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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쿠바의 뜨거운 낭만에 녹아들다

쿠바의 뜨거운 낭만에 녹아들다

낭만 쿠바|송일곤

여행旅行. 모두에게 설렘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단어. 하지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답답한 일상을 던져 버리고 떠나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정작 내가 내던진 일상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기껏 마음을 다잡고 행길에 올랐지만 돌아온 뒤 남는 것은 여행이 아닌 어디선가 본 듯한 구도의 사진들로 채워진 관광 명소에 대한 기억투성이다. 휴양 내지는 쇼핑, 혹은 그 중간의 어딘가쯤. 우리의 여행이란 너무도 퍽퍽하다. 분명히 재밌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게 무엇이라고 말하기란 애매하기 그지없다. 결국‘ 보는 눈이 넓어지네’ 하는 더 애매한 표현만 들어차 버리는 슬픈 결론이 우리의 사진첩을 수놓는다. 저자가 동경하는 인물 체 게바라에 이끌리듯이 떠난 쿠바. 계획과 일정이 없는 저자의 출발에서 여행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져 온다. 작품의 진행은 담은 사진과 닮아 있다. 각각의 호흡은 완급의 영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독립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얼핏 서사가 없는 에피소드의 단순한 나열처럼 보이나 책을 덮는 순간까지 따사로운 햇살 속에 녹아있는 낭만을 즐기기에 충분한 호흡으로 이끌고 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여행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이동 계획이나 경로는 완전히 배재하고 있다. 계획과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 방랑의 여행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내면을 가득 채우는 여행이었으리라 짐작할 뿐. 여행지의 관광명소, 맛집, 시설 좋은 숙소의 정보들이 아닌 강렬한 햇살 아래 뜨거운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쿠바의 향기가,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밀려온다.
이 책에는 실제 쿠바에 대한 세부적이고 자세한 견문이나 정보 대신 그보다 더 풍부한 개인성이 존재한다. 느낌 있는 사진에 숨은 이야기들과저 남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숨 쉰다. 허나 그것은 꼭 쿠바라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인생의 이야기는 작가의 시선으로 인해 여행의 기억이 된다. 완결된 하나의 영감이 된다. 여행자가 중심이 되어 저자의 이야기로 가득한,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모습 그대로 담은 사진들을 통해 독자조차 그저 그 속에서 다가오며 들리는 것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품 속의 시 <시간이 죽지 않는 삶>처럼 이야기는 숨을 거두지 않고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사람과 시간이만든 이야기가 가득한 곳에서 돌아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사람의 이야기. 이제는 그가 만들어낼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글 주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