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나님은 이곳, 그리고 지금, 오늘 어디에나 충만하시다. 단지 우리가 그분을 만나지 못하는 것일 뿐. 이현주 목사가 옮긴 아사시의 프란체스코의 <세기의 기도>에 보면 이런 고백이 있다. “주님, 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두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낮의 빛을 비추는 해 형을 두고,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의 아름답다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은, 지극히 높으신 주님, 당신을 닮았나이다.” 프란체스코는 해를 형이라 부르고, 그 해가 하나님을 닮았다 했다. 재미있게도 그는 달을 누이라 부르고 캄캄한 밤 푸른빛을 보이는 달의 그 청명함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잠시 기울이면 들을 수 있고, 집중하면 볼 수 있는 우리의 하나님. 주님, 알면 사랑할 수 있고, 온 세상에 찬연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최병성 목사님이 그러하다. 운동가이기에 앞서 하나의 생명을 만나고 그에 담겨 있는 생명의 찬연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알리는 최병성 목사를 명동이라는 도시 한복판에서 만났다. 글·사진 김준영

최병성 하면 사실 환경운동과 관련해서 많이 알려지셨는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성당을 다녔다.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운
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내 본디 관심은 영성에 있다. 아마 그것은 내 신앙의 처음이 가톨릭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아내는 나를 베다(지혜)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가톨릭 계통의 영성에 관련된 책을 읽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수도자들의 깊은 영성의 글이 나에게 잘 맞는다. 지금 걸치고 있는 옷보다는 산속에서 며칠 동안 살아가는 고요를 좋아하는 성향이 원래 내 옷일 게다. 그런 내 옷을 걸치고 산속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듯 아끼자고 이야기 아닌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최병성하면 환경운동이 되었지만 말이다.

목사로서 시작을 듣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에
게는 떼려야 뗄 수 없었던 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나에게는 생명과 같은 소중한 친구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서울대법대를 다니던 중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다. 앞길이 보장되어 있을 만큼 말 그대로 창창했던 그 친구의 죽음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오랜 기간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던 중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작은 울림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의 삶을 더 큰 분께 드리고 싶었다. 그분이 나에게는 하나님이다. 그 이후로 줄 곧 나는 하나님만 따라 걸은 것뿐이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의 몫까지 교회와 사회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 낙인처럼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강의는 세간에 화재가 될 정도로 뜨겁다

성당을 통해 영성의 기반이 섰다면, 아버지를
통해 자연을 알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다. 땅 한 평 없었다. 부친께서는 인천 부평 주택가 뒤 아카시아 숲한 쪽에 터를 잡아 집을 만들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집의 뒷산이 모두 내 것이 되었다. 부(富)라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누리는 자의 몫이다. 마당은 엄청나게 컸고, 집 뒤 아카시아는 내 아카시아였고, 그 향기는 나를 위한 향기였다. 이쪽저쪽에 드문드문 핀 진달래도, 환하게 줄지어 핀 개나리도 전부 내 것이었다. 후에 고등학생 땐가는 아예 혼자 나가서 움막 비슷한 것을 짓고 거기서 하루 종일 보냈다. 그곳에 있으면 바람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작은 숲 속의 움직임의 소리는 모두 내 귀를 울리는 하늘의 소리였다. 야생 동물이 지나가며 낙엽 밟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 청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유일하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은 바로 자연이었다.

참으로 독특한 청소년기를 보내셨다(웃음).

거기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반대 편 언덕은 바로 부평의 유명한 공동묘지였다. 학교에서 오면 개를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
라가서는 개는 풀어 놓고 나는 그 터 좋은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며 꽃, 잔디를 보았다. 그것만 본 게 아니다. 공동묘지니 당연히 무덤도 보지 않았겠나. 자연스레 죽음도 생각하게 되었다. 결코 어리지 않았던 그 시절 나는 사람이 언젠가 다 죽는구나를 배운 것이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하겠다. 자연, 죽음, 영성 이 셋은 하나님이 어린 시절 나에게 준 굉장히 큰 축복이다.

신앙의 굉장히 중요한 것을 몸으로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이후 서강까지 어떻게.

나는 사실 큰 교회교역자 생활도 했지만 교회에 큰 관심이 없었다. 주로 신학교 때는 은성수도원에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중 1994년쯤 모든 삶을
뒤로하고 은성수도원의 기도 골방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답이 없었는데 그때는 그게 좋았다. 생식하고 기도했다(웃음). 그리고 그 해 6월에 더 혼자 있고 싶고 자유하고 싶고, 고독하고 싶었다. 장소를 찾던 중 영월의 서강 강가에 빈터가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무작정 짐 싸서 들어갔다. 지금은 결혼을 했지만 당시에는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민가는 강 건너에 있었고, 전기만 들어오는 곳이었다. 전기만 들어오면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 나머진 내가 다 했다. 삽질과 못질은 선수다(웃음). 그렇게 살다 2002년 지나서는 그곳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요즘은 환경운동 비슷한 것 한답시고 바빠서 잘 못 간다.


마치 이 땅에서 천국을 사신 듯하다. 서강에 반사되어 비추는 하늘이 집 앞에 펼쳐진 꼴이 된 건데.

그렇다. 집 앞에 흐르는
서강은 내 강이다. 내 방에서 강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배 하나를 띄어 놓고 그 위에 있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물위에 반사되어 비치는 하늘은 바로 내가 들어가 있는 서강이었다. 그야말로 나는 천국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의 삶이 천국이어야 하지 않는가. 거기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만났다. 너무 자유로우신 거 아닌가.

너무 행복
해 하시는 거 아닌가. 목사님의 처음 영성에 비하면 많이 다른 듯하다.
내 영성은 요즘 많이 달라졌다. 초기 가톨릭적 영성에 몰
두했다면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자칫 영성하면 수행, 고행이라는 인간적 노력에만 열심을 다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열심히 수도해야 하고, 거기에 남는 것은 어쩌면 의무감과 짐일 수 있다. 요즘 내가 행복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 복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면 ‘왜 그만큼만 하느냐? 열심히 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현재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복음의 껍데기를 쓴 복음은 굉장히 율법적이다. 유대 종교 위에 예수님만 얹혀 있는 느낌이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이 주제다.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기독교는 해답 없다. 여기에는 예수가 없다. 새로운 복음과 좋은 소식이 복음인데 그 내용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상당히 중요한 언급이다. 복음 속에 담긴 메시지가 복음이 아닌 경우
는 흔하게 치이는 돌과 같다. 어쩌면 이런 복음 때문에 한국교회 성도들에게서 예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치는 내가 어떤 노력으로 입증한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리고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 가치의 핵심이다. 신앙의 기쁨과 자유, 행복이 없는 것은 이 가치를 근저에 깔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꾸만 내 열심과 내 노력, 내 충성으로 그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 입증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있는 거다. 내 첫 영성이 추구의 영성이라면 지금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그 가치를 누리는 영성이다.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 두 단어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오다와 주다이다. 과거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came, gave! 하나님은 나에게 오셨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오라고 하거나 주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오셨고, 주셨다. 오늘 교회가 하나님께로 나오라만 강조하고, 주라고만 강조한다. 이거에 더 몰두해야 하는데 환경에 걸려가지고(웃음) 이 모습이다. 이번 겨울을 끝으로 나는 복음에 집중하려 한다.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울음).

목회는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씀했던 것이 생
각난다. 생명에 집중하게 된 것은 언제부턴가.
딱새에 관련한 책
을 쓸 때쯤이다. 추운 겨울이었다. 서강은 물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꽁꽁 어는데 부피가 커지다 보니 밤이면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고 하는 시점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강의 웃음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날 밤은 마치 서강이 끄억끄억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옷을 주섬주섬 끼어 입고 그 추운 겨울에 강위로 걸어 나가서 얼음 위에 누웠다. 그리고 내 볼을 얼음에 댔다. “울지마. 내가 너의 맑음을 지켜줄게”하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2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서강의 맑음을 지켜주었다. 지금 들으면웃는 소리다. 큭큭큭하고. 내가 강을 사랑하고, 거기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강이 위험에 처했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노아

제공 : 최병성

에게 명령하신 생명을 보전케 하라는 명령을 목사가 해야지 누가 하겠는가.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은 것은 관찰과 배려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들의 백합화, 참새 한 마리, 겨자씨 등이다. 크게 보잘것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자연을 통해 하늘의 이야기를 하셨다. 나에게 베푸신 자연을 깊이 알고 거기서부터 하늘이 이야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그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데.

이슬 사진을 보면
보통 솜씨가 아니다. 특히 이슬 사진, 곤충 사진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상당히 요구할 것 같은데.
사진은 나에게 특별하다. 내가 고
등학교 쯤 형님이 Zenit라는 당시 소련제 카메라를 외국에서 하나 사오셨다. 그게 사진기와 첫 번째 만남이다. 우연히 헌책방에 갔다가 사진에 관련된 잡지를 하나 구매하여 사진 찍는 것은 이렇게 하는 구나 정도만 배운 초보적 수준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 사물을 보는 눈을 주셨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함께 살면서 작은 움직임과 떨림을 몸으로, 눈으로 봐왔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이슬 사진은 전시회도 했는데, 사진작가들이 꽤 놀랐다. 대한민국 최초 이슬 전, 세계 최초 이슬 전이었다. 어디든 가서 이슬 사진을 보여주면 모두 황홀해 한다. 그걸 봐야 하는데 요즘은 쓰레기 시멘트만 보고 있다(웃음).

제 예상을 완전
히 빗나갔다. 거친 분으로 알았는데 이렇게 부드럽고 세심하시다니.
4대강 강의, 쓰레기 시멘트 강의하면 청중들이 우는 적도
많다. 굉장히 고된 싸움이다. 생명에 대한 나의 애착은 바로 내가 추구하는 영성에 있다. 내 책을 보면 강해 보이지만 <알면 사랑한다>를 보면 놀란다. 사실 내 본 모습은 내 안에 하나님을 만났던 힘에 있다. 생명의 아픔을 보며 혼신을 다할 수 있는 힘이다. 돈도 없고 조직도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동력은 하나님 그 분과 만남에서 오는 것이다. 내 배경이 가톨릭에 있으니 거기의 부드러움이 있고, 개신교 목사니 목사에게 있는 카리스마틱한 열정이 함께 공존하는 것 같다. 내 속의 생명에 대한 절규는 하나님이 나에게 보이신 그 사랑에 대한 열정에 있는 것이다.

생명에 집중하고 그 곳에서 나온 생명으로 오늘도 살아가는 최병성 목사. 그가 가는 곳 마다 생명이 흘러 넘쳐 모든 사람의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가길 기대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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