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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8 03-04 다문화, 행복한 공존을 꿈꾸다

다문화, 행복한 공존을 꿈꾸다 4 | 다문화, 음악으로 희망하다

에디터 신정은


다국적 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 인터뷰

다문화에 관한 한 한국사회의 과거, 현재를 온 몸으로 관통해 오다 이제 미래를 이야기하는 밴드가 있다. 바로 ‘스탑크랙다운’. 외국인 노동자들로 구성된 이 밴드는 ‘다문화’라는 말만 들어도 어두운 표정을 지어야만 할 것 같던 그동안의 한국사회 이미지를 탈피해 보다 친숙하게 먼저 손을 내민다. 더구나 얼마 전 한국인 드러머를 영입해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 밴드’가 아닌 ‘다국적 노동자 밴드’ 라 불러달라니, 밴드 멤버를 갖춰간 모양새도 꼭 지금의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인류의 공용어 음악을 통해, 이제 함께 만들어가야 할 단계라며 입을 모으는 이들, 그 선율 속에 숨겨진 아픔과 희망을 들어보자.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

2003년 11월, 정부의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시작된 미등록노동자 단속에 맞서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서울 성공회 성당에 마련된 이 농성장에서 만나 즉석에서 결성된 밴드가 바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 down -단속금지) 이다. 소띠하(베이스, 미얀마) , 미누(보컬, 네팔), 소모뚜(기타, 미얀마), 해리(키보드, 인도네시아) 송명훈(드럼, 한국)으로 구성된 이들은 벌써 2집 앨범까지 냈으며, 각종 노동문화제와 아시아 인권과 평화를 위한 공연장에서 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공연도 참여했다.

“한국 사람들, 노래 좋아하잖아요. 공연하러 다닐 때마다 거부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우리의 활동이 다문화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죠.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이 초기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더욱 노력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거든요.”

아직도 상상하기 힘든 악조건과 근무 환경 속에서 기본적인 인권 보장도 못 받고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으며, 산재 인정을 받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란다. 무엇보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공장에서 일을 겸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그 아픔을 모를 리 없다. 이들 음반 판매의 수익금 중 일부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따로 모아 둘 정도로 현실에서 체감한 온도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에 다문화는 없다

멤버들 모두 한국 생활 평균 십년 이상인 만큼 그동안 한국 사회의 다문화를 위한 변화의 움직임을 보아왔을 법한데, 그들의 눈에는 ‘아직 멀었다’ 이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보여지는 외국인에 대한 관심을 지켜보며 외려 속만 탄다고.

“한국 사회는 어쩌면 다문화를 즐기는 것 같아요. 마치 먼 나라 이야기인 양 동정심을 유발해서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행복 지수를 확인 받는 거죠. 문화 자체가 다른 걸 인정하는 게 먼저여야죠.” 엄밀히 말하자면, 사장님들이 ‘우리나라는 해가 2갠데, 너희 나라는 몇 개냐?’ 라고 묻던, 그 웃음도 안 나오던 말을 들었던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며 ‘한국에 다문화는 없다’ 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랫동안 공장을 전전하며 일하다 최근 이주 노동자 방송국(MWT)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보컬 미누 씨는 그 원인을 정부에게 묻는다. 20만 명이 넘어가는 이주 노동자들을 어느 날 갑자기 4만에서 5만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급작스런 방침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병 주고 약주고, 하는 거 같아요. 모든 걸 제도와 법으로만 규정하죠. 그것도 균형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혜택을 받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고. 지금 2세 문제도 얼마나 심각한데요.”

실제로 멤버 중 베이스를 맡은 소띠하 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그나마 아이는 피부색이 하얀 편이라 다행이라며, 피부색 하나 갖고 아직도 차별을 받는 이 사회와 그걸 그저 보고만 있는 정부가 답답할 뿐이다. “혼혈로 인한 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친구의 아이는 너무 힘들어해 결국 외국으로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짐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을 외치며 외국인에 대한 장벽을 철저히 쌓아왔던 한국사회.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냐’는 식의 변명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정작 달라진 건 한국이 아니라, 이 땅에 맞추고 적응하며 살아온 이주 노동자들이라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다문화의 첫걸음

그러나 그들이 뭉친 이유가 그러했듯이,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희망은 놓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샘플’임을 외친다. 다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그러하며, 이렇게 계속 되다 보면 적어도 함께 더불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리라는 걸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뒤늦게 합류하게 된 드러머 송명훈 씨도 이들과의 만남을 ‘행운’이라고 고백한다. 어떠한 사회 현상이 변화하고 다듬어지기까지 단번에 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음악을 통해 공감대를 높이다 보면 올바른 다문화사회가 확립될 것을 믿는다고. 그들이 말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만들려면 사람을 좋아해야 해요. 왜냐하면 문화는 버릇이고 습관이거든요. 한 사람이 가진 생활의 패턴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람 자체에 대한 애정이 필요해요. 그건 그 사람만의 단점이나 장점이 아닌 저희의 문화거든요. 이런 면에서 한국은 그래도 해낼 수 있다고 봐요.”

그 바람을 담아내듯, 1집 앨범이 노동 현장의 현실, 집회나 농성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은 것이라 밝은 노래는 없는 반면, 2집은 현실을 넘어선 진정 만들어 가야할 세상을 표현했다. 앨범 명부터 ‘자유’다. 우리가 먼저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피부 서로 달라도, 문화 서로 달라도 우리 서로 아름다운 동지,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좋은걸, 함께 사는 이 세상 우리를 위하여” 스탑크랙다운의 2집 앨범 중 ‘자유’라는 곡의 일부다. 어쩌면 다문화사회는 부끄러움이 너무 많은 한 사회가 만들어 낸 환상인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애정으로 서로를 대하는 사회라면 ‘다문화’ 라는 용어가 애초에 필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이뤄가는 공동체, 그 안에서 ‘다(多)’문화가 아닌 적은 사실 한 번도 없었다. 당장 멈춰야 할 것은 단속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회에 대한 절망인지도 모른다. 스탑크랙다운의 연습실을 나오는데 노랫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제는 정말 믿고 싶은 이 말이 꽉 막힌 연습실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라며, 절망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일 때 나오는 탄성을 나지막이 되새긴다. 다시, 사람이다.



다국적 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  www.stopcrackdow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