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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소풍 같은 삶을 위한 책 읽기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샨티


역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이곳은 책 읽기를 권장하는 세상이죠. 그 옛날 파피루스니 죽편이니 하는 것에 글자를 써내려갔을 때부터요. 종이의 질은 점점 좋아지다 못해 이젠 아예 아이패드예요. 매체가 바뀌어도 여전히 책읽기를 장려하는 것을 보면 독서에는 어떤 미덕 같은 흐뭇한 심상이 있는가 봐요. 책에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탓하는 사람이 없죠. 왜,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잖아요. 더 빨리 더 많이. 독서가의 마음가짐은 마치 올림픽 정신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려요. 어쩔 수 없죠. “그냥 내버려두면 무엇이든 빨리 하고 싶어 하는 이 사회”이니까요.
느림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현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독서에 대한 시각은 그렇지 못해요. 읽을 책은 산더미인데, 시간은 자꾸만 깎여 나가요. 열심히 책을 읽는다고 읽는데 책을 읽는 맛은 예전 같지가 않아요. 점점 책읽기가 업무를 수렴해 버리는 느낌이죠. 이상할 것도 없다고요? 어른이 된다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속독速讀과 다독多讀.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있어서 완전무결하게 받아들이는 참의 명제. 지금껏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그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다른 시각을 만났어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에는 느리게 읽었을 때만 닿을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생각이 있어요. 동서양을 아우르는 풍부한 예문을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오감 이상을 자극하는 섬세한 문장의 성城을 만나지요. 어쩔 때는 ‘어라, 이거 내가 읽었던 책이잖아’ 할 때도 있구요. 왜 내가 읽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다가,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생길지도 몰라요. 아무래도 빠르게 읽는 건 열심히 읽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인가 봐요.
에이, 그런 표정 하지 말아요. 무슨 말 하고 싶은 지 알 것 같아요. 맞아요. 바쁜 게 능력인 세상에서 느긋하게 책 한 권을 붙잡고 읽을 만한 사람이 어디 흔한가요. 다만 강박적으로 빨리 많이 읽는 독서풍토에서 느림의 가치를 적용하는 것.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독서의 깊이를 엄청나게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무릎이 잔뜩 나온 쥐색 추리닝을 입고 있어도(사실 이건 기가 막히게 편하지요),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박아 넣은 트레이닝복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의심 없이 입어볼 수 있으니까.
어디 비단 책뿐이겠어요? 스트레스와 압력으로 빡빡한 사회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지니는 게 이와 다를 게 있냐구요. 그러니까 이건 삶 전반에 두루 걸쳐져 있는 자세다 이거에요. 그것은 타인의 대한 속 깊은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거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보단 주변의 경관을 즐기는 소풍 같은 삶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라. 뭐예요. 벌써 다 읽어 버린 거예요? 이봐요. 내가 얼마나 고민을 해서 한자 한자 써 내려갔는지 알기나 하는 거예요? 부탁이에요. 길지도 않은 글인데, 다시 읽어봐요. 이번엔 더 느리게 읽어 주면 안 될까요?  글 주동연