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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 마리 아저씨|아리가와 히로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더 이상 성장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좋은 시간의 많은 부분이 지나가 버렸다. 삶은 조금 더 밍밍해지고, 위태로워진다. 좋아하는 일이나 꿈을 말한다는 것은 이제 철없어 보인다. 꾸준히 늘어가는 생물학적 기대 수명은 심리적 기대 수명에 처절한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꺼지기 전 불꽃이 가장 밝다는데, 우리의 삶은 죽음 앞에서 자꾸만 외로워진다. 해 질 녘의 노을을 바라보았을 때의 감동은 노년의 인생 앞에서는 온데간데없다. 한 때 경험과 지혜의 상징이던 흰머리가 사회적 약자의 명찰이 되는 시대.
가정을 꾸릴 때 즈음이면 노후 걱정을 해야 하는 시대. 우리는 죽음보다 죽음 이전의 생을 걱정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세 마리 아저씨>의 주인공 일평생 검도로 다진 기요카즈와 그의 친구들 유도의 지존 시게오, 지략가 노리오가 환갑을 넘기자 사회는 여지없이 그들을 뒷방 늙은이 취급한다. 환갑이라는 타이틀을 단 후엔 자식과 손자에게 쩔쩔매며, 후세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만 존재 가치인가. 맙소사, 호랑이 검도 관장에서 사회적 약자로 난데없는 전락이다.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양보받기에 적당한 노인 셋이 모인 선술집‘ 술 취한 고래’는 이쯤 되면 동네 노인정에 가까워진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 우울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날듯이 가볍고 어쩔 때는 산뜻하기까지 하다. 다분히 만화적인 과장으로 풀어나가는 기요카즈와 친구들의 활극으로 인하여 골치 아픈 사건들에 휘말린 도시는 평안함을 찾는다. 마치 유년시절 자주 보던 모험 소설 같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우리의 주인공들은 개구쟁이 소년시절을 한 반세기쯤 지나쳐왔다는 것뿐이랄까. 이 소설이 낯선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 노인들의 경쾌함이라는 게 우리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답지 않다는 것 때문에.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모두 시간에 예속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정된 시간에 뭔가를 이루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인류였다.
시간에 구애받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슬퍼졌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나이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시간, 그것은 단지 삶의 간격이다. 모두 종종거리며 걷고 있을 때, 기요카즈와 친구들은 펄쩍거리며 뛰고 있는 것이다. 코스의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끝내주는 페이스 유지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시간의 껍데기를 보고 나이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의무를 부여한다. 그뿐인가, 우리 스스로 부단히도 많은 소망이 나이를 이유로 숨죽이는 것을 묵과하고만 있다. 노인과 어린아이는 둘 다 사회의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어른 혹은 후손들의 보호와 관심은 언제나 후자를 향해 있다. 그것이 그들의 미래 때문이라면, 이 내일이 기대되는 촉망받는 노인들을 떠올려 보라. 어제보다 오늘이 더 세련된 아저씨들을 보라. 일선에서 물러나라 강요하는 새파란 신참들에게 세월의 강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미래의 빛깔을. 살아있는 소망의 빛깔을 보여주는 이들을 어느 누가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글 주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