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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11-12 오늘, 깨어 있음

오늘, 깨어 있음 7│불편이 정신을 벼리다 - 한국화가 소산小山박대성

 

오늘이 며칠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달력을 보
면, 어제보다 오른쪽으로 한 칸 더 이동한 자리를 짚어야 한다. 숫자 ‘1’만큼의 간격은 확실한데, 어제보다 특별히 낫다고 할 만한 게 없다. 나태와 권태를 동반하는 ‘일상’이라는 늪에 빠진 게 분명하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 “생명이 있는 것들은 하루하루가 다르지. 같은 나무, 같은 길이지만, 오늘의 생각과 오늘의 호흡은 달라.” 늘 새로운 ‘오늘’을 볼 수 있는 통찰력으로, 자연과 역사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수묵화가, 경주에 살고 있는 박대성 화백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글 · 사진 박윤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걷다

박대성 화백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50여 년의 시간 동안 정규교육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그는 5살 때, 6・25 전쟁에서 부모와 왼쪽 팔을 잃은 후,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의 나날들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이 결핍과 불만족의 상황을 목적과 간절함으로 바꾸어 화폭 앞에 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지. 하지만 그것이 가져다 주는 희열 때문에 꾸준히 해올 수 있었어.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계속 길을 가게 하는 원동력 아니겠어.” ‘개척’이라는 말은 남달리 뛰어난 능력처럼 보이지만, 박대성 화백이 보여준‘ 개척’이란,‘ 반복’을 통해 꾸준히‘ 기본’을 닦아 쌓는 것이다. 그는 평소 붓과 먹으로 글씨를 쓰는 훈련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묵화를 그리는 데 기본은‘ 선’인데, 그 선 하나를 종이에 허투루 심지 않기 위해서다.“ 한자는 그 자체가 의미이자 추상이어서, 써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그림공부가 되지. 똑같은 서체를 매일 쓰는 것 같아도, 백 번 천 번 할수록, 붓에 대한 장악력을 기르고, 조형의 기본을 익힐 수 있지. 의미 없어 보여도 기본은 너무 중요해. 거기서 개척을 꿈꾸는 거야.” 그래서 그는 20여 년이 지나도록 매일 2시간 이상씩, 마오쩌둥의 초서와 추사의 예서를 쓰고 있다.

자연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배우다
그는 20,30대의 젊은 날에 직접 스승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가르침을 구했다며 웃었다. 지금의 여유로운 웃음에는, 치열한만큼 반짝이던 시절이 묻어났다. 박대성 화백에게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었고, 화구를 들고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등을 발 벗고 다녔다. 스승을 만나기 위해, 거친 돌길을 마다치 않았다.“ 중국은 크기도 크지만,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이 많더구만. 그림
을 그리기 위해 여행을 할 때는 몇 달 동안 먹을 것도 열악하고, 잠자는 것도 불편했지. 하지만 가서 얻는 깨달음이 컸어. 태초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라는 질문을 자연스레 스스로 하게 돼. 히말라야도 문명과는 먼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지. 세 번째 히말라야를 보았을 때‘, 하얀(힌)’‘, 머리(두)’ 위의 별 밭을 보았어. 편리는 불편에서 오고, 행복은 불행에서 오더구먼. 사람이 평생 불행하라는 법도 없잖아. 불행에는 항상 행복의 씨앗이 있는 거니까.”‘ 눈의 집’이라는 의미의 히말라야, 만년설로 덮인 곳에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불편을 선택하면 아름다운 행복이 뒤따른다는 삶의 비밀을 보았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불편을 위한 집을 짓고, 곳곳에서 만난 자연의 가르침을 채웠다. 우리가‘ 열심’이라고 말하는 범위는 얼마 만큼인가. 그는‘ 경주화가’,‘ 신라화가’라는 명성이 있지만, 처음부터 민족의 혼과 역사가 녹아 있는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었다. 불국사를 그리기 위해 도시의 편리를 벗어 버리고, 경주로 달려왔다. 매일같이 불국사를 오르내리며, 밤낮없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조금은 세상과 떨어져서 우직한 사람이 되어야지.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실함이 기본인거야”라고 말한 뜻을 알 것 같았다. 굳이, 애써서 힘들게 가보지 않으면, 세상의 편리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과 다른 것을 얻을 수 없다. 적당히 안주하고 만족하는 데에 습관이 들어 있다면‘, 힌두의 별 밭’은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불편을 선택하여 자유로워지다
우이동, 팔당, 평창동. 그림을 위해 터전을 옮길 때마다 생활과 작업을 위한 공간은 박대성 화백이 손수 지었다. 경주의 화실옆에는‘ 통천옥’과‘ 불편당’이 있다.‘ 통천옥’은 천장이 투명하여, 밤에는 달별이, 낮에는 소나무 빛이 쏟아진다. 특별히 봄에는 흐드러진 매화꽃을 보며 하늘로 직천할 듯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집 옥屋이 아니라 감옥 옥獄의 한자를 쓴다는 것이다.“ 불편당不便堂은 예전에 생활공간으로 사용했던 곳인데, 거기서 지낼 때에는 전기도 안 넣고, 촛불 사용해서 지냈지, 허허. 편리라는 것은 사람의 고유의 인성이나 잠재력을 쇠퇴하게 할 뿐이야. 인간이 손발이 긴 것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땀 흘리고 일하라는 의미가 아니겠어. 팔당에 집을 짓고 살 때는, 욕심 아닐 만큼 직접 텃밭을 가꾸고, 아내와 같이 간장 된장 담그고 지냈지. 낮에 밝을 때엔 그림 그리고, 일하고, 밤에 어두워지면 자고.” 몸이 불편할수록 정신은 칼날처럼 예리해진다는 게그의 신념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편리는 얼마만큼, 삶을 나아지게 하는지, 손발이 편한 만큼, 더 눕고 더 자려고 게을러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느새, 불평과 함께‘ 못 하는 일’들로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박대성 화백은 24시간 그림을 그린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자면서도, 내일 날씨와 작물을 생각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그림생각을 비운 적이 없다. 그림을 시작하는 처음과 지금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더니,“ 그린다는 마음은 변화가 없어. 아직도‘ 좋은 그림’을 고민하고 항상 전전긍긍하는 거여”라고 한다. 아직도“ 힘이 남아나 한 번 해보겠다고 새집을 짓는다”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또 새로운 꿈에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부러 불편을 선택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