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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3-04 문화나눔, 새로운 희망

문화나눔, 새로운 희망 5 l 춤추듯 두드리며 벽을 허물다


춤추듯 두드리며 벽을 허물다
한빛타악앙상블


눈을 감자, 열대우림 초원이 펼쳐진다. 얼룩말 무리가 뛰어간다. 많은 수가, 너무나 강렬한 속도로 뛰어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리고 이내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 되어 눈물이 고인다. 처음 느낀 기분이었다. 한빛타악앙상블 연습실에서 그들의 연주와 완전한 교감을 이룬 순간이었다. “허이! 허이!” 흥겨운 추임새와 함께 그들이 두드리는 것은 타악기였지만, 그들의 몸은 초원을 달리고 있는 듯 했다.



영혼의 울림이 있는 연주
그들을 만나러 간 곳은 서울 수유동에 위치한 한빛맹학교. 저녁에 있을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마친 단원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서로의 소리에 집중하고, 자신의 모든 감각에 의지하느라 긴장해 있던 단원들은 연주를 마치고도 한참이나 가쁜 숨을 내쉰다. 12명의 단원 대부분은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시각장애인들. 어둠뿐이던 세상에서 그들은 음악이라는 빛을 찾았고, 그 빛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이들에 삶의 이유이자 새로운 희망인 한빛타악앙상블은 시각장애교육기관인 한빛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전문음악연주단 중 하나. 한빛예술단은 관악합주단인 한빛브라스앙상블, 현악합주단인 다윗현악앙상블, 한빛체리티합창단, 초등부 학생들의 맑은 목소리로 만들어내는 빛소리중창단, 타악앙상블로 이루어진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규모와 전문성을 자랑한다. 한빛예술단은 안마사나 침구사 등의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았던 시각장애인의 직업 현실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청각이 발달해 절대음감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는 장점을 살려,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내겠다는 한빛맹학교 김양수 교장선생님의 꿈과 비전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꿈과 비전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드럼을 연주할 때는 마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신이 나고,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드럼세트를 맡고 있는 김지호 군(17세)의 꿈은 음악 엔터테이너.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악기를 배운 지호는 드럼뿐 아니라 피아노, 노래까지 잘한다며‘ 스티비 원더’같은 음악 엔터테이너가 될 거란다. 이들을 지도하는 임형진 선생님은 지호가 절대 음감을 소유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음악을 했지만 저런 친구들의 재능이 부럽다고 말했다.


장애를 뛰어넘은 열정
재능에 앞서 이들이 한곡을 연주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땀은 실로 대단하다.“ 저희는 악보를 볼 수 없으니까 우선 점자 악보를 읽으며 리듬을 익히고, 녹음기로 선생님의 연주를 녹음해서 듣거나 만들어주신 음악 샘플을 들으면서 악보를 외워요. 그리고나서 선생님이 저희들 뒤에 서서 양팔을 잡고 직접 연주를 해주세요. 선생님의 팔과 한 몸이 되어 손을 뻗는 각도, 움직임 등으로 연주법을 익히는 거죠.” 모듬북과 마림바를 연주하는 이경신 씨(26세)의 말에서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처음 한 곡을 완벽히 연주하기까지 3개월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그 절반 정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이런 열정은 임형진 선생님도 뒤
지지 않는다.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컴퓨터로 소리 악보를 만드는 등 학생들이 좀 더 편하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 타악앙상블을 지도하는 그의 교수법은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표본이 되고 있어 부담감도 더하다고.
“처음에는 아이들의 입장을 다 이해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눈을 감고 연주도 해봤는데, 정말 쉽지 않아요. 아이들의 열정과 의지는 정말 감동이에요.” 12명의 단원들을 홀로 가르치자니 벅차기도 했지만, 작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이들을 지도할 선생님도 더 충원 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연주를 마쳤을 때, 박수 소리를 들으면 진짜 기분이 좋아요. 온몸이 짜릿하다고 할까?” 모듬북을 연주하는 심광보 씨(39세)의 말처럼 이들에게 음악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자 가능성이다. 이들에게 높아만 보였던 세상의 벽은 음악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있다. 듣는 이의 마음의 경계를 풀게 하는 그들의 영혼을 울리는 음악은 이제 세상에게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빛타악앙상블
www.hanbit.sc.kr
02-989-2203~4

글ㆍ사진 정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