리기 힘든 조합과 재래시장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데서부터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다. 개발팀 안에서도 여러가지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한 포털사이트에서 국내 재래시장들에 관한 정보가 잘 정리된 데이터베이스를
발견하고 이것을 기초로 재래시장 정보 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프로그램 구현을 위해 이것저것 관심을 두고 자료를 찾다 보니 재래시장과 관련해서 웹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정보들이 이곳저곳에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다만, 누구도 그것을 하나로 모아서 편리하게 제공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자료가 없어서 준비가 힘들 것 같다는 핑계를 무색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재래시장에 대한 기초 정보에 덧붙여 재래시장 상품권, 재래시장 관광상품, 이벤트 정보 등을 첨가해 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싶었다. 구현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술상에 어려움이 있어서 마음처럼 모든 자료를 모아서 제공할 수는 없었던 점이 아쉬운 점 중의 하나였지만 이것 역시도 새로운 도전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함께’를 위한 36시간

그렇게 36시간 중 밥 먹고 작업하고, 밥 먹고 작업하고를 반복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캠프가 시작된 금요일 저녁,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고된 36시간을 상상하지 못했다. 몸은 피곤할지라도 개발이라도 척척 진행되면 좋겠는데, 막상 행사장에 와서 구현해 보니 잘 안 되는 부분도 생기고 여기저기서 오류가 속출했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잠은 몰려오고, 이곳저곳 고쳐야 할 부분은 많다 보니 이러다가 보여줄 것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몰려오기 시작했다. 점차 마감의 시간은 다가오고, 우리의 프로그램도 약간씩 고장이 난 부분도 있었지만,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팀원들은 키보드 앞에서 고개를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지쳐있었다. 36시간을 헤아리던 시계가 멈추고 한 팀, 한 팀 준비한 내용과 만들어낸 작품들을 발표하는 시간. 정말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잠도 안자고 노력한 결과들이 보였다. 우리 팀은 인기상을 받고 참가에 의의는 당당하게 살리면서 서비스에 자잘한 문제가 많은 점을 살짝 면죄부를 받으려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2등상이 주어졌다.
캠프의 행사 진행 시간은 36시간이었지만, 준비과정까지 합하면 나에게는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셈이다. 그만큼 캠프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첫째는 직업인으로서 자세다. 서비스를 만들고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사용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실현해보는 데까지 사고를 확장해 보는
과정은 더없이 큰 기회였다. 두 번째로는 만나지 못할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다. 이런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지만, 캠프 참가 등록도 부리나케 끝났고 참여자의 열기는 36시간 동안 줄곧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자리가 그동안 없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물을 만난 것처럼 서로 섞이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웠던 것 같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
소셜네트워크, 소셜게임, 모바일 웹 등 모두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서 가는 이때에 우리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들의 시간과 노력을 다할 기회와 동지들을 만났다는 것에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앞으로 이런 기회들이 더 많아지고,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36시간 짧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에는 충분하기에.


양석원|여럿이 함께 가면 그 뒤에 길이 생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에 처음으로 Coworking space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 이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