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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불신 사회와 미디어의 폭력

영화 <모비딕>
감독 : 박인제
배우 : 황정민, 진구, 김민희

언론은 사건을 좇고 또 취재한다. 사건을 예방하는 기능을 언론은 갖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기상 예측이나 주가 동향 혹은 사건의 추이나 전망을 예상하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할 뿐이며, 설령 예고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주장으로 소개된다. 언론이라는 주체가 사건을 예고하여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은 언론의 본질상 맞지 않는 일이다. <모비딕>은 ‘오보가 진실’이라는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감독의 미학적인 성찰에 따른 것이겠지만 언론의 본질에 위배되는 일을 표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발 빠른 미디어 현실을 바꾸다
기술적인 미디어가 개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면 입소문이 닿을 때쯤에나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대” “누가 그러더라”는 식이다. 결국 사건 발생 시간과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된 시간 사이에 차이가 생겨 사건에 대해 알게 될 때에는 이미 사건의 열기가 차갑게 식어진 다음이었다. 미디어 기술이 발달되면서 사건을 접하는 시간은 점점 더 빨라졌다. 게다가 생방송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건을 동시적으로 접할 수도 있다. 사건의 열기를 그대로 전달받다보니 사건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진다. 마치 현장에 있다는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언론이나 방송의 관건은 사건을 얼마나 신속하게 또 실제처럼 전달하느냐이다. 소위 신속성과 현장성 이외에 미디어가 풀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정확성이다. 미디어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달라 사건 자체를 이해하는 미디어들 간의 관점의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는 결국 정보의 차이를 낳게 되는데, 심지어 사건 자체가 왜곡 혹은 변형되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믿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사실 사건 소식을 접하는 국민들이 사건과 관련된 정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현대인들은 사건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인과율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 관련자들은 단순히 사건의 발생이 아니라 사건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원인과 결과, 심지어 영향과 전망까지도 분석해서 전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쯤에서 취재 기자들의 관심과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경찰들의 관심은 겹쳐진다. 사건 보도를 통해 국민의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지만 때로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불필요할 정도의 과잉 혹은 집중 보도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아 미디어가 원하는 방향과 취지의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사건을 보는 관점의 차이는 수많은 소문들을 생산해내는데, 이로 인해 소위 진실의 문제가 일어난다. 무엇이 진실인가?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는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대체로 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이나 검찰의 공식적인 보도와 인터뷰로부터 나온 정보를 받아 전달한다. 공인된 정부 기관으로부터 나온 정보라야 공신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기관은 국가적인 기밀사항을 제외한 중요 사안에 대해 보도할 의무를 갖는다. 따라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의 공식적인 보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사건을 믿게 된다. 미디어의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이다.

이미지와 정보의 지배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미디어 간의 관점 혹은 의견의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접하는 정보는 또 다시 진실의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인터뷰를 통해 혹은 기고를 통해 전문가들의 견해들이 수집되는데, 이로 인해 국민들은 다양한 심지어는 서로 갈등되는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 블로그와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 북 같은 소셜 미디어들을 통해 개인이 정보 생산과 전달 능력을 갖게 됨으로써 정보의 충돌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사건은 사라지고 사건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만 난무하게 된다. 오히려 사건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더욱 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사안에 따라 달라지지만, 만일 국가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일 경우에는 여론의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정부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천안암 침몰 사건과 사건에 대한 상이한 보도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에는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진실을 은폐해 결국 기자들에 의해서 진실이 밝혀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사건의 실체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데, 희생양들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숨기기 때문이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겠지만 대체로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정부기관이 갖게 된다. 아니, 정보의 권한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집단이 갖는다. “정부 위의 정부”라는 가설이 신빙성을 갖는 대목이다.

정보가 가진 힘, 진실을 붙잡다
이처럼 정보가 관건이다 보니 현대사회에서 미디어의 의미와 가치는 상상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역설적인 것은 미디어의 의미가 그만큼 중요하게 부각될수록, 진실의 문제는 더욱 더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는 미디어를 통해 진실을 전하는가 하면, 누구는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이다. <모비딕>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허구적인 틀 안에는 1990년 서울대 앞에 “모비딕”이라는 카페에서 있었던 민간인 사찰에 대한 한 개인의 양심선언이 바탕을 형성하고 있어서 정보와 관련한 폭력 및 정보의 역학 관계를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진실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짓을 생산하는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트루먼 쇼>(피터 위어, 1998)를 통해 알려져 있어서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비딕>은 색다른 관점을 추적한다. 곧 정보에 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역학과 그에 따라 일어나는 해프닝들을 다룸으로써 감독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하나는 결국 우리 사회의 불신 풍조가 어떤 이유로 형성되고 확산되는지 그 뿌리를 드러냄으로써 미디어 의존적인 사회에서 좁게는 한 사회나 국가를, 크게는 한 시대를 자신들의 뜻과 의지대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여론을 주도하고 조작해 거짓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불신풍조를 만연케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간인 사찰의 폭력성과 죄악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 미디어가 상업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폭로하는 <트루맛 쇼>(김재환)와 교회가 모든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프리스트>(스콧 찰스 스튜어트)가 함께 개봉되었다. 관심 있게 볼 일이다. 일련의 영화들이 주는 메시지는 미디어의 장악과 통제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시도들은 진실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은 거짓을 이기기 때문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최후의 심판자로 고백하는 우리들의 신앙에 함축되어 있는 사실이다. 진리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글 최성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